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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코리아 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혹은 당시 가장 아름다웠던 여자라는 뜻이다. 여자로서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수식어지만 ‘미스코리아 진’ 출신 연기자 김연주(33)에게는 한바탕 즐겼던 ‘일장춘몽’ 같은 기억이자 넘어서야 할 ‘벽’이다.
지난해 MBC 드라마 ‘주홍글씨’와 KBS ‘영광의 재인’ 등 두 작품에 연달아 출연하면서 배우로서 누구보다 바쁜 한 해를 보낸 김연주를 만났다.
1999년 미스코리아 진으로 대한민국 대표 미인 자리에 올랐던 김연주는 2005년 드라마 ‘슬픈연가’를 통해 처음으로 주연 자리를 꿰찼다. 그토록 바라던 연기자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김연주는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쳤다. 그에겐 미스코리아도, 배우도, 연예인도 불편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3년여의 공백 끝에 ‘며느리와 며느님’을 시작으로 ‘주홍글씨’와 최근 ‘영광의 재인’까지 연기자로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는 김연주는 어느새 욕심쟁이가 됐다. 더 열심히 하는, 더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작년에 두 작품을 연달아 했는데 내 연기 인생에서 제일 열심히 산 한 해였던 것 같다. ‘주홍글씨’의 차혜란이란 캐릭터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캐릭터다. 굉장히 세면서 악역이지만 여배우로 살면서 평생 한번 맡을까 말까한 매력적인 역할이다. ‘영광의 재인’도 좋은 팀과 선배 연기자들을 만나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배우로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시간이었다.”
‘주홍글씨’와 ‘영광의 재인’ 모두 차가우면서도 이지적인 캐릭터를 소화한 김연주는 악역 전문이라는 수식어를 얻기도 한다. 첫 주연작인 ‘슬픈연가’에서도 악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긴데다 이목구비 뚜렷한 외모도 한 몫을 했다.
“사람들이 때론 밝은 역할 하고 싶지 않냐고 물어 보기도 한다. 근데 김연주하면 악역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인식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어떤 연기든 무슨 역할이든 내 스스로 내공을 쌓는 게 먼저니까. 그 후에 이미지를 바꾸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은 악역 캐스팅이 계속 들어오는 것은 감사한 일이고, 앞으로 또 할 것 같다. 그만큼 대중들이나 관계자들이 저의 그런 면을 높이 사는 거니까.”
김연주는 1999년 미스코리아로 데뷔하기 전, 1994년 방송된 청소년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교실’에 출연하며 처음 연예계에 발을 들여놨다. 연기자를 꿈꾸며 안양예고 연극영화과에 들어갔고, 미스코리아도 됐다.
“연기? 배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랑이 꽃피는 교실’이란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그냥 막연히 재밌었다. 뭣도 모르고 화려해 보이니 좋았고 막연히 동경했던 것 같다. 그래서 미스코리아도 됐다. 미스코리아는 연기자가 되기 위한 발판이었다. 그런데 김연주하면 미스코리아로만 떠올리는 분이 많다. 오히려 미스코리아를 통하지 않았으면 연기자로 더 빨리 자리잡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물론 후회는 안한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지금까지 온 자체가 대중의 인정을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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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주에게 미스코리아는 ‘일장춘몽’ 같은 것이고, 배우는 평생 일해서 쌓아가야 할 ‘직업’이다. “미스코리아는 꼬마였던 저를 사회에 내놓은 계기이자 여자로서 최고의 영광이다. 그러나 배우는 미스코리아라는 벽을 넘어 제 스스로 열심히 노력해서 얻어내야 할 평생 내 일이고 직업이다”라고 정의했다.
이제 ‘배우’라는 직업은 평생 놓고 싶지 않을 만큼 간절한 일이지만, 한 때는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다. 김연주는 김희선, 권상우, 연정훈과 함께 ‘슬픈연가’의 주인공을 맡아 미스코리아가 아닌 연기자로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돌연 공백기를 가졌다.
“원래 연기를 안하려고 했다. 너무 이른 나이에 미스코리아로 데뷔해 빨리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도 연기 생활을 했는데 주인공은 한번 해 봐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막상 주인공을 하고 나니 너무 힘들었다. 톱스타들의 상대역을 하기에 저는 너무 어렸고, 경험이 없었다. 너무 큰 작품이다 보니 힘들고 지쳤고 상처를 받았다. 그때 ‘됐다, 그만하자’란 생각을 했다.”
그렇게 김연주는 연예계를 떠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사회생활에 대한 대처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막상 아무것도 안하니 너무 좋더라. 미스코리아가 되고 나서 늘 행동을 조심해야 했고, 놀고 싶어도 못 놀고, 고상하고 우아한 척을 해야 했다. 나는 아직 앤데 다들 나를 그렇게 보지 않았다. 근데 다 그만두고 쉬다 보니 너무 좋더라. 그동안 왜 이렇게 불편하게 살았나 싶더라.”
3년의 공백기간 후 2008년 ‘며느리와 며느님’이란 작품으로 돌아왔다. 소속사와 계약기간이 남아 일을 해야 했고, 방송국에 갔다가 받은 대본이 너무 재밌어 보였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3년 만에 연기를 했는데 너무 좋더라. 그 전에는 항상 혼이 났었는데 ‘며느리와 며느님’ 작품을 하면서는 홍성창 감독님에게 늘 칭찬을 받았다. 미스코리아를 할 때는 엄마에게 얌전해야 한다면서 혼이 나고, 연기를 할 때는 못한다고 혼이 났다. 근데 홍 감독님은 처음 한자리수 시청률로 시작했을 때도 늘 잘하고 있다고 해줬다. 그 말에 나는 늘 잘하고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최고 시청률 24%까지 올라가면서 막을 내렸다. 그걸 겪으면서 이렇게 즐겁게 일할 수도 있구나를 알았고, 계속 연기생활을 해야겠다 싶었다.”
돌이켜보면, ‘슬픈연가’를 통해 배우로서 막 오르막길에 올라섰을 때 돌연 연예계를 떠나, 아쉬움도 남을 터. 그녀는 “솔직히 저도 사람이니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후회는 안한다. 배우로서 아쉬울 수 있지만, 인간 김연주로 봤을 때 그 시간은 분명 필요했다”고 돌아봤다.
남들보다 빨리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또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온 김연주는 그만큼 어른이 됐다. “인생의 여러 굴곡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제 크게 좋아하지도 크게 절망하지도 않게 됐다. 그저 제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재밌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 원하는 것을 하고 싶을 때까지 한다는 자체에 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