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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청소노동자가 에이즈 주사바늘에 찔리는 사고가 일어났지만 여전히 청소노동자나 간병인들은 각종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특히 밤낮으로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간병인들은 감염 위험에 노출된 채 살인적인 근무환경에 내몰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밥은 서서, 잠은 쪼그린 채"…쉴 곳이 없는 휴식시간 오히려 곤욕스러워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벌써 5년째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는 이 모(63)씨가 제일 괴로운 때는 '휴식시간'이다.
"배려가 고맙긴 해도 막상 쉬라고 하면 쉴데가 없어. 환자 옆에 있으면 보조의자라도 쓸 수 있는데, 환자 가족이 오면 밖에 나와있어야 하니까 계속 배회할 수 밖에 없어 오히려 더 힘들어요."
편안히 잠을 청해야 할 밤 시간도 근무의 연장이다. 딱딱한 보조침대에 몸을 누이고 밤중에도 돌발상황이 생기면 벌떡 일어나야 하니 선잠을 자는 것이 익숙해졌다.
식사마저 배선실에 선 채로 '번개불에 콩 구워먹듯' 해결하거나 아예 거를 때가 많다.
이씨는 "앉아서 편안하게 밥을 먹고 싶은데 상황이 돼야 말이죠. 환자가 조금만 부스럭거려도 자다가 일어나는데 다음 날이면 머리가 핑핑 돌고 어지러워서 고통스러운 적이 한두번이 아니예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 씨는 하루종일 대소변을 받아내고 무거운 환자를 침대로 옮기거나 씻기는 일을 계속한다.
일하는 곳이 '병원'이라서 힘든 것도 있다. 이 씨는 엑스레이를 찍는 환자의 시중을 드는 것이 못내 불안하다고 말한다.
이 씨는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환자를 잡고 엑스레이를 찍는데 방사선이 몸에 안 좋을 것 같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또 "마스크나 장갑을 개인적으로 따로 요청해 쓰긴 하지만 다 쓴 주사바늘에 찔리거나 감염이 될까봐 항상 불안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상을 떠난 남편 대신 혼자 생계를 꾸려야 하는 이 씨에게 다른 일을 찾아본다는 것은 '사치'일 뿐이다.
◈ 평균 근로시간 기준시간의 3배 넘어…감염 등 사고위험 여전이런 사정은 이 씨만의 얘기가 아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22일 발표한 '병원 청소노동자 및 간병노동자 감염 및 사고 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사자의 69.5%가 하루 24시간씩 주 6일 연속 근무(주 144시간)를 하고 있었다.
근로기준법에 따른 노동시간(휴게시간 제외하고 1주일에 40시간)의 3배를 훌쩍 뛰어넘는 충격적인 수준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2월까지 4개 대학병원 257명의 간병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반면 이들이 받는 임금은 평균 월 100만원 내외로 매우 적은 수준이었다. 이 씨의 경우도 일당 6만원~6만 5천원씩 주급으로 받는다.
하루 24시간을 꼬박 일하니 시급으로 계산하면 2,500원 남짓. 1시간을 일해도 병원 식당에서 파는 3,500원짜리 밥 한끼 사먹기도 힘들다.
반면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간병인들이 감당해야 하는 위험부담은 컸다.
환자로 인해 감염된 적이 있다고 답한 간병인이 전체의 15%로 피부병, 독감, 결핵의 순서로 감염된 횟수가 높았다. 또한 31%인 72명이 주사침 사고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조사대상자의 전체 1/3이 넘는 간병인들이 의료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실상이 이런데도 간병인들은 아무런 보호장치없이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스크 등 보호장비를 지급받았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27.8%, 병원차원의 안전교육을 받았다고 답한 사람은 고작 1.8% 뿐이었다.
또 96.1%의 간병인들은 감염이 되거나 사고를 당했을 경우 치료비를 스스로 부담하고 있었다.
◈ 병원 "간병인은 우리 직원 아냐" 산업재해에 무방비고용노동부는 안전보건 관련법에서 병원이 병원노동자의 감염사고 예방과 사고발생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간병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대부분이 법적으로 '병원노동자'에 해당되지 않는 특수고용직이거나 외주노동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전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사고가 나도 산업재해 적용이 쉽지 않다.
공공운수노조 차승희 간병분회장은 "간호사나 의사, 환자 가족은 감염여부를 검사하면서도 간병인에게는 감염위험조차 고지하지 않았던 사례도 비일비재하다"면서 심각성을 설명했다.
조사를 담당한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임상혁 소장도 "우리나라가 외국보다 2~3배 이상 위험한 것으로 나왔다."면서 "결국 노동자들을 직접 사용하는 병원에서 보다 책임을 느껴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