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국내 12개 종단 지도자들과 인사를 나눈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황진환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마지막 일정인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가 열린 18일 서울 명동성당 앞은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새벽부터 비가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우산을 쓰거나 비옷을 입은 채 기대와 설렘이 가득 찬 얼굴로 명동성당 앞 길거리를 가득 메웠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보기 위해 새벽 5시 30분에 나왔다는 정성엽(43) 씨는 "잠을 한숨도 못 자고 왔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왔다. 일생일대에 교황님을 직접 뵙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기쁘고 너무나 즐겁다"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서선정(45·여) 씨는 "정치인 같은 윗분들, 힘 있는 분들이 정말 (교황님께) 배웠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가 교황님 말씀대로 낮은 사람부터 행복해지면 좋겠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비바 파파! 비바 파파!"
오전 8시 40분쯤 드디어 프란치스코 교황이 검은색 차량을 타고 명동성당 앞 오르막길에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교황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4박5일 방한 일정을 모두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박종민기자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들이치는 빗줄기도 개의치 않고 창문을 활짝 연 채 자신을 맞는 사람들을 향해 일일이 손을 흔들었다.
이날 일정으로 끝으로 돌아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기억하려는 듯 스마트폰 카메라를 높이 치켜들고 교황의 모습을 담거나 차량 이동 경로를 따라 뛰어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명동성당 앞에는 성당 밖에 있는 인파들도 미사에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대형 스크린이 설치됐다.
스크린을 향해 발돋움을 하고 있던 강영석(68) 씨는 "'소원성취' 이런 것보다는 내가 지은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면서 예수님을 떠올리는 계기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진입로를 제외한 인도를 모두 메운 인파들은 성가를 따라 부르고 "아멘"을 외치며 미사에 참여했다. 점차 굵어지는 빗줄기에 불편함을 호소할 법한데도 대부분 사람들은 미소를 띤 얼굴이었다.
새벽 5시쯤 일어나 왔다는 한 50대 여성은 "우리나라가 현재 복잡한 일이 여러 가지로 많이 일어났는데 교황님이 오심으로서 모든 일이 잘되기를 바란다"면서 "특히 모든 낮은 자들을 보살피시는 교황님 모습을 본받아서 진짜 소외되고 낮은 자들을 서로 도우며 살피며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승복(67) 씨는 "전 지금 이 기다림 자체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오셨는데 환송을 잘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해 애쓰시는 교황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며 웃었다.
비는 미사가 진행될수록 더 굵어졌다. 이윽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올 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사람들은 우산을 접어 모든 사람이 교황이 명동성당을 나서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11시 40분쯤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사를 마치고 검은색 차량을 타고 명동성당을 빠져나갔다. 교황은 속도를 줄이고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배웅하며 일부 사람들은 벅차오르는 감동에 환호성을 지르거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친구와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던 손창애(62·여) 씨는 "우리나라에 최근 안 좋은 일들이 많았다. 그런데 교황님이 오셔서 많은 위로가 된 것 같고, 교황님을 통해 하느님이 아픔을 많이 달래주신 것 같다"고 울먹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등이 18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집전으로 열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참석했다(사진=교황방한위원회)
이날 미사에는 일본 종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도 참석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사 시작에 앞서 맨 앞에 자리한 김복동(89) 할머니 등 위안부 할머니들 손을 빠짐없이 잡고 인사를 나눴다.
김복동 할머니는 교황에게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반성 염원을 담은 나비 모양 배지를 선물했고, 교황은 즉시 이 배지를 제의에 달고 이후 미사를 집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밀양·강정마을 주민들, 쌍용차 해고 노동자, 용산 참사 유가족 등도 직접 위로했다.
미사가 끝난 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87·여) 할머니는 "좋은 분, 귀한 분이 오셔서 평화를 주시고 가셨으리라 믿는다. 묵주를 주셨는데 교황님을 기억하며 기도드리겠다. 우리 얘기 들으시고 이런 문제는 알고 가셨으리라 믿는다. 고맙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밀양송전탑 반대 주민들도 참석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편지와 함께 메시지를 적은 손수건을 전달했다.
밀양 주민 한옥순(63) 할머니는 "정말로 평화를 가져오시는 분이니까 이제 현 정부하고 소통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어 "교황님이 지나가실 때 스페인어로 '우리를 죽음의 송전탑에서 살려달라', '원전을 반대한다'고 외쳤다"면서,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겁니다. 맞서 싸우라는 그분(교황) 말씀에 따라서 더 결의를 다지면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용산참사 유가족 이충연(40) 씨 "잊히는 이웃들, 아파하는 이웃들과 함께하면서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라는 메시지를 주셔서 이를 계기로 용산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힘을 모아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크게는 이라크 전쟁 등 세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죽음에 함께 슬퍼하고, 작게는 우리 사회 소외된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진정으로 종교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추구해야 할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36일째를 맞은 유민이 아빠 김영오 씨가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단식농성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김영오 씨는 기자회견 중에 47kg까지 앙상하게 여윈 자신의 몸을 공개하며 수사권-기소권이 보장되는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단식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황진환기자
미사가 끝난 직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대통령은 교황의 메시지를 들으십시오'라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가족들은 "교황님은 마치 이번 방한의 목적이 세월호 유가족의 위로인 것처럼 방한 내내 유가족과 함께해주셨다"며 감사를 전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가? 지난 5월 16일 유가족 대표들과의 면담 때 언제든 다시 만나겠다고 했으면서 다시는 만나지 않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언급조차 없어졌다"고 유가족들은 비판했다.
유가족들은 또 진상 규명을 위한 대통령과의 공식 면담을 거듭 강력하게 촉구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4박 5일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이날 오후 12시 50분 대한항공 편으로 바티칸을 향해 출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