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시간
"아론 랠스톤의 실화, 오래전부터 영화화하고 싶었다."
대니 보일 감독은 2009년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8개 부문을 휩쓸었다. 미국에서는 물론 국내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다. 이후 수많은 프로젝트 제안을 받았지만 그의 선택은 '127시간'이었다.
대니 보일 감독은 영화사가 공개한 인터뷰에서 "사실 많은 영화를 제안 받았다"고 웃은 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성공에 젖어서 행동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사실 '127시간'은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127시간'은 지난 2003년 미국 유타주 블루존 캐년 등반 중 떨어진 바위에 팔이 짓눌린 채 조난돼 127시간 동안 사투 끝에 자신의 팔을 직접 끊고 살아 돌아온 아론 랠스톤의 감동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대니 보일이 이 소재에 관심을 가진 건 2006년이다. 그는 당시 아론 랠스톤을 직접 만나기도 했지만 랠스톤은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어 했다. 보일 감독은 "랠스톤에게 다큐로 만들면 실화와 동일하게 만들 순 있지만 관객은 단순 방관자로 느낄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랠스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결국 영화화는 무산됐다.
시간이 흘러 2009년, '슬럼독 밀리어네어' 성공 후 다시 의뢰가 들어왔다. 보일 감독은 "랠스톤이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보고, 진지하게 작업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싶다"며 "적당한 배우만 찾아내면 영화를 맡길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그는 "랠스톤은 자신의 역할을 맡은 제임스 프랭코를 보고 안심했다"며 "둘은 죽이 아주 잘 맞았고, 믿을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제작과정을 돌아봤다.
랠스톤이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에서 오는 결말의 변형. 보일 감독은 "기본적으로 할리우드 영화는 실제와 다른 새 결말로 끝나기 마련"이라며 "랠스톤이 짐작했던 이 영화의 결말은 등산하던 의사가 나타나서 주인공의 손을 무사히 살려내는 것 정도"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팔을 절단하고 탈출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명장면. 동시에 팔을 자를 때 주인공이 통증을 크게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여 이를 두고 실제 그럴까하는 의문도 생겨났다. 보일 감독은 "너무 참혹해도, 수월해도 안 됐다"며 "영화에서 책을 가장 충실하게 따른 게 그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그 놀라운 장면에 어떤 사람은 아주 긴장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랠스톤이 황홀감이라고 부르는 카타르시스와 희열을 느낄 것"이라며 "삶이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할 때 다시 생명을 얻는 아주 황홀한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제작진 중 일부가 "고통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게 말이 안 된다"고 했으나 보일 감독은 "랠스톤은 추락할 때 처음 느꼈던 고통 이외에 아무 것도 느끼지 않았다"며 "팔을 부러뜨리고, 잘라내기 시작하면서부터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고 책에 밝혔다"고 전했다.
'127시간'은 기획 자체만 보면 한정된 공간에서 단 한 사람의 사투를 그린 작품으로 대중성을 확보하기에 어려워 보인다. 보일 감독은 이에 "영화사의 많은 중역이 '감사합니다만 그 영화는 사양하겠습니다'는 식으로 말할 영화였다"며 "하지만 우리는 이 영화를 제작할 방도로 아카데미 수상을 이용했다"고 솔직하게 답변했다.
'127시간'은 2011 아카데미 작품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편집상, 음악상, 주제가상 등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17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