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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에 멍들다②]폭력의 쳇바퀴…피해학생이 가해학생으로, 다시 피해학생으로

지난달 20일 대구에서 중학생이 친구들의 폭력과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이후 전국 곳곳에서 봇물 터지듯 학교폭력 실상이 전해지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CBS는 학교폭력의 원인과 실태, 예방·사후 대책의 실효성을 검토하고 학교폭력을 없애기 위한 방향 등을 일주일에 걸쳐 짚어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주]

지난해 10월 서울 강북의 한 중학교에서 학급회의가 열렸다. 이 학급 A(15)군이 휘두르는 의자에 B(15)군이 다리를 다쳤기 때문이다.

학급회의에서는 뜻밖에도 A군이 아닌 B군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B군의 지속적인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A군이 결국 의자를 휘둘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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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평소 B군이 자신보다 체구가 작은 A군에 대해 이유 없이 욕을 하거나 뺨을 때리는 등 지속적으로 괴롭혀 왔다며 B군을 질타하고 나섰다.

문제는 B군 역시 일진들을 위해 빵과 담배를 사다나르는 빵셔틀·담배셔틀 역할을 하는 학교폭력의 피해학생이라는 점이다.

이렇듯 학교폭력의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은 무 자르듯 명확하게 나눠지지 않는다.

과거 학교폭력 피해학생이 가해학생이 되기도 하고, 한 교우관계 속에서 학교폭력의 피해학생이 다른 교우관계 속에서는 가해학생이 된다.

◈ 다문화가정 자녀·비만 학생 등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가 폭력의 희생양

학교폭력은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다. 다만 학교폭력의 희생양은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등에서는 다문화가정 자녀나 비만학생 등 외모가 다른 학생들과 차이가 나는 학생들이 학교폭력 피해학생으로 낙인찍히기 쉽다.

중학생 이모(15) 양은 "못생겼거나 뚱뚱하고 성격이 소심하면 친구들이 싫어해서 왕따가 된다"며 "못생겨도 성격이 활발하면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기도 하다"고 전했다.

지적장애나 발달장애를 가진 학생, 사회성이 부족해 다양한 친구관계를 형성하기 힘든 학생들도 학교폭력의 표적이 된다.

고등학생 정모(17) 군은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에 지적장애인이 한 명 있었는데 친구들 10여 명이 머리에 침을 뱉거나 교복에 껌을 뱉고, 책상을 뒤집어 놓는 등 1년 동안 괴롭혔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물론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모두 학교폭력 피해학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표현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피해학생이 되기 쉽다. 자신이 위축된 상태에서 상대가 시비를 거는데 반응하지 않으면 희생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외모에 자신이 없거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자아 존중감이 낮아 학교폭력에 상대적으로 많이 노출되는 경향이 있다.

◈ 가해자는 일진뿐?…공부 잘하고 인기 많은 중산층 자녀도 가해자

소수자로 희생양이 되는 학교폭력 피해학생에 비해 가해학생은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다.

일반적으로 '일진'학생들이 학교폭력을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CBS 취재진이 만난 학생들과 교사들은 이 같은 진단에 고개를 저었다.

고등학생 이모(18) 군은 "가해학생의 종류는 무척 다양하다. 공부를 잘해도, 싸움을 잘해도, 인기가 많아도 학교폭력의 가해학생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공립중학교 교사 최 모(45.여)씨도 "학교폭력 가해학생 중에는 중산층 가정 자녀도 있고, 성적이 좋거나 반장 등 리더십을 가진 학생들도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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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피해학생이 가해학생으로 바뀌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2010년 12월, 같은 학교 학생 4명에게 칼부림을 한 C군은 오랜기간 동안 피해학생 4명에게 집단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해 온 것으로 뒤늦게 드러나기도 했다.

또 다시 괴롭히면 참지 않겠다고 말하던 C군이 칼을 소지하고 있다가 괴롭힌 학생들을 향해 칼을 휘둘렸다는 것이다.

◈ 방관하는 학생들 "맞을 만하니까 맞는 것"…죄책감 없이 합리화

문제는 학생들 스스로가 학교폭력의 원인을 피해학생에게 돌리며 학교폭력에 대한 정당성, 학교폭력을 방관하는 것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CBS 취재진이 만난 학생들은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 등을 당하는 학교폭력 피해학생들에 대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학생들은 처음에는 학교폭력 피해학생들에 대해 "성격이 이상하다", "기분나쁘다", "짜증난다", "찌질하다(없어 보인다는 의미의 속어)"라며 '피해학생들이 피해학생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열심히 설명했다.

그러나 '이상함'과 '짜증남', '찌질함'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명쾌한 답변을 내 놓는 이들이 없었다.

이에 대해 인권교육센터 배경내 활동가는 "학생들은 학교폭력 피해학생들을 못난 아이로 규정하고 있다"라며 "문제가 있는 친구이기 때문에 부당한 대접을 받아도 된다고 주장하며 스스로 가해나 방관의 책임감과 죄책감을 덜어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학생들의 머릿속에 '괴롭힐만하니 괴롭힌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학교폭력 가해학생으로서 처벌 받는다고 해도, 행동이 개선되기 보다는 피해학생에 대한 보복에 나선다는 분석이다.

학교폭력으로 처벌을 받은 학생들 대부분은 뉘우치지 않는다. "이유가 있어 괴롭힌 것인데 무조건 내 잘못만 따진다고 투덜거리거나, 징계 사실을 훈장처럼 자랑하기도 한다"고 학생들은 입을 모았다.

괴롭히는 소수, 방관하는 다수, 괴롭힘 당하는 극소수가 엉킨 학교현장에서 학교폭력 피해학생들은 오늘도 죽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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