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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노벨문학상 수상작이 서점에서 외면 당하고 있다. 그도 당연한 것이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우리말 번역이 어색하면 누가 거들떠나 보겠는가?
10여 년 전만 해도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면 불과 일주일 만에 작가의 책이 번역돼 비치되곤 했는데 이제는 이런 현상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간이 쫓기니 원본을 여러 개로 쪼개 번역가들에게 주는데 자기가 맡은 부분의 앞에 무슨 내용이 들었는지 특히 ''she''나 ''he''같은 것은 누구를 지칭하는지 모르니 그냥 ''그는''이나 ''그녀는''으로 일관할 뿐이다.
이 외에 우리말도 영어도 아닌 이상한 제3의 언어가 태어나기도 한다.
''He received a visit from his brother''라는 문장을 보자. 가장 흔하게 보이는 번역체로 바꾸면 ''그는 동생의 방문을 받았다''인데 방문(visit)이라는 말이 손으로 야구공처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럴 때는 과감하게 주어와 목적어를 바꿔 ''동생이 그를 방문했다''라고 말해야 읽기도 편하고 이해도 쉽다.
다른 예를 보자. ''She dreamed of becoming an actress, but met with little success'' 이 문장은 ''배우가 되기를 원했지만 좀처럼 성공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로 번역해야 마땅한데 ''성공을 할 수 없었다''로만 밋밋하게 바꾼다.
''little''이라는 말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거의 없다는 말이다. 굳이 말하면 성공할 기회가 안 온 것은 아니지만 거의 없어 결국 성공을 못했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Wolfgang is a German national with a British education who speaks an upper-class accent''라는 문장을 보자. 우리말을 잘 모르는 번역자라면 이 문장을 ''영국식 교육을 받은 독일시민 볼프강은 상류층 영어를 사용한다''고 하겠지만 나라면 ''볼프강은 비록 독일인이지만 영국인학교를 다녀 상류층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말하겠다.
한 문장에 이 볼프강이라는 사람의 국적, 교육배경, 왜 고급영어를 구사하는지가 다 들어있으니, 이는 이유나 양보를 나타내는 말을 집어 넣어줄 필요가 있다.
번역은 쓰는 사람이 아닌 듣는 사람의 귀에 자연스러워야 하고 이것이 독자라는 고객에 대한 서비스정신이다.
※필자는 영어, 독일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한국 토박이로, ''교과서를 덮으면 외국어가 춤춘다''의 저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