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한국 최고의 검객들이 모인 서울 태릉선수촌 개선관 2층의 펜싱 훈련장은 의외로 조용했다.
오전 훈련을 마치고 점심을 먹은 선수들은 오후 2시 30분부터 시작되는 훈련에 앞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훈련 시간이 되자 모든 선수가 훈련장 가운데로 모였다가 남녀 플뢰레, 에페, 사브르 등 종목별로 흩어져 가볍게 훈련장 둘레를 돌면서 몸을 풀었다.
이어 스트레칭으로 몸 상태를 서서히 끌어올리면서 칼끝에 온 신경을 집중할 준비를 했다.
훈련장 한쪽에선 유행 음악을 틀어놓고 박자에 맞춰 앞뒤로 스텝을 밟으며 리듬감을 몸에 익히는 훈련도 이어졌다.
이윽고 훈련 시작 1시간여가 지나서야 선수들은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칼을 부딪치기 시작했다.
챙챙거리는 금속의 파열음이 훈련장을 가득 메웠고, 비교적 선선한 날씨에 햇볕이 없는 실내였음에도 펜싱 헬멧을 벗고 머리칼을 쓸어올리는 선수들의 이마에선 금세 굵은 땀방울이 쏟아졌다.
훈련을 지켜보던 심재성 펜싱 국가대표팀 감독은 "아직은 훈련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며 "대회가 가까워져 오면 일요일도 없이 운동에 매진할 것"이라고 선수들을 바라봤다.
한국 펜싱은 2010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7개, 은메달 2개, 동메달 5개로 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역대 최고의 성적을 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도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따내며 뛰어난 체격 조건을 앞세운 서양 선수들이 득세하던 무대에서 '펜싱 코리아'의 이름을 드높였다.
지난달 막을 내린 2014 수원 아시아펜싱선수권대회에서는 개인전 6개 종목을 제패하는 등 금메달 9개, 은메달 5개, 동메달 2개라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내 곧 다가올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였다.
심 감독은 주변의 부푼 기대 속에서도 냉정함을 유지했다.
그는 "광저우로 갈 때 금메달 3∼4개를 예상했는데 막상 가보니 중국 선수들이 긴장해서인지 우리가 7개를 땄다"며 "인천에서 거꾸로 되지 말란 법도 없다"고 평정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거둔 성과에 대해서는 "중국은 전 종목에 걸쳐 가용 인력이 많다"면서 "굳이 감출 건 없더라도 최고의 전력으로 나서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고 있다"며 아시아 최대 맞수 중국에 대한 경계의 끈을 놓지 않았다.
유례없는 전성기를 구가 중인 한국 펜싱 대표팀의 무기는 많은 연습량, 풍부한 국제 경험, 과학적 훈련이다.
심 감독은 "체격의 열세를 많은 연습을 통한 체력과 풋워크 강화로 극복하는 것"이라며 "선수들이 국제 대회에 많이 나가면서 경험이 쌓였고 상대를 보는 시야도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이 제공하는 체계적인 운동 프로그램도 선수들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장치다.
심 감독은 "막연하게 운동하던 시절은 지났다. 이젠 선수들도 목표를 잡고 스스로 운동을 한다"며 "4년마다 열리는 대회의 중압감이 남다르기는 하지만 최소한 광저우 정도는 해내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