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방송일 : 2012년 2월 21일 (화) 오후 7시■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출 연 : 경남대 로스쿨 신 평 교수▶정관용> 시사자키 2부 시작하겠습니다. 서기호 판사, 아니, 재임용에 탈락했으니까 이제 전 판사라고 불러야 되는군요. 그것으로 촉발된 판사회의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오늘은 서 전 판사가 속해있던 서울 북부지방 법원에서도 판사회의가 열렸고 앞으로 대전, 부산, 의정부, 수원, 광주, 전국에서 판사회의가 예정되어 있다고 하네요. 법관 재임용 제도의 문제점, 이걸 이제 판사들이 모여서 논의하고 개선하자는 것인데, 이게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1993년에 신평 판사, 1997년 방희선 판사 역시 법원 개혁을 주장하다가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던 적이 있지요. 그래서 오늘 시사자키 2부, 1993년 탈락하셨던 신평 판사, 현재는 교수로 재직 중이신데요. 함께 만나보도록 합니다. 잠깐 광고 듣고 오지요.
▶정관용>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신평 교수. 1993년까지는 판사이셨던 분, 오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교수님, 어서 오십시오.
▷신평> 예, 안녕하십니까?
▶정관용> 교수로는 언제부터 재직하셨어요?
▷신평> 제가 2000년도부터, 그러니까 벌써 한 12년이 넘었습니다.
▶정관용> 그러네요. 1993년 이후 2000년까지는 그러면 변호사로 활동?
▷신평> 예, 그렇습니다.
▶정관용> 아, 그러셨군요. 지금 서기호 전 판사가 되어버렸는데, 그러면서 우리 신평 교수님, 또 방희선 교수님, 그분도 교수님으로 계시지요.
▷신평> 예.
▶정관용> 두분이 언론지상에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신평> 저는 그걸 사실 잘 몰랐습니다.
▶정관용> 그랬어요? 보도되었던 사실을 잘 모르고 계셨어요?
▷신평> 예, 이상하게 잘 몰랐습니다.
▶정관용> 아, 그러셨군요. 왜냐하면 그 과거 사례들을 찾다 보니까 재임용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그걸 통해 탈락한 사례는 몇 건 없더라, 그런데 한 건 한 건 다 살펴보니 뭐 이러저러하더라, 그러면서 이제 우리 신 교수님을 저희가 모시게 된 겁니다. 93년 당시로 좀 돌아가 보겠습니다. 왜 탈락하셨다고 생각하세요, 신 교수님?
▷신평> 그 당시에 제가 꾸준하게 우리 사법부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지적을 했지요. 그러면서 결정적으로 당시에 주간조선에서 저한테 글을 하나 써달라고 계속 요청했습니다. 처음에는 계속 거절을 했는데, 그러다가 결국 제가 써줬지요.
▶정관용> 어떤 내용으로요?
▷신평> 그 속에서 특히 사법부 상층부의 격분을 산 것이 구체적인 사법 부정을 거론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있어야 되겠느냐.
▶정관용> 어떤 사례인데요? 사법 부정이라고 하는 게 뭐지요?
▷신평> 결국 돈이 거래되면서 판결이 왜곡되는 그런 형태의 어떤 아주 심한 경우를 예를 들었지요.
▶정관용> 판사가 돈 받고 판결을 바꾼다, 그런 건가요?
▷신평> 뭐 그런 경우도 있는 거지요.
▶정관용> 정말 그런 경우가 있었습니까? 그 당시에는요?
▷신평> 뭐 그것은 당시 글에서는 제가 옆에서 본 것으로 썼습니다만, 좀 말씀드리기 거북합니다만, 실제 뭐 그런 일은 과거에는 비일비재했습니다.
▶정관용> 비일비재했어요?
▷신평> 뭐 그렇다고 해서 많은 분들이, 훌륭한 판사들이 묵묵하게 자신의 직분을 다해온 것, 그것을 우리가 과소평가해서는 절대 안 되겠습니다만.
▶정관용> 아, 물론입니다. 소수의 판사겠지만.
▷신평> 예, 그렇겠지요.
▶정관용> 돈까지 오고가는 그런 일이 있었다?
▷신평> 그럼요. 그것을 제가 지적을 하면서 내부적인 정풍. 당시에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고 초반이었지요.
▶정관용> 그렇지요.
▷신평> 사회 전반적으로 개혁의 열풍이 불어닥쳤지요. 거기에 맞춰서 우리 사법부도 정말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는 진정한 그런 사법부가 되도록 하자, 그것을 주장을 했지요.
▶정관용> 주간조선의 기고를 통해?
▷신평> 예.
▶정관용> 거기에 그 사법 부정 사례를 구체적인 판사 이름까지 거론하면서 했습니까?
▷신평> 아,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정관용> 그건 아니고요?
▷신평> 예.
▶정관용> 그러나 신 교수님은 알고 계셨고?
▷신평> 예, 당시에 저한테 대한 재임용 탈락은 당시에 대법원장인 김덕주 대법원장께서 거의 혼자서 결정을 하셨는데, 제가 또 이름을 밝히지 않겠습니다만, 밝힐 수가 없습니다만, 당시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고위 간부를 하시던 분이 제가 재임용 탈락을 하고 나서 저를 위로해주러 오셨습니다. 오셔서 하시는 말씀, 그때 자세한 사정을 제가 들었습니다만, 당시에 대법원장께서는 거의 독단으로 그것을 결정을 하셨고. 그 간부가 하신 말씀도 그 말만 안 썼으면 당신은 괜찮았을 것인데.
▶정관용> 사법 부정?
▷신평> 그렇지요. 그 말 때문에 결국 그런 결론이 이렇게 된 것 같다, 그렇게 저를 위로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정관용> 그 당시에 재임용 심사 하던 제도, 또 뭐 무슨 절차, 이런 것하고 지금 서기호 전 판사가 재임용에 탈락한 제도와 절차하고 똑같아요? 93년하고 지금하고?
▷신평> 아이고, 많이 틀립니다.
▶정관용> 많이 달라졌어요? 그때는 어땠습니까?
▷신평> 당시에는 저한테 어떤 소명을 할 수 있는 기회, 그런 것 아무 것도 없었지요.
▶정관용> 인사위원회 이런 것도 없었고?
▷신평> 인사위원회가 있었습니다만, 당시에 대법원의 다른 대법관이나 또 간부들조차도 모르는 상태에서 대법원장 혼자서 결정을 하신 것이고. 또한 뭐 여러 가지 점에서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야만의, 야만적인 그런 시대였다고 할 수 있지요.
▶정관용> 그러니까 10년차 되면 재임용 심사를 하는 것은 똑같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신평> 그렇습니다.
▶정관용> 우리 신 교수께서도 그때 10년 재직을 하셨던 거고. 대상자가 되는 사람들이 여럿이 있었을 것 아니겠습니까?
▷신평> 예.
▶정관용> 그런데 그 가운데 무슨 인사위원회 이런 걸 거쳤는데 누구누구가 회부되었고 이런 게 공개가 전혀 안 됩니까?
▷신평> 전혀 되지 않았고, 저 자신도 그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정관용> 그러면 어느 날 갑자기 당신 재임용 탈락이야, 이렇게 통보가 왔어요?
▷신평> 그렇습니다.
▶정관용> 그래요?
▷신평> 예. (웃음) 이것은 헌법적으로 명백히 적법절차 조항을 어긴 잘못된 처사였습니다.
▶정관용> 지금 제도도 서기호 전 판사 저희가 저희 방송에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아주 너무 폐쇄적이더라고요. 인사위원회 위원 명단이 누구인지도 공개가 안 되고, 10년 동안 받은 근무평정 점수도 제대로 공개가 안 되고. 개인에게 통보해주지도 않고. 이런 식이더라고요. 그리고 소명하기 위해서 많은 자료를 가져갔지만 그런 기회도 충분히 주지 않고. 그나마 나아진 게 인사위원회 참석은 하도록 하는 모양이던데, 신 교수님 때는 그런 절차도 아예 없었다?
▷신평> 뭐 그렇지요. 그리고 근무평정이 이번에 많이 문제가 됐는데, 이것이 뭐 긍정적 기능도 있고 부정적인 기능도 있습니다만, 여하튼 간에 판사의 여러 가지 요소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어떤 하나의 기준은 세워지는 것이지요. 당시에는 그런 근무평정의 기준조차도 없었습니다.
▶정관용> 그런데 지금도 근무평정 기준이 서 전 판사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객관적 수치화할 수 있는 것은 재판 처리율, 그 다음에 항소가 되었느냐 안 되었느냐, 그런 비율, 이런 숫자만 있고 나머지는 다 법원장들의 주관적 판단이더라고요.
▷신평> 그럴 수 있겠지요.
▶정관용> 그러면 그걸 객관적 기준이라고 말하기가 어렵지요, 그렇지요?
▷신평> 그렇지요.
▶정관용> 그런데 당시에는 그런 것도 아예 없었다?
▷신평> 그렇지요.
▶정관용> 그러면 당시에 우리 신 교수님한테 당신 재임용 탈락이야, 라고 하면서 이유도 적시를 안 하던가요?
▷신평> 뭐 이유도 없었지요.
▶정관용> 아무 이유도 없어요?
▷신평> 예.
▶정관용> 지금은 그래도 근무평정 점수 뭐 하위 2% 이런 말은 하던데 그때는 그런 것도 없었다?
▷신평> 예, 그렇습니다.
▶정관용>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신평> 음, 당시에 저의 문제를 둘러싸고 국회에서 청문회도 열렸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뚜렷한 결론을 낼 수가 없었지요. 대법원에서는 그런 원인은 밝힐 수 없다.
▶정관용> 어, 밝힐 수 없다?
▷신평> 예, 그렇게 말하고. 그런데 제가 특히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재임용 탈락을 한 것은 뭐 제가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또 이 저에 대한 동정적인 여론이 일어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 저의 개인 신상에 대해서 허위사실을 날조해서 이 법조 출입 기자들을 상대로 해서 많이 공작을 펼쳤습니다.
▶정관용> 어떤 허위사실이요?
▷신평> 어, 차마 말하기 어려운 것입니다만, 사생활에 있어서 제가 어떤, 저의 결혼생활과 직접 관련된, 그래서 제가 뭐 이상하게 결혼을 했다느니 하며 그런 말을 했는데, 그런 것은 대부분 조작된 것이었습니다. 아니, 대부분 조작이 아니라 완전히 다 조작이었습니다.
▶정관용> 그걸 누가 그렇게 했어요?
▷신평> 당시 대법원장님의 측근들이 대법원장님을 옹호하기 위해서 그런 공작을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정관용> 아이고. 그런 이야기까지 떠돌아다니고 그게 언론에 보도도 됐습니까?
▷신평> 일부 보도가 됐지요.
▶정관용> 그럼 그 가족들께서도 그런 보도를 봤을 것 아니에요?
▷신평> 허, 기가 막혔지요. 그때 저희 집사람은 어린 자식이 두 명 있었습니다만, 그 자식들 놓아두고 그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자살까지 생각을 했습니다.
▶정관용> 아이고, 아이고...
▷신평>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이런 누명을 덮어쓸 수 있느냐, 내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오히려 내가 죽음으로써 이런 누명을 벗을 수 있는 것 아니겠냐, 그런 말을,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정관용> 아이고. 그나마 잘 극복하셨고?
▷신평> 그래서, 그렇지요. 우리 한국사회에서 한번 이런 조직에 의해서 배척받은 사람이 다시 일어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들었습니다만, 저는 뭐 다행히 다시 일어서서 이제 교수로서 잘 살고 있습니다.
▶정관용> 가족들께서도 잘 극복하셨고? 아무튼?
▷신평> 예, 잘하고 있습니다.
▶정관용> 그런데 그게 1993년 몇월입니까?
▷신평> 8월이었습니다.
▶정관용> 8월?
▷신평> 예.
▶정관용> 그런데 지금 저희가 자료를 보면 대한민국 역사상 세 번의 이른바 사법파동이라고 불려질 만한 것이 있는데, 제3차 사법파동이 바로 93년이거든요.
▷신평> 예, 그렇습니다.
▶정관용> 그런데 이게 김영삼 대통령 취임하고 나서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온 사회에 이른바 문민화 개혁이 추진되면서 93년 6월에 서울민사지법의 소장판사 40여 명, 이 가운데 이제 강금실 전 장관도 있고 박시환 전 대법관도 있고. 이런 분들이 서명을 해서 사법부 개혁에 관한 건의문을 제출했거든요. 알고 계셨지요?
▷신평> 예.
▶정관용> 그리고 그 이후 그것 때문인지 모르지만 결국 김덕주 대법원장이 퇴진했거든요.
▷신평> 예.
▶정관용> 그러면 우리 신평 교수께서는 바로 그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까?
▷신평> 예, 김덕주 대법원장께서 퇴진하시기 전에 그분이 하신 일이고.
▶정관용> 아니 그런데, 6월에 이렇게 서울민사지법... 아, 당시 어느 법원에 계셨어요?
▷신평> 저는 대구 지방법원에 있었습니다.
▶정관용> 대구에? 그런데 서울민사지법 판사들이 그런 성명 같은 것 발표하고 그런 것 다 알고 계셨지요?
▷신평> 예.
▶정관용> 그런 분위기인데도 탈락을 시켰다?
▷신평> 어, 당시에 그런 상황을 잘 모르면 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만, 당시에 김영삼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 핵심에서는 강력하게 사회개혁을 부르짖고 있었습니다만, 그때 이 개혁에 저항하는 최고의 성채, 보루 역할을 한 곳이 바로 사법부였습니다. 당시에 사법부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법원장이 부장들 모아서 거의 매일같이 김영삼 정권을 성토를 하고...
▶정관용> 그랬어요?
▷신평> 그랬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정관용> 왜, 뭐라고 그러면서 성토를 했어요?
▷신평> 뭐 결국 어떤 이런 개혁이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것이다.
▶정관용> 사회 안정을 해친다, 뭐 이런 것?
▷신평> 뭐 그런 식이었지요.
▶정관용> 이야, 법원이?
▷신평> 법원이 뭐 대단했지요. 가장 반개혁적인 그런 성향을 나타내면서 저항을 했습니다. 그래서...
▶정관용> 그러면 법원은 군사정부 시절이 좋았다는 이야기입니까?
▷신평> 글쎄요, 그건 뭐... (웃음) 그런 아주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지요. 과거에 프랑스에서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도 에밀 졸라가 드레퓌스를 위해서 변론을 하면서 또 여러 가지 문헌, 기록을 남겼는데, 그때 에밀 졸라가 가장 분개한 것은 바로 이 법조계였지요. 법조계는 드레퓌스가 설사 무죄가 하더라도 죄를 받아야 한다, 처벌해야 한다, 그런 이상한 논리를 폈지요. 그래서 에밀 졸라가 온 몸으로 저항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정관용> 93년 6월 서울민사지법 판사들이 성명서까지, 사법부도 개혁해야 한다는 것을 내고. 그런 분위기 와중인데도 대법원장은 독단으로 신평 교수를 당시 재임용 탈락을 시키고. 그리고 허위날조 조작 사실까지 퍼뜨리고. 정말 야만의 시대였군요.
▷신평> 그렇지요.
▶정관용> 그 후에 97년 방희선 판사 재임용 탈락 때도 유심히 보셨을 것 아니에요?
▷신평> 그렇게 제가 잘 알지를 못합니다. ▶정관용> 그래요?
▷신평> 그러나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정관용> 그 방희선 판사도 어딘가에 사법부 개혁 기고한 후에 탈락했다고 알고 있거든요.
▷신평> 방 판사는 기고보다는 여러 가지 어떤...
▶정관용> 발언?
▷신평> 발언 같은 것이... 방 판사가 광주지방법원의 판사로 근무하면서 법과 원칙에 따라서 업무를 처리하려고 했는데 그것이 상당한 마찰을 빚으면서 또 사법부 상층부와 갈등을 겪고, 그래서 그것이 결국 재임용 탈락으로 이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관용> 이번에 서기호 전 판사 재임용 관련된 이 일련의 소식은 그래도 또 유심히 보셨을 것 아니겠어요?
▷신평> 그래도 그렇게 잘 안다고야 할 수 있겠습니까. 뭐...
▶정관용> 아니, 우리 교수님께서는 정말 이제는 학교에만 몸담고 계신가 봐요, 푹 파묻혀 계신가 봐요.
▷신평> 그렇습니다.
▶정관용> 본인과 똑같은 사례가 막 벌어지는데 그것 유심히 안 보시게 되세요?
▷신평> 물론 다른 사람들보다야 자세히 보겠습니다만, 과연 서기호 판사가 어떤 인물인가, 또 아주 복잡한 여러 가지 숨어있는 상황들, 그런 것까지 다 캐지는... 그걸 캐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인데...
▶정관용> 물론이지요.
▷신평> 또 제 할 일이 많다 보니까 그러지 못한 셈이지요.
▶정관용> 말씀하시는 내용을 제가 들어보니까 다른 분하고 조금 기준이 다르세요.
▷신평> (웃음)
▶정관용> 저희는 그냥 기사 열심히 보고 그러면 아유, 잘 열심히 봤지요, 이렇게 답변할 텐데, 역시 판사랑 이 법조계에 오래 계셔서 그런지 내가 사실관계 전후좌우를 정확히 모르면 잘 안다고 말하지 않으시는 그런 스타일.
▷신평> 그렇습니다. (웃음)
▶정관용> 저보다는 훨씬 관심 가지고 많이 보셨을 텐데.
▷신평> 아마 그럴 겁니다.
▶정관용> 어떻게 느끼세요? 서기호 전 판사도 역시 신평 교수와 비슷한 사례라고 보십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신평> 기본적으로는 비슷하겠지요. 그러나 여러 가지 그분이 겪은 일들은 과거의 야만의 시대와는 좀 다른 그런 절차를 거쳤고. 그렇습니다. 아주 제가 그분에 대해서 또 참 착잡한 심정을 가지고 또 안된 마음... 저도 그런 아픔을 겪었으니까.
▶정관용> 그렇지요.
▷신평> 그런 동병상련의 처지에서 대단히 마음이 아픈 그런 구석이 있고 또 제가 위로해드리고 싶고 하는 그런 면이 있습니다.
▶정관용> 서기호 전 판사 저희하고 인터뷰하면서 밝힌 내용을 보면 그 촛불 파동 이후 신영철 전 대법관 사태,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신평> 예.
▶정관용> 바로 거기에 대해서 서기호 전 판사가 앞장서서, 앞장서서 이것 문제 있다, 신영철 대법관은 물러나야 된다, 이런 서명운동 같은 걸 주도하고. 그건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신평> 예.
▶정관용> 바로 그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신평>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이제 근무평정, 그 점이 그쪽에서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였고. 또 조금 아쉬운 점은 서 판사가 어떤 표현을 하는데 있어서 조금 피했으면 좋았을 그런 표현을 한 것이 아니냐.
▶정관용> 아, 그 SNS 상에 ‘가카의 빅엿’ 이런 표현?
▷신평> 예, 그런 것은 판사로서 좀 피했어야 될 것이 아니냐. 물론 판사도 한 개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그런 언론의 자유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판사가 가지는 사회적 지위로 볼 적에 만약에 그런 비판을 할 것 같으면 좀더 논리를 거쳐서 대담하게 용감하게 나설 것이지 아, 그런 표현을 함으로 해서 그분이 가지고 있었던 본래의 뜻이 왜곡 당하고 또 공격을 당하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아쉽게 생각합니다.
▶정관용> 그러니까 그런 표현을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제가 지금 여쭤보고자 하는 것은 그런, 지금 우리 신 교수께서도 그건 문제라고 지적하셨어요. 그런데 그게 재임용 탈락할 만한 사안입니까? 그런 표현을 구사했다는 것이?
▷신평> 제가 판단하는 것은 그런 여러 가지 사유가 복합적으로 작용을 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정관용> 그런 표현 사용, 그리고 신영철 대법관 때의 문제, 이런 것들?
▷신평> 예.
▶정관용> 그래서 착잡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만, 지금 신 교수께서 만약 대법원 인사위원회 위원이라면 이분 재임용 탈락입니까, 아니면 재임용입니까?
▷신평> 저의 개인적인 그런 아픈 경험이 원인이 되어서라도 저는 그래서는 안 된다, 라고 생각을 했겠지요. 그보다는 다른 경로를 통해서 서기호 판사에게 좀 적절치 못한 언행은 삼가라, 그리고 판사로서의 직분을 좀더 열심히 성실하게 잘 수행을 하도록 하라, 이번 한번에 한해서 우리가 당신의 장래를 생각하겠다, 뭐 그런 방법을 써서 서기호 판사를 더 훌륭한 장래의 판사로 길러내는데 그런 방법을, 저는 개인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그런 방법을 썼겠지요.
▶정관용> 전적으로 서기호 전 판사 편을 들지는 않으십니다만, 그러나 과도하다, 그런 판단이시군요.
▷신평> 그렇지요.
▶정관용> 그리고 법관 재임용 제도 자체가 아까 표현하신 것처럼 93년에는 야만의 시대였다. 그런데 지금도 벌써 세월이 얼마나 많이 흘렀습니까. 거의 벌써 20년이 흘렀는데, 지금도 저희들 눈에 보기에는 일반 민간기업의 이른바 근무평정 제도보다도 훨씬 후진적이거든요. 법원장의 주관적 판단이 매우 많이 작용하는 그런 근무평정 점수를 주고, 그걸 매년마다 판사에게 통보도 안 해주고. 왜 이런 건 안 바뀝니까?
▷신평> 사실은 말이지요. 그 법관 근무평정 제도를 만드는데 제가 상당히 어떤 역할을 했습니다.
▶정관용> 그러셨어요?
▷신평> 예, 제가 1988년도, 89년도에 거쳐서 한국 법관으로서는 최초로 일본에 파견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제가 대법원의 연락창구 역할을 하면서 일본에 근무평정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전에는, 그 당시까지 한국의 법관 인사제도는 거의 뭐 주먹구구식에 불과했습니다. 창피할 정도였지요. 그래서 제가 그것을 대법원에 말씀을 드리면서 이것은 우리가 개선해야 되지 않겠냐, 일본식의 이런 제도를 우리가 도입해야 되지 않겠냐, 그렇게 말씀을 드리니까 아, 그럼 그런 자료를 좀 수집해다오, 그래서 제가 그 자료를 수집해서 자료를 보내드리고 그렇게 했지요. 그렇게 해서 제가 일조를 했습니다만 지금...
▶정관용> 그렇게 해서 그게 제도화된 게 언제예요?
▷신평> 그것이 1994년도에 제도화되었습니다.
▶정관용> 아, 우리 신 교수님 잘리고 난 후에?
▷신평> 그렇지요. 그러나 이번에 이런 과정을 보면서 이것이 좀 정교하지 못하게, 또 주관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하는...
▶정관용> 그러게 말이에요.
▷신평> 이것은 여러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지 않느냐,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정관용> 아니, 법관도, 물론 독립적인 기구이지만 국가 공무원이고 말이지요. 요즘은 행정부의 고위 공직자들 같은 경우도, 아니, 고위뿐만 아니라 서로 다면평가도 하고, 뭐 밑의 부하직원이 평가하고, 위의 직원이 평가하기도 하고, 그런 것이 심지어는 보너스에 영향까지도 주고. 그런 건 정상적인 것 아닙니까. 그런데 사법부만 이렇게 변화가 없어요.
▷신평> 변한다고 한 것이 이 정도인 것이지요.
▶정관용> 그래서 지금 전국의 판사들이 모여서 판사회의를 하면서 아마도 판사회의에서는 서기호 전 판사 재임용 탈락 문제 있다는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있었던 판사회의에서는 이 재임용 제도 고쳐야 한다, 라는 목소리들을 많이 내고 있거든요. 이런 판사회의의 의미, 또 이렇게 모여서 이런 목소리를 내면 결과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신평> 어, 제가 보는 한, 그 판사회의에서 다소 거론된다고 하더라도 큰 문제없이 결국에는 수습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재임용 제도가 갖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을 하는 것은 의미가 있겠습니다만, 서기호 판사의 개인 신상의 구제, 그런 것은...
▶정관용> 어렵다?
▷신평> 그런 면은 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뭐 제가 듣기로는 또 서 판사가 헌법소원을 제기한다고 합니다만, 이런 대법원이 일정한 절차를 거쳐서 이런 재임용 판단을 내린 이상 구제는 어려울 것입니다.
▶정관용> 기존 제도, 현 제도는 다 밟았으니까?
▷신평> 예.
▶정관용> 그렇지요. 그러나 그나마 그래도 이번을 계기로 이런 후진적인 재임용 제도가 제도적 개선은 좀 기대해볼 수 있지 않겠어요?
▷신평> 개선, 그 개선은 되리라고 봅니다.
▶정관용> 좀 투명해질까요? 어떻게 보세요?
▷신평> 그러나 완전하게 일반인들도 납득할 수 있는, 그런 정도 수준까지는 되기 어려운 것이...
▶정관용> 왜요? 왜? 왜 그렇게 사법부는 폐쇄적이고 보수적입니까? 천천히 가고?
▷신평> 이 법조계가 갖는 어떤 속성. 가령 이 법조계는 어떤 기존의 제도를 뒷받침하는, 만들어진 제도를 지원하는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정관용> 그렇지요.
▷신평> 그런 면에서 이 사회를 앞서나갈 수는 없습니다.
▶정관용> 물론이지요. 그렇지만 너무 뒤쳐져서는 안 되잖아요.
▷신평> 그렇지요. 저 같은 사람도 좀 답답할 때가 많은 거지요. 제가 지금 헌법도 가르칩니다만, 법조 윤리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볼 적에 이 사법부의 사법개혁, 이것은 좀더 빠른 속도로 진행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정관용> 그걸 오늘 말씀의 결론으로 삼겠습니다. 사회보다 앞서갈 수는 없다, 그러나 너무 뒤쳐져 있어서는 안 되고 지금보다는 조금 빠른 속도로 변해야 되겠다, 변하기를 바란다, 그런 애정의 말씀으로 듣지요.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신평> 예, 고맙습니다.
▶정관용>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신평 교수와의 대화 마무리 짓겠습니다. 35분, 3부에 다시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