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한지 20년이 되는 해를 맞은 나의 11번째 영화 ‘하이힐’은 차승원과 장진, 두 친구가 6년 만에 다시 만나 새롭게 도전한 작품이다’-장진 감독
영화 ‘하이힐’은 코미디가 장기인 장진과 한때 코믹 이미지가 강했던 차승원이 피가 튀는 액션 느와르에 도전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 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도 충무로 상업영화가 흔히 하지 않는 시도다.
앞서 류덕환이 주연한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2006)가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그렸다.
두 남자의 협업은 제법 색다른 결과물을 낳았다. 차승원은 강하고 날렵하고 거침없는 남성이면서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의 슬픔도 지나치게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감성적으로 잘 소화해냈다.
느와르에 녹아든 장진 감독 특유의 코미디는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웃음을 자아내며 어둡고 진지할 수 있는 이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장르적 신선함과 대중적 재미는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을 위기로 몰아넣는 과정에서 이야기의 개연성이 떨어지고 납득할 수 없는 잔인한 장면이 반복되면서 점점 매력을 잃는다.
트랜스젠더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사회의 분위기와 대중성을 고려해야하는 상업영화의 한계라는 점에서 초반의 야심찬 도전과 달리 현실을 고려한 엔딩은 복잡한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완벽한 몸과 싸움 실력을 지닌 강력계 형사 지욱(차승원)은 경찰뿐만 아니라 범죄조직에서도 전설로 통한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지욱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설명하는 사람도 부하들 앞에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은 그 조직의 두목이다.
두목의 동생인 조직의 2인자인 허곤(오정세)는 아예 지욱을 진짜 사내라며 경외한다. 정작 지욱은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로 남몰래 호르몬주사도 맞고 있는데 말이다.
살아있는 전설이면서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삶을 준비하던 지욱은 범죄 조직과 검사 간의 거래에 뜻하지 않게 휘말리면서 오랫동안 준비해온 여자가 될 기회를 놓칠 위기에 처한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있다. 단지 몸동작뿐만 아니라 눈빛에서 지욱의 번민과 고통을 담아낸 차승원은 외모에서부터 감성까지 대체할 배우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적격이다.
매력적인 악당을 연기한 송영창과 오정세, 눈여겨보고 싶은 충무로의 젊은피 고경표 그리고 주목받고 있는 차세대 여배우 이솜까지 그들의 연기는 궁금증을 자아내며 드라마의 허점을 메운다.
지욱의 전설을 직접 보여주는 도입부의 테이블 액션과 빗속 우산 액션신 등 스타일이 살아있는 액션신도 볼거리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무슨 상황인지 알수없게 꼬이는 이야기와 대단히 파격적인 주인공을 내세웠으나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상식적 수준에 머문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극중 지욱이 자신과 같은 처지로 이미 수술로 생물학적으로 여자가 된 트랜스젠더를 만나는 장면이 있다. 이때 그가 해병대 선배인걸 알고 슬쩍 일어나 엉거주춤한 자세로 경례를 하면서 소소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어 지욱이 해병대에 자원하고 남자가 인정하는 진짜 사내가 된 배경에는 자신 속의 여성성을 부정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나 다름없었음이 드러난다.
오랫동안 고통받으며 그토록 간절히 바란 일인데, 평생 지켜줘야할 소중한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본성을 숨겨야 할까? 이는 우리사회가 성소수자들에게 들이미는 일반적 주장과 겹쳐진다는 점에서 못내 아쉬움을 남긴다.
트랜스젠더라는 도전적 캐릭터를 일반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한 극장 관계자는 “상업적 재미가 분명히 존재하나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고 낯선 캐릭터에 대한 당혹스러움을 표했다.
한 영화 관계자는 “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영화를 보고 솔직히 놀랐다”며 “차승원의 액션이 너무 멋지고 예상치 못한 유머도 재미있었다”고 장점을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이 영화를 진지하게 봐야하는지, 가볍게 봐야하는지 계속 모호했고, 트랜스젠더 캐릭터도 깊게 다뤘다기보다 문제가 되지 않을 수준에서 적당히 취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단점을 지적했다.
한편 장진 감독은 29일 진행된 언론시사 기자간담회에서 트랜스젠더를 주인공을 내세운 이유로 " 틀 안에서 벗어나 있는 외적의 것들에 관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인정받지 못하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그런 부분에 대해 끄집어내보고 싶었다. 거기서부터 시작이 됐을 것이다. 애초 성소수자들의 영화를 해야지라고 만든 영화는 아니다.”
상업영화이다보니 영화가 줄 수 있는 재미를 가져가야 한다는 점에서 갈등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주변의 성소수자들에게 조언을 많이 받았다고 털어놨다.
" 그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클럽 장면에서도 자기가 일하는 시간을 비워서 도와줬다. 시나리오를 보고 결정적인 부분을 잘 말해줘서 과감하게 수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