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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야권 대선 주자들을 긴장시키는 자리 중 하나가 바로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가 주최하는 토론회이다.
대선 주자들을 한 명씩 불러 자체 검증을 하고 있는 민평련은 고(故) 김근태 상임고문의 뒤를 따르는 정치 후배들이 모여있다. 김 고문의 부인인 인재근 의원을 포함해 현역의원만 21명이나 된다.
당내 최대 계파인 친노그룹과는 일정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자체적으로 자신들의 주군을 모색하고 있어 대선판의 캐스팅보트로 여겨진다.
3일 민평련이 김두관 경남지사에 이어 두번째로 초대한 손님은 바로 손학규 상임고문이다.
손 고문은 그의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이기도 한 김근태 고문의 후배들 앞에서 자신의 정치적 치부인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에 대해 "죗값을 치르겠다"며 자기 고백을 했다.
그는 "김근태 의장이 돌아가실 때 빈소를 지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면서 "저는 근태가 제가 한나라당 간 것에 대해 못내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했을 것을 잘 안다. 친구에 대한 기본적, 인간적 애정은 더할 수 없이 있지만 손학규의 정치노선에 대해서는 흔쾌하지 못했다. 아마 끝내 용서 안 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손 고문은 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만든 민자당에 입당했고, 김 고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만든 평민당에 입당하면서 서로 정치적 노선이 엇갈리게 된다.
그는 "김대중-김영삼 노선에 대해 치열하게 논쟁한 적 있다. 나는 김영삼도 민주주의자라고 했고, 근태는 두 사람을 한 틀에 놓고 얘기할 수 없다고 했다"면서 "92년 선거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찍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그 개혁은 저를 유인하기 충분했다"고 설명했다.
위독하신 어머니가 막내아들을 "빨갱이다. 형제들을 위험에 빠뜨린다"며 보지 않으려 할 정도로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지만, 그 당시 민자당을 선택한 것은 나름의 이유와 명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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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고문은 "민자당, 신한국당 대변인을 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못할 말도 많이 했다. 지금도 그 기록을 보면 몸둘 바를 모르겠다"면서도 "그래도 나를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끝없이 자위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이유로 자신을 용서하지 않았던 어머니와 김근태, 두 사람을 떠올린 손 고문은 "주홍글씨를 지운다, 멍에를 벗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그 과정 또한 민주운동 세력의 한 분열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그는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주홍글씨를 억지로 벗으려할 것도 없다"며 "다만 제가 젊어서부터 추구했던 민주주의의 가치, 사회적 약자, 남북분단으로 인한 비극을 치유하는 것에 몸을 던지는 것으로 그동안 김근태 의장이 '학규 좋은 사람이긴 한데...'라면서 뒷말을 잇지는 못하고 돌아가신데 대한 죗값을 값고자 한다"고 말을 맺었다.
손 고문의 이같은 자기고백에 장내는 숙연해졌다. 의원들도 그의 진심을 느낀 듯 했다.
토론회를 지켜 본 한 의원은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는다"며 "진작에 그런 말을 했어야 했다. 이제라도 그런 부분을 정리하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손 고문은 이날 정책, 경제, 사회, 남북관계 등 여러 주제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에도 나름의 논리를 내세우며 답변해 의원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지율이 답보 상태인데 대해 "대통령 선거가 다가올수록 구체적 콘텐츠로 대결할 시점 올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영남 후보를 내세워 영남 표를 가져오는 것 보다는 흔들리는 수도권 중산층의 표를 더 많이 흡수하는 것이 정권교체에 효과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PK(부산경남)에서 친야권 성향은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있다"며 "그래서 추가적으로 얻을 수 있는 표의 숫자는 중간층, 중산층에서 훨씬 많다. 꼭 수도권만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 중산층, 개혁과 복지 추구하면서도 안정을 추구하는 층을 겨냥하고 있다"고 자신의 경쟁력을 내세웠다.
이날 토론회에서 솔직한 자기 고백으로 김근태계 의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손 고문이 답보 상태의 지지율을 뚫고, 당내 경선 이전에 반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