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연이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뒤통수'를 치는 형국이다.
미일 양국 정상의 정치적 지향점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은 작년 말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때부터 표면화됐다.
아베 총리는 집권 1년을 맞아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전범 숭배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했으며 미국은 "실망했다"는 논평을 내고 반발했다.
역사 문제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갈등에서 미국이 한국 쪽에 기울 태세를 보이자 초조해진 일본은 온갖 '러브콜'을 보내 18년 만에 미국 대통령의 국빈 방일을 성사시켰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집단자위권 추진을 위한 아베 내각의 노력을 칭찬하며 중국의 비판을 희석하는 등 아베 총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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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일본의 집단자위권 추진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쏟는 국방비 부담을 덜어주는 등 기본적으로 미국의 이익에 들어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베 총리에게 정치적 선물을 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서의 양보를 끌어내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과 일본이 분쟁 중인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열도가 미·일 안보조약의 5조의 적용 범위에 들어간다고 직접 발언하는 등 성의를 보였다.
하지만, 막판까지 이뤄진 TPP 협상에서도 양측은 합의점을 찾지 못해 오바마 대통령은 '빈손'으로 일본을 떠났다.
뒤통수 치기의 정점은 북한과 일본의 납북자 재조사 합의다.
인도적인 명분 때문에 미국이 대놓고 반대하기 어렵지만, 북한에 대한 전면 압박에 태세에 빈틈이 생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북일 합의 발표 전에 관련 사실을 전달받았다고 했으나 일본이 독자적인 대북제재 완화 방안을 한국이나 미국과 구체적으로 협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일본의 투명한 납치문제 해결 노력을 계속 지지한다"는 미국 견해의 핵심은 북일 협상을 투명하게 하라는 데 있었던 셈이다.
젠 사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북일 합의에 관해 "자세한 정보는 일본 정부에 물어보라"고 말한 것은 불쾌감의 우회적 표현으로 여겨지고 있다.
일본은 러시아와의 관계에서도 미국을 슬슬 자극하고 있다.
일본은 앞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의 러시아 방문을 보류하는 등 미국과 보조를 맞추는 듯했다.
그러다 지난달 초에는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이 모스크바에 가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인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안보회의 서기와 접촉했다.
방문 사실이 며칠 지난 후에야 일본 언론을 통해 알려져 미국의 불편한 심기를 가중시켰다.
이달 2일에는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세르게이 나리슈킨 러시아 하원 의장이 일본을 방문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과 관련해 미국이 자산동결 대상으로 지정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2일 브리핑에서 오래전부터 결정된 방문이고 문화 교류를 목적으로 온 것이라 정부 관계자를 만날 계획은 없다고 '연막작전'을 펼쳤다.
그렇지만, 나리슈킨 의장은 2일 이부키 분메이(伊吹文明) 중의원 의장의 공관에서 만찬을 하는 등 각별한 대우를 받았고 3일에는 야마자키 마사아키(山崎正昭) 의장을 만나 "의원 간 교류는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정치적 대화의 일부"라며 존재를 과시했다.
아사히(朝日)신문 일본 정부가 나리슈킨 의장의 일본 방문을 수용한 것이 러시아와의 북방 영토 협상을 고려한 것이며 올해 9월 예정된 푸틴 대통령의 일본 공식 방문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3일 해석했다.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TPP, 북일 합의, 러일 관계 회복 노력에서 등 평소 생각한 우선순위에 따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을 번번이 실망시킨 셈이어서 미·일 관계가 다시 경색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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