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한화그룹 비자금 의혹을 수사해온 검찰이 이번 사건을 '차명 비리와의 싸움'으로 규정했다.
서울서부지검 봉욱 차장검사는 30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차명비리가 수사의 가장 중점"이라며, "차명 소유를 둘러싼 기업 비리가 집중적으로 밝혀진 것은 사실상 처음"이라고 말했다.
복잡한 기업 세탁 과정을 위해 그룹 경영기획실내 이른바 '장교동팀'이 동원됐고, 이들에게는 차명계좌 및 차명보유회사 관리와 함께 계열사에 대한 사실상의 지휘권이 부여됐다는 것이다.
봉 차장검사는 "차명소유회사에 대한 불법적인 지원 행위는 초기 단순한 형태에서 점차 고도로 진화됐다"며 "'장교동팀'이 김 회장 일가의 개인 자산을 관리해 온 것은 김 회장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승연 회장 일가가 차명으로 소유한 회사인 한유통과 웰롭, 부평판지의 빚 3,500억원을 갚기 위해 계열사들이 조직적으로 동원됐다.
계열사들에게 연결자금을 대도록 하거나 지급보증을 서도록 해 9,009억 5,000만원 상당의 횡령과 배임 혐의가 있다는 것이다.
검찰 조사결과 한유통과 웰롭은 당초 김 회장 동생의 회사로, "클린 컴퍼니로 빙그레를 계열분리하고 싶다"는 동생의 요청에 따라 지난 1997년 김 회장이 개인적으로 인수했다.
이후 1,069억원에 달하는 이들 회사의 단기차입금에 대한 빙그레의 기존 지급 보증은 위장계열사인 태경화성은 물론, 그룹 계열사인 한화와 한화종합화학, 한화석유화학 등이 대신 섰다.
이어 지난 2006년까지 그룹 계열사들이 번갈아 지급 보증과 연결자금을 제공하도록 해 부도를 막았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은 또 김 회장의 모친이 최대주주인 부평판지에 대해서도 김 회장이 배임을 지시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검찰은 김 회장이 모친으로부터 "너라도 이것(부평판지)을 살려내라"는 요청을 받은 뒤, 당시 그룹 재무총괄자인 홍동옥 씨에게 "야, 이것도 어떻게 해결해 봐라"고 지시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오로지 김 회장 일가의 소유라는 이유만으로 그룹 정식 계열사인 한화유통과 한화종합화학, 드림파마, 한국국토개발, 한화건설 등이 동원됐다고 결론을 내렸다.
또 자금을 지원하는 과정에서는 부동산 거래와 기업의 인수 합병, 분할 등이 주로 쓰였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가령 한유통의 부채 2,000억원을 정리하기 위해 한화유통 등 계열사 소유의 토지들이 공시지가에 따른 헐값으로 한유통에 팔렸다가, 다시 개발비용까지 고려한 비싼 값에 되팔렸다.
이같은 방법으로 한유통은 지난 2005년 12월부터 불과 두 달 사이 412억원의 양도차익을 올렸다.
또 부동산 저가 매도 후 합병과 회사분할의 방법으로 한화도시개발에 271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치는가 하면, 유상증자 대금 출자를 가장해 1,311억원을 횡령한 혐의도 있다.
검찰은 "회사 분할·합병, 자산 순환거래 등의 과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차명 소유 회사 자체는 아무런 이익을 창출한 게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복잡한 세탁과정을 거친 불법지원은 법률전문가나 재무전문가라 하더라도 거래구조를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라며 "그 이유는 범행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경영기획실 실무자가 시인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결산 재무제표와 감사보고서, 공시자료를 분석해 비정상적인 자금·자산 이동 등을 파악한 뒤, 진술에만 의존하지 않고 증거를 확보했다고 수사 방법을 밝혔다.
검찰은 또 "지난 2005년 한화유통이 부채 1,042억원을 갖고 있던 김 회장 차명소유인 제일특산을 합병해 542억원을 대신 갚아준 사건도 '성공한 구조조정'이라는 한화측 주장과 달리 결국 유죄가 인정됐다"며 이번 수사 결과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