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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라 "내게 애인 같은 라디오, 한길 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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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3-1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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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신춘특집 '라디오 스타' - 최유라 편

 

이 분의 유쾌한 웃음소리를 들으면,나른한 오후의 피로와 스트레스가 싹 달아난다죠. 서민들의 소박한 이야기를 구수한 사투리까지 섞어가며 감칠맛 나게 읽어 내는 ‘지금은 라디오 시대’의 든든한 ‘안방마님’ 최유라 씨. 그녀는 쟁쟁한 남자 진행자들을 여럿 갈아 치우며, 15년 가까이 '지금은 라디오 시대'의 간판스타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여자 라디오 진행자 중 선호도 1위, 주부들이 뽑은 최고의 라디오 스타인 최유라 씨. 그녀는 원래 첫 영화 ‘수탉’으로 대종상 신인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영화배우였습니다. 그동안 최유라 씨는 영화 출연 제의도 많이 받았지만, 라디오의 매력이 푹 빠져, 영화가 아닌 라디오를 선택했다는데요.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신춘특집 ‘라디오 스타’, ‘지금은 라디오 시대’의 MC 최유라 씨를 3월 12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FM 98.1Mhz, 연출 김우호 PD)에서 만나봤습니다.

◇ 17년 가까이 청취율 1위 ‘지금은 라디오 시대’

▶ 성격이 밝으신 편인가요?

원래 웃음이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 이야기가 재밌어서 웃고, 저희 프로는 2시간동안 수다 떠는 게 일이에요. 능력 발휘보다는 그냥 남자파트너와 마실 나온 느낌이랄까.(웃음) 참 재미있어요.

▶ <지금은 라디오 시대>를 진행하신지 얼마나 됐어요?

17년째하고 있어요. 내년엔 방송데뷔 20년째이고요.그렇지만, 청취자들의 세대교체는 별로 느끼지 못했어요. 청취자들이 연세가 드셔도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신데다, 손자들까지 함께 듣는다고 말씀도 많이 하세요.

▶ 최유라 씨가 청취자들에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 비결은?

청취자분들을 하늘처럼 생각하는 것도 있고, 무엇보다 열심히 했습니다. 그때는 나이도 어리고, '뽀뽀뽀'도 같이 하던 시절이었거든요. '내가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다가갈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테크닉적인 면에서는 서세원 씨, 황인용 선배님, 이종환 선배님 등 쟁쟁한 선배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죠.

그러면서 제가 대학 졸업하자마자 일찍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어요. 어리지만 주부로, 엄마로, 아내로서 일상을 살면서 보니까, 거기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제 방송소재가 됐어요. 그리고 나이 드신 청취자분들과 전화통화 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 그것이 굉장한 저의 보물창고입니다.

◇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첫 영화로 신인상까지

▶ 학창시절의 성격은?

부모님 두 분이 다 약사셨고, 딸만 둘이라 밝고 경쾌했죠. 아들이 없다보니까 어릴 때 아버지와 야구도 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씩씩해요. 무엇 하나를 해내는 뚝심이 있었죠. 제가 수원 영신여고 6회 졸업생인데, 학창시절에는 모범생이었어요. 놀 줄 몰라서 못논 것이죠. 그게 조금 후회됩니다. 여고시절을 통한 가장 큰 재미는 그나마 학교 축제정도였죠. 그리고 그때는 고3 졸업 때쯤 되면, 저쪽 남학교와 미팅도 하고 그랬습니다.

▶ 89년 대학 재학 시절부터 라디오 심야프로그램을 하셨다고요?

'깊은 밤 짧은 이야기'로 처음 시작을 했습니다. 원래 저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려다, 연극영화과를 간 것이었어요. 그래서 연극영화 쪽에는 자신이 없었어요. 그런 위축감 속에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한 영화로 운 좋게도 신인상도 받긴 했지만, 그것 한편으로 끝이에요.(웃음)

▶ 그럼 연극영화과는 적성에 안 맞으셨어요?

재미있게는 보냈어요. 자신감은 없었지만, 무엇을 하나 하면 재미있게는 했어요. 대학 4년 동안에 다양한 친구도 만나보고 색다른 공부도 해보는 등, 다른 세상을 본 것이 참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 영화배우 신인상까지 받으셨는데, 라디오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영화로 신인상을 받고,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미니 콘서트에 게스트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문세 씨 실제로 보니까 참 하늘을 날아갈 것 같더라고요.(웃음) 근데, 거기 PD선생님이 갑자기 "라디오 한 번 안 해볼래?" 그러셨어요. 그래서 얼떨결에 대답했죠. 그리고 바로 다음날 전화가 와서 '깊은 밤 짧은 이야기' 메인 MC가 된 거죠. 그렇게 '깊은 밤 짧은 이야기'를 3년을 진행했습니다.

▶ 라디오는 적성에 맞으셨는지?그것은 또 아니었어요. 제가 나이도 어렸었고, 그때만 해도 신인상 받고 나서, 드라마 등 TV출연 섭외가 굉장히 많이 들어왔었어요. 그런데 남편이 이유 없이 싫어하는 거예요. 하지 말라고. 그래서 라디오만 주로 하게 되었죠.

◇ ‘뽀뽀뽀’하다가 막내 카메라맨과 눈맞아 결혼


▶ 결혼은 언제 하셨어요?

라디오 하기 전에 영화촬영을 마치고 나서, 제가 '뽀뽀뽀'를 하게 되었어요.그때 남편이 '뽀뽀뽀' 막내 카메라맨이었는데, 이 사람은 막내라 마지막 엔딩만 촬영하면 되었었어요. 저도 마지막 마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보니까, 서로 마주보면서 기다리다가 그때, 서로 눈이 맞았죠. (웃음)

또, 그때 남편이 굉장히 어수룩하고 일을 참 열심히 했어요. 그리고 저도 사회에서 맡은 첫 프로니까 일찍 나오고 그러다보니, 일찍 나온 사람들끼리 서로 커피도 하게 되고 정도 들고 그러면서 결혼까지 하게 된 거죠. 남들 볼까봐 MBC 건물 7층까지 손잡고 계단을 오르며 연애를 하다가 김동완 기상통보관에게 걸리기도 했어요.

▶ 남편 될 사람의 어떤 점이 좋으셨어요?

남편 될 사람이 참 순하고, 편안하고 그랬죠. 얼굴 보면 ‘별 수 부리지 않고 잘 살겠구나’ 싶었죠. 연출하시는 맹만제 씨가 저의 작은 아버님이신데, 시댁이 다 인상이 그렇습니다.(웃음) 그때 남편과의 데이트로 신문지상에 '뽀미언니 열애중?'이런 기사가 났었거든요. 그때 어머니도 힘들어하셨고, 할아버지는 1년 동안 제 세배도 안 받으실 만큼 저한테 실망을 하셨죠.

그때는 그런 일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게 참 안 좋게 보였어요. 어른들은 특히 싫어하셨죠. 그래서 제가 그럴 거면 차라리 결혼을 하자고 했어요. 그래서 기자 분께 전화해서, MBC 주차장에 있던 남의 차 앞에 서서 대충 찍은 사진이 다음날 ‘뽀미 언니 꽃가마 탄다.’라는 제목으로 신문 1면에 나왔죠.

◇ 개성 강한 남자MC들과 자연스럽게 융화되기까지

 

▶ 라디오 진행하면서 힘든 것들은 어떤 거였나요?

이종환, 전유성, 이재용 아나운서, 황인용, 조영남, 서세원 씨 등 참 개성 강하시고 카리스마 있으신 분들과 진행했었으니까, 어려움은 있었죠. 그렇지만, 서로에 대한 배려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풀리더라구요. 제가 방송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서세원 씨와 처음 <100분쇼>('지금은 라디오시대' 전신)를 시작했어요. 그 전 <깊은 밤 짧은 이야기>는 하이틴 프로그램이어서 즐겁게 웃으면서 진행하기만 하면 됐거든요.

그런데, 공전의 히트를 친 노사연. 주병진의 <100분쇼>를 저희가 바통을 이어받으면서, 서세원 씨 입장에서는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거였거든요. 그래서 너무 많은 요구가 들어오더라구요. 그런데다, 서세원 씨가 너무 재주가 많았고, 또 그 개그코드를 맞추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저 선배와 어떻게 맞장을 쳐줘야하는지도 모르겠고 해서,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그땐 정말 좌충우돌이었죠.

제 스스로 틀을 못 깼어요. 일상적인 원고를 읽으면서 개그를 또 해야 하니까 너무 어려웠죠.그러다 그때는 몰랐는데, 제가 가진 끼와 지식, 재능을 잘 끄집어내어서 글을 쓰고 연출을 했던, 베테랑 스텝(작가,PD)들 덕분에 편안해졌죠.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서로 편안해지다보니까, 어느 시점부터는 서세원 씨가 재미있다고 해주시는 거예요.

▶ 지금 파트너 조영남 씨와의 호흡은 어떠세요?

제가 많은 남자 분들과 파트너해오면서 생긴 노하우가 있어요. 일단 첫 일주일은 파악을 하면서 가만히 듣고만 있죠. 그러고 나서 마치 줄넘기 하다 타이밍 맞춰 들어가듯이 '언제 들어가서 놀까?' 생각을 한 다음,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놀게' 되죠.(웃음)

조영남 씨 같은 스타일은 같이 부대껴서 놀아야 해요. 같이 청취자들 혼내주기도 하고. 그러다 약간 위험할 것 같으면, 제가 들어가서 면박을 주거나 하죠. (웃음) 물론 처음에는 참 힘들었어요. 조영남 씨도 알아요.(웃음)

▶ 이종환 선생님과는 어떠셨나요?

이종환 선생님과 하게 된 것은 참 영광이었죠. 책에서나 보았던 분을 옆에서 본다는 것이.(웃음) 저한테는 아버지 같았어요. 물론, 처음에는 좀 무서웠어요. 예전에 서세원, 황인용 씨랑 할때와 다르게 한마디 한마디 조심하게 되고, '싫어하시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도 되었죠. 워낙 연세도 있으셨지만, 저한테는 큰 분이셨으니까.

저와 첫 대면을 할 때도, 선생님이 약간 돌아앉아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인사를 하는데 고개만 까딱하고 쳐다보지도 않으시는 거예요. 방송하면서 말씀하시다가 자꾸 뒤로 빠지시고 그래서 중간에 공간이 생기면 안 되니까 제가 자꾸 끼어들어 얘기하게 되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방송에 조금씩 적응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저를 참 예뻐하셨는데, 본인한테 담배 냄새 날까봐 몸을 돌린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정도로 저를 신경을 써주셨어요. 그리고는 본인은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제가 나중에 알아챈 것이, 저 들어와서 멘트 많이 하라고 뒤로 빠지신 거였어요.

보통은 남자MC 가 멋진 말을 갖다 쓰기도 하고, 여성MC가 말 많이 하는 것을 싫어하는 분도 있다고들 하던데, 이종환 선생님은 참 방송을 잘 하시면서도 말 욕심도 없으시고. 그러면서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 재미있어요. 방송하면서 말의 경제성이 있다는 것은 좋은 덕목이죠.

그렇게 같이 MC본 분들이 인생선배요, 선생님이 되었어요.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것이죠. 대한민국에 그렇게 많은 선생님들한테 개인교습 받은 여자 MC가 없습니다.

◇ 청취자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갖가지 사연들

▶ 방송에서 기억에 남는 사연은?

정말 많아요. 눈물나는 사연들도 많고.당신도 없으면서, 어려운 딸 손에 안주머니에서 꺼낸 돈 5만원 쥐어주고 가시는 친정어머니 사연도 있었고. 힘없이 죽을 떠먹는 아프리카 난민 나오는 TV보시던 아버님한테 "에휴~ 가엾기도 하지"라는 말을 기대했는데, 아버님이 "에휴~ 왼손잡이구먼."이라고 해서 크게 웃은 적도 있고. 다 살아가는 이야기이죠.

▶ 청취자들이 보낸 사연이 너무 재미있는데, 그대로인가요? 작가들이 가공을 하나요?

띄어쓰기나 받침정도 약간 수정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가감이 없습니다. 되도록이면 원본을 살려서 하죠.

▶ 재미뿐만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위한 모금도 100억이 넘었다고요?

환아들이 기거할 수 있는 집도 여러 채 기증했고, 어르신들 틀니도 해드리고, 장학생 발탁해서 대학도 보내고 했죠. 그것을 저희는 다리역할만 하고 청취자분들이 다 한 거죠.

제가 첫 해에 이종환 선생님하고 함께 크게 감동받은 적이 있어요.'사랑의 손길을 기다립니다.'에 돈을 보내주신 청취자분들을 모시고, 콘서트도 하면서 연말 보고를 드리려고, 놀이동산을 빌리고 쟁쟁한 가수들도 오고했거든요.그리고 시간이 돼서, 기부해주신 사람들이 하나 둘씩 오시기 시작하는데, 제가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냥 방송을 재미있어하시는 분들만 오실 줄 알았는데, 구두통 들고 오시는 아저씨, 목발 짚고 절룩거리면서 들어오시는 분, 허루하고 남루한 옷을 걸치시고 두리번거리시는 분, 시장에서 장사하시다가 바로 오신 분들, 저뿐 아니라 이종환 선생님도 코끝이 찡해지셨어요.

그래서 그때 이후부터 방송에서 "저희에게 보내주시는 이 성금은 돈 많은 분들이 보내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루 벌어 하루 사시는 분들이 보내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더 값지게 쓰겠습니다." 라고 멘트를 꼭 하죠. 정말 너무 감사했습니다.제가 3~40대에 이런 일들을 통해 많은 값진 것들을 많이 배웠기 때문에, 제 아이들에게 그런 것들을 가르치려고 노력을 많이 하죠.

◇ 내게 라디오는 애인 같은 것

▶'지금은 최유라 시대'일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신데, 가정생활은 어떠신지?

아이를 낳고, 큰애와 작은애를 각 6개월씩 모유를 먹였었어요. 그때 참 힘들었어요. 그때 많이 도와준 남편이 고마웠어요. 저는 지금까지도 집안일을 봐주시는 아주머니가 없어요. 물론 돈 사정도 있었지만,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돌아가면서 도와주시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집안일이나 아이 키우는 게 재미있었죠.물론, 남편이 소심하고 깐깐하고 그래서 다툰 적도 있긴 했어요.

예를 들면, 저는 헤어드라이기를 쓰고 나서 서랍에 넣고 발로 스윽 밀어요. 그러면, 전깃줄이 엉키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그럼 남편은 드라이기를 들고 딱 정리를 해야 해요. 매사가 하나하나 그런 식이라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그 사람은 열무비빔밥도 안 비벼먹고 따로 먹을 정도에요. 지금은 서로가 많이 변하고, 또 서로가 다르기 때문에 더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 최유라 씨에게 라디오는 어떤 의미입니까?

오랜만에 애인을 만난다고 한다면, 설레는 마음에 멋을 한껏 내고 나가잖아요. 그런 것처럼 매일 4시는, 내 모든 에너지를 쏟는 설레는 시간이에요. 어떤 때는 울고 어떤 때는 웃으면서. 그 변함없는 사랑은 다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것 같아요. 비교하지 않으면서 한 길을 가니까 어느새 제가 많이 성숙해 있더라고요.

저의 아이들도 엄마가 한 길을 간다는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해요. 한길을 가서 큰 것을 얻고 사시는 분들이 주변에 많이 계시잖아요. 그것을 저는 방송을 통해서 배웠어요. 제가 라디오를 아무 것도 모를 시절부터 지금 20년째인데, 하다보니 어느덧 제가 유명해져 있더라고요.

어느 분이 그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90세가 넘으신 저희 어머님이 4시면 딱 라디오를 켜시고 방송을 듣는데, 다른 건 잘 안 들리시는데 최유라 씨 웃음소리만큼은 어머니 귀에 들리시나봐요. 어머니 살아계실 때까지 그 웃음소리 꼭 들려주세요.” 라고 하는 거예요. 그날 제가 많이 울었죠. 그런 맛에 제가 4시엔 라디오방송을 하러 달려가는 것 같아요.

(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 정리=김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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