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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 전철역에 3개의 홈플러스, 기네스북에 올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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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또 들어서면 망원 재래시장은 불 보듯 초토화"
시장상인들, 녹색 조끼 입고 '입점반대' 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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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10시, 서울 망원시장은 비록 손님은 적었지만 활기찬 분위기였다. 상인들은 자신의 가게 앞을 쓸고, 물건을 진열했다. 닭강정, 닭꼬치를 파는 치킨 가게의 젊은 점원은 치킨을 튀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여느 시장과 다름없는 풍경이었지만 특이한 것은 시장 사람들 모두 '홈플러스 NO'라고 적힌 녹색 조끼를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

골목어귀 방앗간에서는 들깨 볶는 고소한 냄새가 풍겨나왔다. 이곳이 황무지였던 1964년, 고우균(76세) 할아버지가 연 유서 깊은 방앗간이다.

혼자 내려와서 군에 들어갔던 할아버지는 군에서 나오자마자 정부에 떠밀려서 이곳 망원까지 왔다고 했다. 너무 많이 고생해서 책을 하나 써도 될 것 같다며 할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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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과 상인이 신뢰가 없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 장사하는 사람은 모두 거짓말을 해. 나는 손님에게 더 이익을 주기 위해 거짓말을 해. 거짓말을 해서 나쁜 물건을 팔면 사기지. 그런 거짓말과 급이 다른 거지. 그래서 우리가 손님이 많아. "

할아버지는 어제 밤새 서울시장에게 보낼 청원서를 썼다. 방앗간을 48년째 운영중인 할아버지는 기가 차다고 말했다. 망원역에도 이미 기업형 슈퍼마켓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있고 근처 상암에 홈플러스가 있는데, 670미터 떨어진 합정에 또 홈플러스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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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동에 대형마트가 설치되면 망원 재래시장은 불을 보듯 초토화됩니다. 왜냐하면 돈 많은 대형마트를 상대할 수 없습니다. 망원동 재래 시장 상인들은 아주 빈약합니다."

문구점에서 산 평범한 편지지에 가끔씩 맞춤법이 틀린 구석이 있어도, 또박 또박 써 내려간 글씨는 할아버지의 진심이 담겨있었다. 할아버지는 처음 홈플러스가 들어섰을 때,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형마트가) 무슨 영향이 있을지 그땐 몰랐어. 한 두달정도 신기하니까 사람들이 그리 가더라고."

할아버지는 아들 대신에 아침에 잠깐 가게를 봐주고 계셨다. 2001년 KT에 다니는 아들이 KT의 민영화로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할아버지는 아들에게 방앗간을 물려줬다고 말했다.

조금 지나 할아버지의 아들 종순(49)씨가 가게안으로 들어왔다. 종순씨는 망원시장 상가회에서 임원을 맡고 있다. 그는 이번 조끼 착용 아이디어가 '샐러리맨 초한지'에서 차용했다고 말했다. "리본을 하자", "머리띠를 하자" 등 많은 얘기가 오갔지만, 상가회는 결국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 '조끼'를 선택했다. 그는 가게마다 2벌 이상씩 나누어 가졌다고 말했다.

몇몇 회원들이 부끄러워할때 그는 "이게 우리를 살리는 거다"라며 그들에게 조끼 착용을 권했다고 말했다. 그는 재래시장의 위급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이 옷을 입는 거라며 자신은 부끄러워도 이 옷을 입고 홍대까지 나간다고 말했다.

그는 이 조끼를 본 손님들의 반응이 각양각색이라고 했다. 응원하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무슨일이냐" 묻는 손님도 있고, "그렇게 큰 회사랑 싸워서 이기겠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손님도 있다고 했다.

고종순씨는 마포구청에 대한 불만도 토로했다.

"(지하철 6호선)4개 전철역에 3개의 홈플러스. 내가 기네스북에 올릴꺼야. 2010년 12월에 홈플러스 합정점 입점 신청이 들어왔는데, 이게 등록제라 그냥 통과가 된거에요. 근데 우리한테는 아무 말도 없었단 말이지. 2011년 10월에야, 그것도 우리가 질문해서 알았어요. 구청에서는 그 해 12월에 현장 실태 조사서도 만들었으면서 해가 지나고 어제까지 우리에게 주지도 않았단 말이지."

2011년 개정된 유통법에 의하면 전통상업보존구역에서 1km 이상 떨어지지 않으면 대형마트가 허가될 수 없는데, 홈플러스 합정점의 경우 그전에 등록됐기 때문에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시가 한누리창업연구소에 의뢰한 조사서는 홈플러스가 입점했을 때 자영업자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입점 될 홈플러스에서 반경 1km 위치에 있는 30년 된 소형마트조차 홈플러스가 입점하면 폐업을 고려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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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가 지나자 시장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말끔한 시장 거리로 유모차를 끌고 나온 어머니, 지하철역으로 황급히 발을 옮기는 젊은이, 시장 안 분식점에서 튀김 먹고 있는 중학생 등 사람들이 늘어갔다.

녹색 조끼를 입은 상인들의 손이 더 분주해졌다.

망원시장에서 700미터 떨어진 합정역 바로 앞에는 공사중인 대형건물이 있었다. 건물의 크기는 곧 입점될 홈플러스의 넓이를 짐작케했다. 개설 등록 당시 제출한 기록에 따르면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홈플러스가 입점할 계획이었는데 현재 이 계획은 지하 2층 1만4천제곱미터 규모로 축소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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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가 입점할 예정인 35층 규모의 주상복합 빌딩은 거의 다 지어진 듯이 보였다.

대형마트가 또 들어온다는 시장상인들은 생존이 걸린 문제라며 분노하고 있다. 이들은 11일부터 녹색 조끼를 입고 시장에 나오고 있으며 13일부터 '홈플러스 입점반대' 서명운동을 벌여 약 2만명의 서명을 받았다. 상인회는 다른 상인회와 연합해 3월 10일날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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