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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의 2번 타자. 야구팬이라면 동봉철 선수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프로야구 입단 첫 해인 1992년 신인왕 후보에 오르면서 화려한 데뷔 신고를 했던 동봉철 선수. 하지만 야구선수로서의 화려한 경력은 거기까지였죠. 잦은 부상과 트레이드로 선수 생활 여덟 시즌만에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습니다.
야구가 더 싫어지기 전에 그만두자는 마음에 은퇴한 뒤, 일본 유학과 엔터테인먼트 사업, 그리고 야구 해설위원으로 변신의 변신을 거듭하던 동봉철 선수가 최근에는 외식 사업가로 변신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는데요.
비운의 2번 타자에서 외식사업가로 화려하게 변신한 동봉철 선수를 4월 29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FM 98.1Mhz, 연출 김우호 PD)에서 만나봤습니다.
◇ 역대 최고의 2번 타자, 홈런 욕심도 났지만 팀 작전이 먼저
▶ 늠름한 모습을 보니 지금도 그라운드 나가면 홈런을 칠 것 같은데요.(웃음)
마음은 그런데요. 살도 많이 쪘고, 지금은 열심히 보고만 있습니다.
▶ 보시면서 아무래도 몸담았던 팀을 응원하게 되지 않나요?
제가 라디오 해설을 하고 있거든요. 현역 시절 8년 뛰면서 5개 팀에 트레이드 되었었는데, 해설을 하다보니까 특정 팀을 응원하거나 그런 것은 없습니다. 다만, 좋아하고 친했던 선수들이 아직 뛰고 있기 때문에 그런 선수들이 있는 팀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 선수로서 전성기 때가 언제입니까?
92년, 93년도 때입니다. 당시 신인 시절인데 그때 기억을 많이 해주세요. 개인적으로도 야구를 제일 잘했던 때였고요. 당시 삼성에 있을 땐데 대구에서 신인시절을 보내어서 제가 대구 사람인줄 아시는데, 저는 2차 지명을 받아 대구로 내려간 것이었고요. 서울 신일고등학교를 졸업을 했습니다.
▶ 어느 야구 평론가가 ‘동봉철 선수는 역대 최고의 2번 타자다’라고 한 것이 기억이 납니다.
사실 제가 아마추어 때는 2번 타순을 쳐본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거의 3번, 4번을 쳤었는데 프로에 들어가면서 감독님이 우리 팀에는 3번과 4번 타자는 많으니까 1번, 2번 위주로 해라 그러셨죠. 그래서 현역 생활을 1번, 2번 타자로 하게 된 것입니다.당시 쟁쟁한 선배님들이 많이 계셨던 데다, 일단은 주전이 목표였기 때문에 1번, 2번에 맞추어 야구를 하게 되었죠.
▶ 홈런 욕심이 날 때도 있으셨을 텐데요.
사실은 1, 2번을 치면서 3, 4번들이 참 편안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3, 4번 앞에서 밥상을 차려 출루하고 타점을 많이 올릴 수 있는 ‘도움닫기’ 역할을 하는 것이 2번의 역할이거든요. 물론 야구팬들은 홈런을 많이 좋아하시는데, 야구 마니아 분들은 2번 타순의 중요성을 많이 아셔서 저의 현역시절을 많이 기억해주시고 그런 것들이 상당히 고맙죠.홈런 욕심이 날 때도 있지만, 홈런보다 출루가 목표이다 보니까, 출루하는데 신경을 많이 씁니다.
현역 때도 그런 질문 많이 받았지만, ‘2번 어떻냐’ 이렇게 물어보시면 2번 타자는 야구에 있어서의 소금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만큼 티도 안 나고 자기를 많이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거든요. 3, 4, 5번들이 편안하게 타점을 올릴 수 있도록 받쳐주는 타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보다 작전이 많이 걸려요. 그러다보니 작전 수행능력도 있어야 하고, 출루 능력, 도루 능력도 있어야 하죠.
▶ 동기들이 누구누구 있습니까?
현역으로는 양준혁, 정민태 다 동기들입니다. 안경현도 있고. 지금은 많이 은퇴하고 코치생활을 하고 있죠.
▶ 양준혁 선수와 이승엽 선수는 어땠습니까?
양준혁 선수는 일단 힘이 좋고 성실하고 큰 부상도 안 당했었고. 무엇보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욕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현역생활을 오래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이승엽 선수는 제가 4년차 때 신인으로 고등학교 졸업하고 들어왔었는데 처음 본 느낌은 참 똘똘하게 생겼구나였어요.
이승엽 선수도 욕심이 많은데, 양준혁 선수와는 다르게 좀 유순한 부분이 있어요. 겉으로 보기에 상당히 유해서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스타일입니다. 화가 나도 화난 표정도 잘 안 짓고, 욕심도 겉으로는 티를 잘 안내며 맡은 일을 조용조용 성실하게 잘 해냈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 최다 이적생이라는 불명예에 잦은 부상으로 20년 야구생활 접기까지▶ 슬럼프도 있으셨죠.
슬럼프가 심하게 걸리면 자기 폼을 찾는데 한 3년이 걸린다고 하거든요. 그래서 잠깐 잠깐 몇 게임 안 맞는다 그런 것을 슬럼프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컨디션이 좀 안 좋다 정도이고요. 정말 슬럼프가 오면 좋았을 때의 자기 폼을 잊어버려요. 물론 녹화를 해놓기도 하지만, 정상적으로 다시 찾는데 한 3년이 걸린다고 합니다.제가 첫 해는 전 게임 다 뛰면서 3할을 쳤어요. 그렇게 92년과 93년까지는 좋았는데, 94년도부터 롤러코스터 열차를 좀 많이 탔죠.(웃음)
▶ 그때 최다 이적생이라는 불명예까지 얻으셨는데.(웃음)
제 후배 최익성 선수가 더 많이 이적했어요. 지금은 제가 한 3위정도 됩니다.(웃음)
▶ 계속되는 부상으로 20년 야구 생활을 접으셨죠. 현역 생활을 하다보면 선수들 전부 이런 저런 부상이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허리 디스크랑 척추 분리증이 있었고요. 97년도 시즌 전에 통풍성 관절염이 걸려서 조금만 무리를 해도 다리가 부었어요. 그것 때문에 식이요법도 7~8개월 했고요. 그 후에 척추염이 와서 무리를 하면 골반이 아팠어요. 걷는데 지장이 있을 정도로 많이 아팠습니다. 운동선수들이 겉보기에는 멀쩡해도 X-ray 찍어보고 조사를 해보면 잔 부상이 상당히 많습니다.
▶ 트레이드 되었을 때 속상하고 자존심 상하였겠어요.
요즘 같은 경우 FA가 있어서 선수가 원하는 구단으로 자유롭게 옮길 수 있지만, 그때 당시에는 아침에 갑자기 트레이드 됐다고 통보를 받았어요. 먼저 얘기해주는 경우 없었고, 감독이나 구단들과 얘기가 있은 이후에 그 다음날 선수들에게 통보를 해주었죠. 아침에 야구장 나가다가 ‘트레이드 됐으니 다른 팀 가라’ 그런 식으로요.그것도 처음 한두 번이 속상하지 저 같은 경우는 4번을 트레이드 되고 나니, 그러려니 했어요. 하지만 그 충격은 정말 심하죠.
제가 몸담고 있으면서, 이 구장을 홈구장으로 생각하고 이 유니폼을 내 유니폼이다 생각했는데, 원정팀이 되어 그 구장을 찾았을 때 참 충격이었어요. 처음 삼성에 입단을 하고 나서, 트레이드 되어 다른 유니폼을 입고 그 구장 찾았는데요. 제가 한국 시리즈 때도 떨리지 않았는데 트레이드 이후 그 구장 갔더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더라고요.
▶ 트레이드와 스카우트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스카우트는 아마추어 선수를 구단에서 원해서 뽑는 것이고요. 트레이드는 프로야구에서 감독이나 구단 서로 간에 이해관계가 되어 맞교환 되는 것입니다. 트레이드 되면, 선수들끼리는 아마추어나 현역 때 자주 마주치기 때문에 어색한 부분은 좀 덜 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환경이 바뀌고 팀마다 색깔이 다르기 때문에 적응 문제도 그렇고 불편하죠. 살던 집을 떠나는 것도 그렇고요.
이건 창피해서 누구에게 이야기 해본 적은 없는데요. 제가 첫 트레이드 되었을 때 사실 눈물이 났습니다. 삼성에서 해태로 트레이드 된 것이 첫 트레이드였는데 그때 눈물이 났고, 속상했죠. 그 이후로 그런 것은 없었는데, 첫 트레이드 때는 그런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 서른 살에 이른 은퇴 후 일본 유학길에 올라▶ 은퇴할 나이가 아닐 때 일찍 하셨어요.
30살에 그만뒀어요. 제가 유니폼을 벗는 순간 제 등 뒤에 날개가 달린 기분이었어요. 날아갈 것 같이 홀가분했죠. 야구를 20년 하면서 아쉬움은 물론 있었지만 마음이 너무 지쳐있었어요. 이 재미있는 야구를 제가 언젠가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속상해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야구를 편안하게 그라운드가 아닌 스탠드에서 좋은 사람들과 즐기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었죠.
▶ 일본 유학은 언제 가신 겁니까?
제가 그만두는 시점에서 스포츠 에이전시 붐이 일었어요. 그때 당시 여러 회사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의가 들어왔는데, 제가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운동만 하고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이 회사에 들어가 선수들 연결해주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더라고요. 또 운동했을 때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운동을 그만둔 이후에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좀 다르더라고요. ‘사회에서 나에게도 어떤 무기가 하나 있어야 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외국어를 하나 정도 정확하게 해야겠다 그런 결심을 하고, 전부 만류하고 반대했는데도 일본에 갔죠.
▶ 일본 생활은 어떠셨어요?
제가 현역 생활을 하면서 자신감을 많이 잃어버렸어요. 일본에 가서는 자신감도 찾고 저 자신도 찾고 싶었어요. 운동하면서 공부를 많이 못했었는데 가서 공부도 처음 해봤어요.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6시간씩도 해보고. 근데 너무 졸리더라고요.(웃음)저는 외국을 가면 외국말은 자연스럽게 되는 줄 알았어요. 근데 공부를 많이 해야 되더라고요. 나머지 공부도 했었죠. 그래도 잘 안되더라고요.
▶ 일본에 간 주 목적이 정확히 무엇이었나요?
일본어를 배우는 거였습니다. 근데, 어느 순간 스트레스가 오는 거예요. 한국가면 좀 편안하게 살 텐데 괜히 외국에 와서..하지만 제일 좋았던 부분은 한국에 있었으면 못했을 아르바이트를 7~8가지 정도 한 것입니다. 접시닦이, 전단지 붙이기 등 한 8가지를 했는데요.
제가 처음에 라면 가게에서 접시를 닦다가 나중에 라면을 직접 만드는 것까지 제가 올라갔었죠. 제가 일본에 있을 때 한국에서는 제가 라면집에서 아르바이트한다니까 라면 기술을 배우러 간 줄로 알았었죠. 나중에는 언어도 키우고 아르바이트하면서 자신감도 많이 찾았어요. 그렇게 일본생활에서 많은 것을 얻는 기회가 되었죠.
▶ 학비를 자체 조달을 하신 거네요?
물가가 비싸서 학비를 전부 대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절반 정도였죠. 생활도 해야 하니까요. 제가 그때 일본에서 라디오 프로 게스트로 나가기도 했었어요. 고베 쪽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 일본말 배우는 YMCA 같은 단체가 있었는데 거기서 친구로 지냈던 아주머니가 고베에서 한국 사람이나 교포를 상대로 라디오 프로를 하고 계셨어요. 거기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얘기를 해라 하셔서 라디오 프로에 나가 제가 좋아하는 음악도 틀어보고 일본 생활 이야기도 해보고 했죠. 그러면서 ‘방송 참 재미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 일본에는 얼마나 계신 겁니까?
1년 10개월입니다. 2년 못 채웠죠.
◇ 엔터테인먼트 회사, 사진 스튜디오 등 여러 사업체를 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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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바로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들어가신 거예요?
일본에서 라디오 프로도 상당히 재미있게 했고. 한국에서 운동하면서 엔터테인먼트 쪽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아는 사람이 있었어요. 지금 한국에 큰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생긴다고 해서, 제가 그럼 배우면서 일을 할 수 있겠다 싶었죠. 당시 일본 친구들이 말이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금 한국 들어가면 다 잊어버리고 좋지 않을 것이다 반대를 했는데요. 하지만 저는 지금이 기회인 것 같다고 생각을 해서 한국에 짐을 싸가지고 들어왔죠.
그렇게 큰 회사에 들어가 일을 배우는 과정에서, 일을 열심히 배우면서 나중에 후배와 같이 작은 회사를 차렸어요. 좋을 때도 있었지만 안 좋을 때도 많았죠. 주위에서 선배들이 ‘야구할 때가 제일 행복할 것이다’ 했는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나와서 이것저것 해보니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벽에 많이 부딪혔죠.
사진 스튜디오도 친구와 같이 열어서 동업을 했었는데, 친구와의 동업은 또 다른 문제구나 이런 것을 많이 느꼈어요. 또 일본에서 들어오면서 이제 공부는 안 해도 된다. 끝났다. 이런 생각으로 들어왔는데 여러 가지 공부해야 할 것이 너무 많더라고요. 사람들과 대화에 뒤쳐지면 안 되니까 전문 상식도 공부해야 하고. 그래서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구나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 일본 생활에서 얻은 것은 무엇입니까?
한국에서 일본으로 떠날 때도 그런 생각이었지만, 저만의 무기와 자신감을 찾자는 생각이었습니다. 들어오면서 어느 정도 자신감도 많이 생겼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잘 될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프로야구 하면서 모은 돈 다 어떻게 했습니까?(웃음)
사실 많이 못 모았습니다. 일본유학하면서도 많이 썼고. 트레이드 때문에 이사를 많이 다니면서 쓰기도 많이 썼죠. 요즘 선수들이야 고액연봉이 많지만 제가 현역 때는 프로야구 선수들이 그렇게 돈 많이 벌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또 저도 많이 모으지도 못했고요.
▶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나오셨어요?
어차피 중앙대학교는 제가 스카우트 되면서 갔습니다. 그때 제가 원하는 과를 지망할 수 있었는데요, 다른 과보다는 기술을 배울 수 있으니까 나중에 운동 그만두었을 때 취미생활이라도 의미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습니다.
◇ 야구 해설가로도 변신
▶ 야구 인생을 일찍 접은 것에 대해 후회는 없으세요?
저는 현역 하면서도 운동 이후의 삶을 상당히 궁금해 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면 될까란 생각도 많이 했고. 지금이 모습은 현역 때 생각하던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현역 때 운동하면서도 공부를 좀 더 했으면 사회 나왔을 때 좀 쉽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합니다.어차피 서른 살에 그만뒀기 때문에 그동안 여러 가지 경험을 한 것에 만족해요. 계획했던 외국 생활도 하는 등 하고 싶었던 일을 마음대로 했잖아요. 돈은 못 벌었지만 그래도 행복하고 만족합니다. 그랬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어떤 것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습니다.
▶ 공부를 못한 것에 대해서는 후회를 하시는 것 같아요.
예. 일단 제일 부족한 것은 영어입니다. 영어를 커서 하려니까 자꾸 잊어버리더라고요. 물론 지금도 늦었다고 생각은 하지 않고, 조금씩 공부를 하고 있는데 부족한 것이 많죠. 한문이라든지 기초적인 부분을 조금씩이라도 어릴 때부터 할 걸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후배들에게도 운동하면서 조금씩이라도 공부를 하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 하곤 하죠.
▶ 야구 해설가로도 변신을 하셨어요.
예전에 일본에서 했던 그런 기분으로 제의가 들어왔을 때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근데 제가 마이크 울렁증이 있어요.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것은 괜찮은데, 야구 해설을 하면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가 정리가 안 돼요. 처음에 라디오 한 번 하고 기회가 되어 TV를 했었는데 두 번인가 하고 잘렸습니다.(웃음) 그래서 TV는 접고 라디오는 지금 3년째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조금씩 마이크도 적응이 되고 편안해졌는데도 막상 야구장에서 마이크만 끼면 떨리고 긴장이 많이 됩니다. 마음은 잘하고 싶은데요.
◇ 또 다른 도전 양대창 전문점 ‘청학동’ ▶ 지난 해 7월 양대창 전문점을 내셨다고요.
이 방송 듣는 청취자들이 ‘쟤는 왜 저렇게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하나’ 생각하실 텐데요. 저는 계속 도전한다고 생각을 해요. 저에게 맞는 일이 무엇일까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을 찾아서 노력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무식하고 무모한 도전이지만 그런 부분을 저는 즐겁고 좋게 받아들이려고 노력을 합니다. 지금 9개월째 일을 하고 있는데, 물론 2~3년째 되면 힘들다고 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너무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지금 이 일이 너무 잘 맞는 것 같아요.
▶ 장사는 잘 되십니까?
대박은 아니고 조금씩 입소문이 나고 있습니다. 양대창이란 것은 ‘소의 내장’이에요. 최근 맛있고 유명한 양대창 집이 많이 생겨서 프랜차이즈로 하면 편하게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편한 삶을 별로 안 좋아해서 ‘새로운 브랜드를 가지고 열심히 하자. 그래서 나의 프랜차이즈를 만들자’라는 꿈을 가지고 시작을 했습니다.
◇ 공부는 평생 하는 것. 지금도 계속 공부하며 고쳐가고 있어▶ 그럼 야구쪽 일은 어떻게 하고 계세요?
야구쪽 일은 라디오를 지금 하고 있고요. 또 ‘일구회’라고 야구 원로 선배님들과 함께 하는 모임에 홍보이사로 있고요. 야구 쪽에는 지금 살짝 발만 담그고 있는 상태입니다.
▶ 식당 정문에 국가대표 야구팀 유니폼을 걸어 놓으셨다던데요.
주위에서 ‘사진도 좀 걸어놓고 현역 때 유니폼도 좀 걸어놓아라’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맛으로 먼저 승부를 하고 싶었죠. 맛있는데 알고 보니 여기 사장이 누구누구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저희 가게에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이 많이 오는데, 크게 사진도 걸어놓으라고 말을 하긴 하지만 그냥 폴라로이드 사진 정도만 걸어놓고 있죠. 그래도 의미는 좀 두고 싶어서 북경 아시아 게임 예선전 때 사진을 전체 액자에 걸어놓긴 했습니다.
제가 장사를 처음 하면서 ‘맛이 어떠셨어요’ 하면 전부 맛있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가게가 정말 맛있구나’ 생각했죠. 근데 그러고서는 안 오세요.(웃음) 그래서 예의상 하신 말이라는 것을 알았죠. 그래서 정말 더 노력해야겠다고 장사를 해가면서 느끼고 있습니다. 식당은 주방과 홀이 사이가 안 좋다는 그런 말을 많이 들어서 요즘은 그런 쪽에 신경을 쓰고 있어요. 저희가 운동을 오래 했으니까 팀워크도 중요시 하거든요.
▶ 사업 전략이 따로 있으신 거예요?
지금 하면서 계속 배우고 있습니다. 계속 고쳐나가고 있어요. 완벽하게 갖추어 진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더 완벽하게 하기 위해 계속 공부하고 있습니다.
▶ 야구 동기들 많이 왔었나요?
예. 준혁이도 비시즌 때 왔었고. 이승엽 선수, 박찬호 선수도 왔었고. 박찬호 선수는 잘 먹더라고요, 너무 맛있다고 하면서. LA에서 잠깐 들어왔을 때도 저녁 약속을 우리 가게에서 잡아서 먹고 갔습니다. 연예인분들도 맛있다고 하세요. 정보석 씨, 전노민 씨, 컬투도 왔었고. 홍은희, 유준상 부부, 김아중 씨, 백지영 씨도 왔었고요. 그분들이 오시면 다른 분들도 좋아하시니까 고맙죠.
▶ 방황할 동안 부모님과 아내는 뭐라고 하셨나요?
제가 운동을 일찍 그만두면서 제일 마음이 아팠던 부분이 부모님이에요. 초등학생 꼬마 때부터 20년을 야구장에 쫓아 다니면서 격려하고 응원해주시는 것을 참 즐거워하셨는데.. 지금도 걱정을 하시죠. 항상 다른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항상 격려해주시고, 제가 늘 이렇게 다른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가족들이 묵묵히 지켜봐 주셨기 때문입니다.
(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 정리= 김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