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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의 강압으로 국가에 강제로 땅을 빼앗긴 서울 구로동 일대 농민들이 51년 만에 국가로부터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서울고법 민사30부(강일원 부장판사)는 일명 '구로 분배농지 소송사기 조작의혹 사건'의 피해자와 유족 26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의 재재심에서 "재심판결을 취소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고 25일 밝혔다.
서울 구로동 일대 약 30만평의 토지는 일제강점기인 1942~3년 일본 육군성에 의해 강제 수용됐다. 다행히 일본군이 군용시설이나 군용지로 사용하지 않고 방치하는 바람에 200여 명의 농민은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농민들은 한국전쟁 직전에 단행된 농지개혁으로 구로동 일대 땅을 분배받기도 했다.
문제는 5.16 군사쿠데타가 터지면서 불거졌다. 박정희 정권은 구로동 일대에 수출산업공업단지를 조성하면서 농민들을 강제로 쫓아냈다.
이에 백모 씨 등 85명은 1964년 6월 국가를 상대로 '구로동 일대 토지 78,422평의 소유권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해 대법원에서 승소 확정 판결을 받았다. 다른 농민들도 잇따라 소송에 동참해 모두 9건의 소송에서 대부분 승소했다.
당시 구로공단에 사활을 걸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은 "재판에서 절대 지지 말고 땅을 차지하라"며 법무부장관에게 특명을 내렸다. 농림부와 지자체 공무원이 구속되고 농민들도 사기와 위증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더니 1968년부터 2년 동안 41명이 재판에 넘겨져 대부분 유죄 판결을 받았다.
박정희 정권은 수사와 동시에 민사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고, 거의 20년 만인 1989년 국가는 승소 판결을 받아 구로동 땅을 다시 차지했다.
그러나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8년 7월 "국가가 중앙정보부와 검찰 등을 동원해 농민들을 불법연행해 감금 및 가혹행위를 하고 민사소송의 포기를 강요했으므로 국가는 관련자들에게 사과하고 화해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따라 농민들은 형사재판의 재심을 청구해 무죄판결을 받아낸 뒤 국가가 구로동 땅을 빼앗아가게 된 근거인 민사 재심판결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
이날 판결로 농민들은 국가에 강제로 빼앗긴 구로동 일대 땅을 51년 만에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 다만 시간이 오래 지난 탓에 땅의 지번과 소유주에 변동이 많아 실제 손해배상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소송을 대리한 김정진 변호사는 "국가 명의의 땅은 극히 일부만 남아 있고 대부분 개인들이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빠른 시일 내에 현재 지번을 확인하는 등 감정을 진행하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 배상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