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검색
  • 댓글 0

실시간 랭킹 뉴스

악필로, 두루마리 휴지에… '성경 필사본'에 깃든 사연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7월 31일까지 CBS 창사 60주년 기념 '성경 필사본 전시회'

윤여선(90) 할머니가 붓글씨로 쓴 필사본

 

지난 4일 CBS 창사 60주년 기념 ‘한국교회 성경 필사본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목동 CBS 사옥 7층. “세상에, 이걸 다 어떻게 썼대.” 펜으로 꾹꾹 눌러쓴 성경 필사본을 들여다보던 사람들은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출품된 성경 필사본 350점에 담긴 사연은 각양각색이다. 사용한 언어, 종이, 필기구도 다르고, 출품자의 나이와 글씨체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필사를 하면서 스스로 삶을 긍정하게 됐다는 점은 똑같다.

나순례(82) 씨는 성경말씀을 노트에 옮겨 적으면서 한글을 깨쳤다. 글씨는 삐뚤빼뚤 하고, 잘못된 철자도 눈에 띄지만 나 씨에게 필사본은 삶의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게 해준 고마운 물건이다. 재소자 이 모(55) 씨는 재물의 욕심을 절제하지 못해 영어의 몸이 됐다. 수치심과 죄책감이 컸지만 1년에 걸쳐 두루마리 휴지에 필사를 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김정희(95), 윤여선(90) 씨는 아흔이 넘었지만 요즘도 성경 필사를 즐긴다. 김정희 씨의 필체는 군더더기가 없다. 완성된 필사본은 꼭 지인들에게 선물하는데, 올해는 새로 시편을 필사하고 있다. 윤여선 씨는 20년간 단 하루도 필사를 거르지 않았다. 지금도 하루 7시간을 매달린다. 이번에 출품한 잠언서 병풍, 두루마리 필사본, 5권의 책 필사본은 이런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는 “성경 필사를 하다보면 말씀이 가슴에 새겨져 헛생각과 헛짓을 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성경 필사를 통해 가족의 우애는 더욱 두터워졌다. 이순동(91) 씨는 2006년 7월, 성경 필사에 착수했다. 이 작업에는 부부와 5남매 전 가족이 참여했다. 온 가족이 합심한 덕분에 1년 후 3만1천73쪽에 달하는 수제성경을 만들었다. 김광호(72) 씨는 96년부터 2년간 큰딸한테 결혼선물로 주려고 회계장부에 또박또박한 글씨로 필사를 했다. 필사본은 오랜 세월 집에 묵혀 있었지만 이번 전시회 소식을 알고 있던 큰사위 덕분에 햇빛을 보게 됐다.

고원종(동부증권 사장) 씨는 2005년 10월, 어머니 오수근(88) 씨로부터 성경 필사본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6개월 후(2006년 4월), 고 씨는 유학생활을 힘들어 하는 딸을 위해 필사를 시작해 929일 만에 완성했다. 이들이 만든 필사본에는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오롯하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큰 아들을 위해 필사를 한 이경오(73) 씨. 볼펜으로 쓴 글씨는 악필이지만 어떤 마음으로 공책을 빽빽이 채워 나갔을지는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이 외에도 세계 최대 성경(무게 78kg)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대형 필사본과 시편 150편, 8만 자를 붓글씨로 새긴 족자, 헬라어로 된 필사본 등이 눈길을 모은다.

이번 전시회에 단체 필사본을 출품한 김묘랑(28) 씨는 “늙었을 때 안경을 안 쓰고도 성경을 많이 읽고 싶어서,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나머지 손마저 못 쓰기 전에 필사를 했다는 사연이 기억에 남는다”며 “다음에는 개인필사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CBS 선교TV본부 유승우 대외협력팀장은 “한국에서 성경 필사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손으로 정성껏 쓴 성경 필사본을 통해 느림의 가치를 깨닫고, 바쁜 일상에서 잠시 쉬어가는 힐링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해사본, 고어성경 등 희귀선경 코너를 마련했고, 파피루스에 성경구절을 직접 쓰고 그림으로 장식하는 파피루스 체험도 할 수 있다. 붓글씨로 성경 가훈도 써준다.

7월 31일까지 서울 목동 CBS사옥 7층에서 열린다. 관람료는 무료. 문의 : 02-2650-7930

0

0

실시간 랭킹 뉴스

오늘의 기자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