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하정우 강동원 '군도'에 아직 민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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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깊이·이야기 두께보다 도치, 조윤 두 인물의 대결 구도에 무게

 

'군도: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는 윤종빈 감독이 발군의 영화감독이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기대의 열기도 뜨거웠다. '용서받지 못한 자' '범죄와의 전쟁'을 만든 감독에게는 영화적 동지인 하정우를 비롯해 개성과 연기력으로 무장된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기 때문이다. 강동원은 군복무를 마치고 4년 만에 화려하게 복귀해 이 영화로 완벽하게 빛나는 스타가 됐다.
 
군도의 역사적 배경은 망징패조를 보이던 조선시대 후기 1862년 철종 13년이다. 반관숙정운동인 진주민란을 비롯해 기아에 시달리던 농민과 백성의 민란이 전국 약 70건에 달했던 그야말로 민란의 해였다.

김구의 '백범일지'에도 설명돼 있듯이, 영화에 등장하는 의적 '추설'은 당시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 근거지를 둔 군도(群盜)의 명칭이다. 백성의 곡식과 땅을 수탈해 축재하고, 파탄에 이른 백성을 노비로 삼는 탐관오리의 악행과 양반의 부패상이 극에 이르자, 그들의 재물을 빼앗아 백성에게 나눠주거나 백성을 보호하는 '명분 있는' 도적떼의 이야기이다.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역사 이야기는 이 영화로 하여금 시대상을 반영하는 진지한 사극으로 잠시 자리 잡게 한다. 하층민 중에서도 천민 백정인 돌무치(하정우)가 나주 대부호양반의 아들이며 학식과 무술의 제1인자인 조윤(강동원)에 의해 억울하게 어머니와 누이를 잃게 되는 도입부는 멜로드라마적인 비극이다.
 
그러나 즉시 영화는 사극의 역사적 무게를 떨쳐 버리고, 하정우와 강동원 두 명품배우의 양자대결 구도를 중심으로 끝까지 긴장과 리듬을 잃지 않는 호쾌한 액션활극으로 탈바꿈한다.
 
캐스팅은 성공적이다. 도입부에 잠깐 등장하는 하정우의 누이 곡지 역의 한예리는 돋보이는 연기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마동석 김재형 김성균 윤지혜 등 군도의 캐릭터들은 모두 개성이 강하다.
 
관객몰이를 할 캐스팅의 으뜸주자는 강동원이다. 조윤 역할의 강동원은 나주 최고부호인 양반의 서자로 태어나 '금수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성장한 인물이다. 재력을 이용해 탐관오리와 협잡하거나, 살인과 패악을 서슴지 않는 냉혈악인이지만,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보통의 아들이기도 하다.

황폐한 인간성에도 불구하고, 잘생긴 용모에 절도 있는 풍채, 냉소적이면서도 우수어린 마스크는 극히 매혹적이다. 얼굴에 서린 허무주의와 슬픔이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이다. 강동원이 보여주는 무술 장면은 발레를 보는 듯 세련되고 우아하다.
 
돌무치 하정우는 무지막지하지만 순박하기 그지없는 백정이다. 사람취급을 받지 못해도 당연히 여기고, 아파도 아픈 줄 모르고 머리가 돌덩이보다 단단하다는 걸 보여주는 코믹한 장면들이 야성과 선한 의지밖에 없는 그의 캐릭터를 강조한다.

그는 어머니와 누이의 억울한 죽음을 계기로 군도에 합류해 강동원에 대한 복수의 의지를 불태우는 인물 도치로 거듭난다. 조윤의 악에 맞서, 정의를 실현하는 캐릭터를 대표하지만, 양반의 상투를 잘라 양반의 정체성을 자신도 모르게 무너뜨리는 코믹하면서도 우직한 인물로 설정됐다.
 
영화 '군도'의 한 장면

 

하정우가 아니었다면 강동원이 빛을 발했을까. 두 인물의 캐릭터가 극단적인 대조를 통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강동원은 두뇌를 쓰지만 하정우는 머리를 쓴다, 황소처럼. 강동원은 완벽하고 수려한 악인이며, 하정우는 안티 히어로의 영웅이다. 강동원은 차분한 표준말을 쓰고, 하정우는 우악스러운 사투리를 구사한다. 강동원은 섬광이 빛나는 무사의 검을 쓰지만 하정우는 백정의 쌍칼을 휘두른다. 무예와 가슴의 대결, 엘리트와 무지한 백성의 대결이기 때문일까, 조선 최고의 무사 강동원은 난공불락이다.
 
리듬과 긴장을 시종일관 유지해 재미를 놓치지 않는 이 활극사극 군도가 다양한 장르의 혼합을 구사한 점도 특징이다. 멜로드라마, 무협영화, 웨스턴, 서스펜스 누와르의 요소들과 함께, 군데군데 코믹 터치가 어두운 주제의 영화를 경쾌하게 만든다. 강동원의 상투가 풀어지는 장면은 양반의 정체성과 여성성을 대치시킨 특히 혼란스러운 코믹이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영화로 기대를 많이 했다면, 역사적 깊이와 이야기의 두께보다 두 인물의 액션대결 구도로 너무 몰아갔다고 말할 수 있다.

다양한 촬영기술과 첨단음향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칼과 검의 스펙터클이 현란한 액션 장면들이 볼거리인 이 영화에서 유감을 말하자면, 자막으로 처리했어도 됐을 법한 내레이션과 몇 개로 나뉜 챕터가 장황하고 몰입을 방해한다. 뛰어난 영상미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그래픽 몇 가지도 옥의 티이다.
 
가장 유감스러운 점은 스파게티 웨스턴의 음악을 군데군데 썼다는 점이다. 스파게티건 수정주의건 웨스턴을 차용했다는 사실은 영상으로도 얼마든지 알 수 있는데, 구태여 '쌍권총은 두자루'라고 설명해 주는 모양새다. 음악때문에 이 품격 있는 한국 활극사극은 희화화되고, 서양장르, 스파게티 웨스턴의 한 하위장르로 종속되어 스스로 평가절하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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