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 연속 막는 것은 본 적이 없다"
적장은 깜짝 놀랐다.
"선수 시절과 지도자 시절을 통틀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인 것 같다"
소속팀 감독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FC서울이 승부차기에서 3번 연속 선방을 펼친 골키퍼 유상훈의 활약에 힘입어 포항 스틸러스를 제치고 2014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에 성공했다.
27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이하 ACL) 8강 2차전. 지난 1차전과 마찬가지로 지루한 공방전이 계속 됐다. 4강 티켓이 걸린 최후의 승부에서 양팀 모두 공격적인 운영을 하기에는 부담 컸다. 연장전 30분이 끝날 때까지도 0-0 균형이 계속 이어졌다.
운명의 승부차기가 시작됐다. 유상훈 주연의 '원맨쇼'가 막을 올렸다.
유상훈은 포항의 첫 번째 키커 황지수가 골문 왼쪽을 향해 낮게 굴린 공을 막아냈다. 이어 반대 방향을 선택한 김재성의 강슛도 막아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박희철이 오른쪽으로 때린 슈팅마저 유상훈의 손에 걸렸다.
서울은 세 번째 키커 김진규가 실축했지만 에벨톤과 오스마르, 몰리나가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켜 최종 스코어 3-0으로 승리했다.
최용수 서울 감독은 최근 부상에서 복귀한 골키퍼 김용대를 대신해 유상훈을 ACL 주전으로 낙점했다. 1차전에 이어 2차전에서도 주전 장갑을 낀 유상훈은 감독의 기대에 100% 부응했다.
강한 믿음과 철저한 준비의 승리였다.
최용수 감독은 "지금 가장 머리아픈 포지션이 골키퍼다. 김용대를 내 방에 불러 고민 끝에 유상훈에게 역할을 맡길 수밖에 없다고 얘기했더니 괜찮다고 하더라. 유상훈이 승부차기에 대해 놀라운 반응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중요한 시점에서 본인의 역할을 기대 이상으로 해준 것에 대해 칭찬하고 싶다"고 말했다.
준비 과정도 빈틈없었다. 최용수 감독은 "사람에게는 습관이 있다. 상대 1,2번 키커의 방향을 꿰뚫고 있었다. 코치의 지시가 계속 들어갔다. 코치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모든 것이 작전대로 풀린 것은 아니다. 세 번째 키커의 방향은 계산에 없었다. 최용수 감독은 "3번 키커에 대해서는 데이터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모른 척 했다"고 웃은 뒤 "선수 시절과 지도자 시절을 통틀어서 3번 연속 막는 장면은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황선홍 포항 감독 역시 "3번 연속 막는 것은 본 적이 없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2014시즌 개막을 앞두고 아시아 정복을 목표로 내걸었던 포항의 도전은 유상훈의 철벽 수비에 막혀 무산됐다.
황선홍 감독은 "우리의 아시아 제패의 꿈은 여기서 멈췄다.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고맙다. 내년에도 ACL에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