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항공 MH17 여객기를 격추한 미사일의 발사 주체가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온 우크라이나 반군일 가능성이 큰 가운데 우크라 사태를 둘러싼 러시아-서방 간의 대결 구도가 새로운 국면으로 치달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18일 외신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부는 분리주의 반군과 러시아 공작원이 여객기 격추를 논의한 증거로 이들의 전화통화를 도청한 자료 2건을 공개했다.
도청자료에서 우크라이나 반군 대원이 러시아 정보 장교에게 "비행기가 페트로파블로프스카야 광산 인근에서 격추됐다. 처음 발견된 희생자는 민간인 여성"이라고 보고했다. 다른 자료에서는 반군 사령관이 "기뢰부설 부대가 항공기 한 대를 격추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반군 대원은 "민항기인데다 여성과 아이들이 가득하다"고 말하자 "어쩔 방법이 없다. 지금은 전쟁상황이다"라는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반군 소행임을 공공연하게 주장했다.
내무장관 고문인 안톤 게라셴코은 "여객기가 반군이 쏜 부크(Buk)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됐다"고 말했다.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은 여객기 격추를 "테러 행위"라고 부르며 국제항공기구(ICAO)와 네덜란드, 말레이시아 대표 등이 참여하는 사고 조사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미국 정부도 반군이 러시아제 부크를 발사해 말레이시아 여객기를 격추했다고 사실상 결론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크는 러시아제 이동식 중거리 방공 시스템이다. 트럭에 실어 이동하는 1970년대 구형 미사일로, 고도 25㎞ 목표물까지 격추할 수 있다.
이와 관련, 미국 국방부 관계자 두 명은 우크라이나 반군이나 러시아가 여객기를 우크라이나 정부군 화물 수송기로 오인해 공격했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또 미국 정보 분야의 한 관계자는 AP 통신에 정부군은 이 같은 미사일 능력이 없다고 정부군의 소행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반군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책임을 돌리고 있어 사고기 격추 주체를 놓고 진실공방이 이어졌다.
반군 측은 "정부군이 여객기를 격추했다. 우리는 사거리가 3∼4㎞인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만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여객기는 당시 순항고도 10㎞에서 운항 중이었다.
이어 "미사일 발사 시스템이 있어도 이를 운용할 수 있는 인력이 없다"고 덧붙였다.
반군은 우크라이나 측이 내놓은 도청 자료를 믿을 수 없다면서 "비전문적인 선동전의 일환"이라고 반박했다.
러시아 언론은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여객기 추락 지점 부근인 도네츠크 지역에 27대의 이동식 발사대를 갖춘 부크 미사일 포대를 운영 중이라고 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내각 회의에서 "사고가 난 지역 국가가 이 무서운 비극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우크라이나 동부에 평화가 정착됐거나 전투행위가 재개되지 않았더라면 이 비극도 없었을 것"이라고 우크라이나 정부에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는 이날 반군 측과 현지에 국제조사단을 파견키로 합의했다. 반군 측도 휴전을 한 후 국제조사단의 사고 현장 방문을 허용하기로 했다.
반군은 사고기의 추락 현장에서 블랙박스를 회수했으며 러시아의 연방항공위원회(IAC)에 보내 내용을 분석할 것이라고 밝혀 추락 원인이 규명될지 주목된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날 오전 7시(현지시각)께 사고기 추락 현장에서 121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당국은 승객 283명과 승무원 15명 등 탑승자 298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사망자가 154명으로 가장 많았고 말레이시아와 호주 등 최소 9개 국적의 승객들이 탑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인 승객이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주요 항공사들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항로를 피해 우회해왔으나, 사고기는 이 항로를 고집했으며 비용 절감 등이 배경으로 추정된다.
이번 말레이시아 여객기 격추가 반군의 소행으로 드러나면 반군을 지원해온 러시아에 대한 압박이 전 세계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
사고 피해국인 호주는 즉각 자국 주재 러시아 대사를 소환,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토니 애벗 호주 총리는 "MH17기가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반군에 의해 격추된 것으로 보인다"고 러시아를 겨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