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국무총리 내정자(왼쪽), 한민구 국방부장관 내정자
정부의 요직중 요직인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 후보자가 친일·민족비하 발언을 하고 조상의 친일행적 여부가 정치사회적 논란거리로 부상하면서 청와대가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졌다.
특히, 안대희 전 총리후보자가 전관예우로 낙마한 지 불과 10여일 만이어서 박근혜 대통령이 느끼는 정치적 부담은 더욱 크다.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대법관 경력으로 단기간에 거액의 돈을 벌어들여 낙마한 일이 채 잊혀지기도 전에 이번에는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친일 발언이나 집안의 친일행적이 여론의 도마위에 올랐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본인이 다니는 교회강연이란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국민들이 용납하기 어려운 친일 또는 민족비하발언으로 곤경에 처했다.
문 후보자는 지난 4월 서울대 강의에서는 종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으로부터 굳이 사과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망언에 가까운 발언을 했고 노무현 대통령시절에는 위안부 배상문제는 이미 40년 전 끝난 일이란 취지의 글을 썼다.
한 방송사가 공개한 교회강연 동영상에서는 "이 나라를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고 남북분단이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조선민족은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디엔에이에 남아 있다"라고 말한 것으로 확인돼 온 나라가 총리후보자의 발언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발언으로 들끓고 있다.
한민구 국방부장관 후보자 역시 조부의 친일행적이 보도되면서 친일논란에 휩싸였다. 독립유공자로 알려진 한민구 국방장관 후보자의 조부가 구한말 의병장 체포에 협조한 일제 협력자라는 주장이다. 구한말 의병 연구가인 이태룡 박사의 폭로에 한 후보자측이 무관한 일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가시지 않고 있다.
이태룡 박사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일제경찰의 기밀문서까지 내놓은 것도 이유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문창극 후보자의 발언에 대해 "일반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해석하는 것은 모르겠으나 일국의 총리로서는 자격이 없는 발언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안 의사가 누구냐고 했을 때, 상식적으로 안중근을 얘기하지만 그쪽(친일) 세계에서는 안두희라고 한다"며 사고의 틀이 다른 데서 오는 발언이라는 나름의 해석을 내놨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위안부 발언에 대해 "독립운동 후손들에게 석고대죄하고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박근혜 정권과도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워낙 일반인들의 가치관과 동떨어지는 발언이라는 점에서 '총리후보자가 일제 친일사관에 젖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한다.
사실 친일, 민족비하발언은 발언의 내용도 워낙 납득하기 어렵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가족사와 관련해서도 과거 친일논란이 거세게 일었기 때문에 친일 이슈 자체는 현 여권에서는 일종의 금기사항으로 통한다.
박근혜 대통령(사진=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 당시 나빠질대로 나빠진 친일관계를 넘겨받아 일본각료들의 신사참배나 정치인들의 잇따른 망언, 독도 영유권 침해발언, 역사교과서 왜곡 등 한일간 민감한 현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세워 비타협적이고 민족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에서 한일관계 기조를 유지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예기치 않게 불거져 나온 각료후보자들의 친일행적이나 조상들의 친일논란은 인사청문회 통과여부를 떠나서 여권 전체와 대통령에게 커다란 정치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과거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통해 엄청난 피해를 입은 역사적 상처 때문에 유독 일본문제에 대해서는 다수의 국민이 민감하게 반응해왔고 국민적 공분이 크다는 점을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여권에서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가장 앞서는 것으로 알려진 김무성 의원이나 김성태 의원, 정문헌 의원, 다수의 초선 의원들이 이미 문창극 후보자의 발언을 문제 삼았고 다수 의원들은 문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런 움직임은 더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 역시 사태의 파장이 간단치 않게 전개되자 정국에 미칠 영향,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미칠 영향 등을 분석하면서 바짝 긴장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세월호 참사, 안대희 전 후보자 낙마에 이어 불거진 문창극 후보자의 친일, 민족비하발언에 박근혜 정부가 또 한 차례 위기를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