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자료사진)
세월호 참사가 정부의 허술한 관리·감독이 빚은 비극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숭례문의 부실 복원 이유 역시 세월호 참사와 판박이인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15일 '문화재 보수 및 관리 실태' 감사를 통해 숭례문 복원 공사가 규정을 위반한채 부실하게 진행됐고, 감독 당국은 이를 묵인하는 것도 모자라 부실을 주도한 것으로 밝혀냈다.
◈ 전통단청 기술 없는 단청장 말만 믿고 복원감사원에 따르면 관리·감독 기관인 문화재청 숭례문 복구단은 시험시공 등의 검증이 필요하다는 복구자문단 등의 의견을 무시하고 단청 복원을 맡은 단청장 홍모 씨의 명성만 믿고 공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홍 씨는 시공법이나 내구성 등이 검증되지 않은 단청기법을 숭례문에 적용했고 결국 전통 단청 재현에 실패했다.
홍 씨는 실패 사실을 숨기기 위해 복원공사 중 화학접착제를 아교에 몰래 섞어 사용했고 이 때문에 아교와 화학접착제의 장력 차이로 단청이 벗겨지는 등 훼손됐다. 이 과정에서 홍 씨는 값이 싼 화학접착제 사용으로 3억원의 부당이익을 취하기도 했다.
여기다 단청에 물이 닿은 뒤 얼룩이 생기자 인화성이 강한 테레빈유를 동유에 섞어 사용했다.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을 복원하면서 또 다시 화재위험성이 높은 재료를 사용한 것.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홍 씨가 단청장 자격으로 중요무형문화제로 지정됐지만 실제로는 전통단청 시공기술이나 경험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 무형문화제 지정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뒤죽박죽 복원으로 문화재 가치 잃은 모형에 불과동시에 시공편의 등의 사유로 부위별로 조선시대 전기부터 중·후기, 현대 양식까지 뒤섞은 채 시공해 숭례문은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려 사실상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렸다.
대표적으로 전통기와를 사용할 경우 시공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전통기와를 사용하지 않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KS기와 규격으로 임의로 변경했다.
지반공사의 경우 자문회의를 거쳐 지반복원 기준시점을 조선 중·후기로 결정했지만 시공편의를 위해 화재 전 지반에서 토층만 걷어낸채 복원을 강행했다.
또, 전통철물 제작기술에 대한 면밀한 검토도 없이 사업을 추진해 결국 철물 제작량이 소용량의 2%에 불과하자 경복궁 수리과정에서 남은 조선시대 철물과 현대철물을 섞어 돌려막기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 강경원 사회문화감사국장은 "현대적 방법 복원은 모형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면서 "최대한 원상태에 가깝게 복원해야만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진도 인근 해안에 침몰한 세월호 여객선. (사진=목포해경 제공)
◈ 공무원들이 부실 복원 방치도 모자라 주도해이처럼 불법 증개축으로 복원력을 잃어버린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각종 규정을 지키지 않고 무단으로 본래 복원계획을 임의변경하는 등 부실 복원이 이어졌지만 감독기관인 문화재청은 이를 방치하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부실을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강 국장은 "문화재청 복구단이 주도적으로 (복원기준을) 임의변경했다"면서 "알고도 넘어간 부분이나 부당하게 공사관리를 한 부분에 징계책임을 묻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기와 규격 변경의 경우 복구단 팀장이 주도했지만 자문회의 등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으며 지반공사는 팀장에게도 보고되지 않은채 실무자가 임의로 기준 변경을 결정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이에따라 감사원은 문화재청장에게 부실 복원의 책임을 물어 숭례문 복구단장 등 부실 복원을 주도한 소속 공무원 5명에 대해 징계를 요구했다.
그러나 공무원 징계의 경우 시효가 3년에 불과해 기와규격 변경과 철물제작 실패 등의 부실에 대해서는 이들 공무원에게 책임도 물을 수 없는 형편이다.
감사원은 또 단청장 홍 씨는 사기혐의로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으며 부실 시공업체와 소속 문화재수리기술자, 감리업체에 대해서는 향후 행정상의 불이익 등 제재조치를 요구했다.
◈ 첨성대 등 다른 문화재 관리도 허점 투성이감사원은 이와함께 숭례문 복원 공사 뿐만 아니라 다수의 문화재 관리실태에 대해 감사를 벌인 결과 각종 부실 감독·관리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대표적으로 국보 31호 경주 첨성대의 경우 지반침하로 상부가 이마 20cm나 기울었고 매년 1mm씩 추가로 기울어 상부 석재가 탈락되거나 추락할 위험이 있는데도 그대로 방치돼 있다가 최근 감사원의 지적 이후에야 뒤늦게 대책마련에 나섰다.
또, 정기조사 결과 보수가 필요하다고 조사된 국보·보물 191건 가운데 61%인 117건은 지자체의 보수 신청이 없다는 이유로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문화재 관리 전문인력도 턱없이 부족해 경기도 등 2개 지자체를 표본조사한 결과 문화재 수리공사 554건 가운데 전문성을 갖춘 감리원이 감사한 공사는 19건에 불과했고 나머지 공사는 전문지식이 없는 공무원이 감독 업무를 수행했다.
이 밖에도 문화재 자체 보수 보다는 화장실과 배수로 등 주변 정비사업에 전체 보수.정비 예산의 51.7%가 사용되는 등 문화재 관리가 전반적으로 부실한 것으로 감사결과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