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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삶"…김기덕필름 통해 본 한국영화 떠받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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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자본으로 색채 뚜렷한 작품 만들기 고민 치열…"뜻있는 영화인 구심점"

 

틀에 박힌 흥행 공식을 좇기보다는 영화 매체가 지닌 사회·문화적 가치를 증명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벌이며 한국 영화의 외연을 넓히는 데 큰 힘을 보태 온 김기덕필름.
 
김기덕 감독이 대표로 있는 김기덕필름은 1억 원 안팎의 제작비를 들여 영화 한 편을 찍는다. 보통 제작비가 10억 원 아래인 영화를 저예산 영화로 구분짓는데, 김기덕필름의 영화는 저예산 중에서도 저예산인 셈이다. 이는 뚜렷한 색채를 띤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 내기 위한 김기덕필름의 철칙이다.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탄 '피에타'(2012)부터 김기덕필름의 작품 제작을 총괄해 온 김순모(39) 프로듀서는 "제작비 1억 원 안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입장 덕에 자금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이라고 했다.
 
"보통 주변에서 3억 원은 들여야 영화 한 편 만든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데, 이때 BEP(손익분기점)를 맞추려면 극장에 10만 명은 들어야 합니다. 마케팅 비용까지 치면 못해도 4억에서 4억 5000만 원은 쓰기 마련이죠. 제작비를 1억 원선으로 제한했을 때 극장에 3, 4만 명이 들면 다음 영화를 찍을 수 있어요. 극장 수익이 예상보다 안 나도 해외 수익과 IPTV, 온라인 등 2차 판권을 통해 BEP를 맞춰 왔죠."
 
김기덕필름은 외부 투자를 끌어들이기보다는 고집스럽게 자비로 제작비를 충당하려 애쓴다. 최근 서울 북촌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김 PD에게 '정부 지원이나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해 더 큰 규모의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냐"고 묻자 머뭇거리지 않고 "현재 그럴 계획은 없고 앞으로도 조심스러울 것"이라고 답했다.
 
"김기덕 감독님의 작품이야 어렵지 않게 지원을 따내겠죠. 하지만 감독님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신예 감독들이 연출하는 김기덕필름의 다른 작품들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세워 둔 계획에 따라 후배 감독들이 눈치보지 않고 연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인 건데, 넓게 보면 지원이 더욱 간절한 다른 영화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해요."

■ 제작비 1억 안팎 "지속가능한 영화 만들기 철칙"

이에 따라 김기덕필름은 제작비 규모를 키우기보다는 제작 단계의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방식을 통해, 동일한 제작비로 더 나은 작품을 만드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지금까지 내놓은 김기덕필름의 영화는 이 점에서 꾸준히 진일보해 왔다고 김 PD는 자부했다.
 
"예산이 적으니 촬영도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진행하는 게 관건이죠. 피에타의 경우 스태프는 상업 영화의 3분의 2 규모인 25~27명으로 최소화했어요. 김기덕 감독님은 피에타를 찍고 나서 촬영을 열흘 안에 마무리짓기 위한 고민을 많이 하셨죠. 실제로 피에타는 3주 동안 12회차를 찍었는데, '뫼비우스'(2013)는 7일 동안 매일 아침 7시에 나와 밤 10, 11시에 퇴근하면서 촬영을 마쳤어요."
 
김기덕필름의 김순모 프로듀서 (노컷뉴스 이명진 기자)

 

덴마크 출신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주도한 '도그마 선언'에서 영감을 얻어 조명을 최소화하고 자연광으로 대체하려 한 노력도 촬영기간을 줄이는 데 한몫했다.
 
"뫼비우스는 실내 촬영이 대부분이었데, 그때도 최소한의 조명을 써서 조명 세팅 시간을 줄였죠. 이러한 시도가 영화의 톤과도 잘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해요. 일대일에서도 폭력성이 짙은 장면을 찍을 때 조명을 거칠게 가져간 것도 의도적이었죠."
 
이렇듯 빠른 촬영이 가능했던 데는 상업 영화에서 추구하는 철저한 분업보다는, 작은 영화로서 서로의 일에 유기적으로 관여하면서 영화에 대한 정보를 수평적으로 공유하는 체계가 만들어진 덕이 컸다.

"촬영을 빠르게 한다고 시나리오가 망가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김 PD는 강조했다. 촬영 전에 이미 작품의 주제나 메시지에 대해 충분히 공유하고 이를 머릿속에 뚜렷하게 그린 뒤 장면 장면을 담아내는 까닭이란다.
 
"일단 시나리오 단계에서 촬영 장소가 정해집니다. 뫼비우스는 서울 삼청동, 지난달 개봉한 '일대일'은 평창동으로 확정한 뒤 김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쓰는 와중에 직접 세부적인 장소를 물색하시는 식이었죠. 그렇게 장소 섭외 단계가 생략돼 프리프로덕션 기간도 줄일 수 있었어요. 연기도 배우가 준비해 온 것을 최우선으로 봅니다. 반복된 연기를 하면 에너지와 시간이 소모되니, 머릿속에 편집할 장면을 뚜렷하게 그린 뒤 배우 호흡이 끊어지지 않게 효과적으로 담는 거죠. 김 감독님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하는 것도 그 연장선입니다."

■ 극장 배급이라는 높은 벽 "직접 배급 한계도 뚜렷"

김기덕필름은 프리프로덕션 기간을 포함해 평균 두 달 반이면 편집된 영화 한 편을 내놓는다. 이제 그 영화는 관객과 만나는 접점인 극장 배급이라는 높은 벽과 마주하게 된다. 김 PD는 이에 대해 "아쉬움이 많은 단계"라고 했다.
 
"최근 일대일을 배급하면서 절감했죠. 일대일은 만들면서부터 5월 개봉을 염두에 뒀던 터라 직접 배급을 했어요. 그나마 김 감독님이 연출한 영화여서 극장들의 도움으로 50여 곳 넘게 상영관을 잡을 수 있었지만, '붉은 가족'(2013), '신의 선물'(2014) 등 김기덕필름의 다른 영화들은 힘들어요. 배급사를 통하면 그곳 스케줄에 따라 큰 영화 사이 사이에 들어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우리가 적기라고 여기는 때에 작품을 선보이려면 직접 배급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죠."
 

 

김기덕필름은 4월 개봉한 신의 선물의 경우 거점을 두고 상영관을 확장해 나간다는 전략을 짰다. 이에 따라 한 달 전부터 언론에 보도자료를 뿌리는 등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역시 한계에 부딪혔다. "직접 극장을 찾는 관객들을 먼저 챙겨야 한다는 걸 간과했다"는 것이 김 PD의 반성이다.
 
작은 영화이다보니 홍보 마케팅 비용은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 국내외 영화제 수상을 통해 먼저 작품성을 인정받은 뒤 극장 개봉을 타진하는 방식도 이러한 고민의 산물이다.
 
"붉은 가족의 경우 도쿄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나서 열흘 뒤에 개봉했죠. 그게 지난해 11월 첫 주였는데 홍보가 많이 부족했지만 그때 아니면 개봉 시점을 넘겨야 했으니 어쩔 수 없었어요. 일대일과 동시에 촬영을 진행한 '메이드 인 차이나'는 올해 부산영화제까지 지켜본 뒤 11월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죠. 영화제 수상을 통해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감독들이 계속 나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결국 이런 움직임은 우리나라에서 예술·독립 영화 시장이 유난히 적은 데 따른 악순환의 고리라고 봅니다. 이러한 영화들이 배급사를 통해 극장을 잡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우니까요. 분명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에요."

■ "영화판 떠나려 고민할 때 만난 '피에타' 시나리오"

김기덕필름의 영화는 제작비가 적다보니 스태프나 배우들에게 돌아가는 개런티도 많지 않다. 김 PD는 "제 입장에서는 제작비 규모로 볼 때 적잖은 금액이라고 보지만 김기덕 감독님은 항상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미안해 하시더라"고 했다. 그래서 김기덕필름은 극장 상영에서 얻은 수익의 50%를 스태프와 배우들의 몫으로 분배한다.
 
"피에타와 '풍산개'(2011)는 관객이 많이 들어서 스태프, 배우들의 몫이 꽤 됐죠. 붉은 가족은 본전을 했고, 신의 선물과 뫼비우스는 모자랐어요. 뫼비우스의 경우 마케팅 비용을 꽤 많이 썼는데도 3만 명이 들어 아쉬웠죠. 그나마 2차 판권으로 손해를 메웠지만요."
 
최신작 일대일은 관객이 1만 명에 그쳤다. 개봉 전부터 명확한 주제 의식이 언론에서 집중 부각됐던 만큼 무척이나 아쉬운 대목이다. 김 PD는 "정작 개봉한 뒤에는 관객의 관심을 끌지 못한 데 대해 홍보에 문제가 있던 건지, 영화에 접근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건지 내부적으로도 고민이 크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김 PD는 김기덕필름에서 일하면서 가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을 얻고, 돈에 대한 강박에서도 벗어나게 된 점을 자기 삶의 가장 큰 변화로 꼽았다. "과거 10년 동안 상업 영화를 하면서 번 돈보다 최근 3년 동안 벌어들인 게 더 많아 삶에도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 그의 익살 섞인 설명이다.
 
영화 '신의 선물' 언론시사회가 4월4일 서울 행당동 왕십리 CGV에서 열린 가운데 왼쪽부터 이 영화를 연출한 문시현 감독과 배우 이승준 이은우 전수진 김영재, 그리고 시나리오를 쓴 김기덕 감독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노컷뉴스 이명진 기자)

 

2003년 이민용 감독 작품의 제작부 막내로 들어가면서 영화 제작과 인연을 맺은 김 PD는 이후 10년 동안 상업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캐스팅이나 투자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여러 차례 주저앉기를 반복했단다.
 
"영화를 그만 둬야 하나라는 회의에 빠졌던 그맘때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친구들과 단편 영화 작업을 하면서 열정을 새삼 되새길 수 있었는데, 곧이어 한예종 영상원 전문사 시험에 붙으면서 영화판을 떠날 시기가 2년 유예되는 상황이 만들어졌죠. 그런데 2012년 2월2일 풍산개를 제작한 전우찬 PD를 통해 김기덕 감독님의 피에타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잘 쓰신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왔지만 정말 좋았어요. 거칠지만 읽는 사람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드는 덕에 단번에 읽었죠. 그 이튿날 김기덕 감독님과 첫 만남을 갖고 곧바로 피에타 제작에 들어갔어요."
 
영화 피에타가 김 PD에게 구원의 손길이 된 셈이다. 그는 그렇게 김기덕필름에서 일하며 젊은 후배들의 역량을 이끌어낼 수 있는 영화 제작 환경을 고민하는 입장에서 영화라는 매체의 사회적 책임을 절감하고 있었다.
 
"김기덕 감독님이 아주 오랫동안 영화를 하셨으면 해요. 지금도 저보다 영화를 더 많이 보시고 촬영 장비 다루는 법을 꾸준히 익히세요. 일상의 모든 것을 영화와 연결시키는 분이죠. 그래서인지 후배들에게 '김기덕 감독님은 지금도 이렇게 하는데…'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됩니다. 감독님이랑 한 번 일해 본 사람은 알죠. 이 점에서 김기덕필름은 영화의 가치를 지키려는 스태프, 배우들의 뜻을 모으는 구심점이라고 생각해요. 제 입장에서도 능력이 된다면 최우선 순위로 젊은 친구들에게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요. 후배들을 이끌어 줄 수 있는 뜻을 지닌 감독, 배우, 제작자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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