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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빨갱이로 몰려 산다는 것은" 오송회 사건 피해자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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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 뒤에도 제자시켜 수업 감시, 친구.피붙이도 다 떠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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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화 도중 자주 허공을 보거나 웃음을 터트리곤 했다.

그가 뿜어내는 한숨과 허탈한 웃음 속에는 지난 30년 아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지난 10일 대법원 3부는 오송회 사건 피해자 3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국가가 150여억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1982년 전북 군산제일고 교사 5명이 학교 뒷산에 올라 간소한 4.19 기념식을 치르고 시국토론을 한 것을 빌미로 당시 정부가 이들을 이적단체로 조작한 '오송회 사건'.

무고한 교사 등 관련자 9명이 모두 징역 1년에서 7년을 선고받고 복역한, 80년대 군사정권이 벌인 대표적 공안조작 사건이 드디어 일단락된 것이다.

당시 군산제일고 교사로 재직하던 중 오송회 사건에 휘말려 고문을 받고 1년을 복역한 채규구씨(60)는 1988년에 복직해 현재 군산진포중 교사로 일하고 있다.

채씨는 "잘못했는데 방법이 없으니까 국가가 돈으로 배상한 건데, 이 땅에서 빨갱이로 몰려 사는 것이 얼마나 처참한 것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며 "한평생을 짓눌려 살며 철저한 자기검열 속에 살아온 삶을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인간적,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낸 사람이 없었고 이는 친구뿐 아니라 피붙이도 마찬가지였다고 털어놨다.

교사로서 수치심까지 느낀 사건도 있었다. 채씨는 이 사건을 인생에서 가장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복직한 뒤에도 학생들을 시켜 수업감시를 했어요. 중학교 2학년 꼬맹이를 시켜서 제가 수업 중에 특이한 발언이 있으면 와서 보고하라고. 그 학생이 와서 제게 얘기해서 알게 됐어요."

온갖 고문을 받고, 이를 이겨내지 못해 양심을 어겨가며 저들이 시키는 대로 자백을 하고, 먹고 살 길이 없어 학원 강사로 전전하다 학원에서도 해직되고, 고문 후유증으로 함께 오송회 사건에 연루된 고 이광웅 교사가 숨지는 등 숱한 사건들보다 더 힘들었다는 것이다.

채씨는 "정통성 없는 전두환 정권이 국민의 저항을 잠재우기 위해 선량한 교사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고 당사자로서 오송회 사건을 정의했다.

채씨는 이어 "아직도 살아 있는 국가보안법이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며 "자기와 입장이 다른 사람을 잡아 처벌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이 가장 큰 문제다"고 덧붙였다.

"아주 작은 거지만 고문 조작에 앞장섰던 사람들. 이들 중에는 개인적 영달을 위한 사람도 많았어요. 자신을 위해 선량한 사람을 고문하고 괴롭힌 사람들도 처벌됐으면 좋겠어요."

역사의 정의를 밝히기 위해, 후대에 또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없기를 원하는 역사의 피해자 채씨의 작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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