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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당들이 소주 한잔 할 때 시원한 국물로 속을 달래주는 담치. 우리나라 주당들은 언제부터 이 담치 국물을 술자리에 곁들이게 됐을까. 실제 담치가 상에 오른지는 5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1950년대 경남 지역에 유입된 지중해담치는 원래 살던 대서양을 떠나 새로 도착한 한국 연안에서 왕성한 번식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중해담치는 한번 산란할 때 500만~2000만 개의 알을 놓고, 생식을 할 수 있는 성체로 자라는데 6개월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세대 간 간격이 짧다. 때문에 우리나라 고유종인 홍합과 굵은격판담치는 지중해담치에게 서식지를 뺏겨 보기가 힘들어졌다.
배스나 황소개구리가 육상 생태계에 큰 혼란을 일으켰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외래곤충이나 식물이 유입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사이 바다 생태계에도 외래종의 침범이 계속되고 있다.
갯바위 점령한 외래종 따개비
조간대(밀물 때 바닷물에 잠기고 썰물 때는 드러나는 해안지대)의 바위를 덮고 있는 따개비도 외래종이 토종을 몰아낸 지 오래다. 외래종 따개비는 줄무늬따개비가 가장 먼저 유입돼 서해안을 제외한 우리나라 해안지대에 폭넓게 분포하고 있다.
이 종은 고유종인 고랑따개비와 전면전을 벌여 이들이 살고 있던 공간을 차지해 버렸다. 또 닻따개비는 부산을 중심으로 한 동남부 해안에, 흰따개비는 동해와 남해 동부 해역에서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대서양에서 살던 유령멍게와 지중해 원산의 주름미더덕도 점차 영역을 넓히고 있다. 유령멍게는 굴이나 멍게 양식장의 양식시설, 로프 등에 붙어 살고 있다. 유령멍게가 죽으면 물밑에 가라앉으면서 바닷물을 오염시켜 양식생물의 폐사를 불러오기도 한다.
북태평양산인 아무르불가사리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호주 연안에서도 조개류를 무차별적으로 포식해 악명이 높다.
무임승차로 한국 오는 해양외래종우리나라 연안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는 외래 유입종들. 이들은 어떻게 먼 대서양과 지중해에서 수천㎞ 떨어진 부산항으로 오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이들이 선박의 밸러스트수에 섞여 온 것으로 보고 있다.
화물선이나 유조선은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화물을 실어나른 뒤 빈 배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이 때 배의 무게가 가벼워져 물에 잠기는 깊이가 얕아지는데 이 경우 배의 무게중심이 높아져 안정성이 약해진다. 또 배를 추진하는 프로펠러가 물 위로 올라오면 배의 추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배의 바닥에 바닷물을 채우는데 이것이 밸러스트수다.
20만t급 화물선의 경우 8만t의 해수를 싣고 이는 다시 화물을 싣는 항구에서 버려진다. 밸러스트수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연간 100억t의 물이 옮겨지고 7000여종 이상의 생물이 이동한다. 해양 생물종들이 우리나라로 오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수입 화물선들은 다시 외국으로 돌아갈 때 우리나라 연안의 생물들을 싣고 돌아가게 된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에 서식하는 피뿔고둥은 미국 동부 해안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생태계를 장악해 큰 피해를 입히고 있다.
작은 것이 잠재적 위험성 더 높다밸러스트수에 섞여 이동한 7000여종의 생물들 중 이동지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경우는 3% 정도이다. 이들은 뛰어난 환경 적응성으로 서식지와 먹이가 같은 토종 생물들을 위협한다.
외래종은 본질적으로 토착 생물과 생태계에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육상이나 담수의 외래종에 비해 해양 외래생물의 영향은 거의 연구가 되지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식물성플랑크톤이나 병원성 세균, 미생물에 대한 연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생태연구팀 이윤 박사는 "적조를 일으키는 와편모조류와 같은 외래종이 유입될 경우 어류의 폐사 등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외래종 바이러스로는 1993년 중국에서 처음 발견된 흰반점바이러스가 악명을 떨치고 있다. 지난 2004년엔 우리나라 전체 양식새우의 28.4%가 흰반점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보고됐다.
부산기업들 앞다퉈 처리장치 개발국제해사기구(IMO)에서는 밸러스트수를 통한 해양생태계 교란을 막기 위해 선박 밸러스트수 관리협약을 만들어 각국의 비준을 받고 있다. 이 협약에 따르면 길이 100m 이하 신규 소형선박은 오는 2009년부터, 대형선박은 2012년부터 밸러스트수 처리장치를 의무적으로 달아야 한다. 또 기존 선박도 2017년부터는 이 장치를 장착해야 한다. 스웨덴 캐나다 미국 독일 등의 정부와 기업이 경쟁적으로 전기분해, 자외선, 오존 등을 이용한 처리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국내기업들 중에서는 서울 소재의 (주)테크로스가 한국해양연구원이 개발한 전기분해 방식을 실용화해 2006년 IMO의 기본승인을 받았다. 국내 조선기자재산업의 중심지인 부산 기업들도 앞다퉈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씨플러스(강서구 녹산동)는 기존 선진국에서 개발된 기술이 아닌 독자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하이드로싸이클론을 이용해 해수를 1차 여과한 뒤 이 여과수를 광전자시스템으로 살균하는 것이다. 광전자시스템은 부산하이테크부품소재연구지원센터에서 개발한 것이다. 시간당 최대 1000㎥의 해수를 처리할 수 있으며 2012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주)파나시아(강서구 송정동)에서는 자외선을 이용한 밸러스트수 처리장치를 개발했다. 자외선을 쬐면 세포내의 DNA가 파괴되고 신진대사에 장애가 생기며 증식능력을 잃어 사멸하게 된다. 유입된 해수가 자외선 램프를 통과하면서 자외선을 쬐면 해수 내부의 각종 미생물을 비롯한 생물들에 살균작용이 일어난다.
또 (주)엔케이(사하구 신평동)에서는 오존을 이용한 방법을 개발했다. 해수가 유입되는 펌프에서 오존가스를 분사해 미생물을 포함한 수중생물을 사멸시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