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스무 번째 작품 '일대일'은 극단의 불평등으로 얼룩진 세상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의 들끓는 분노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이 영화는 사회적 약자들을 모아 "우리도 사람"이라는 외침을 전하려 했던 한 인물의 처절한 실패담을 그리고 있다. 그 메시지는 김 감독의 작품답게 온갖 상징과 은유로 가려져 있으면서도, 대사가 없던 전작 '뫼비우스'와 달리 등장인물들간 대화를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영화는 시작과 함께 여고생 민주가 일군의 남자들에게 살해되는 장면을 보여 준다. 민주를 죽이는 데 동참한 한 남자는 전화로 경과를 보고하고, 보고를 받은 의문의 남자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과정이 서너 차례 반복되는데, 이를 통해 민주의 죽음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후 카메라는 민주를 살해하는 데 관여한 인물들의 행적을 쫓는 동시에, 그들을 한 명 한 명 붙잡아다가 범행을 자백 받는 비밀 조직 '그림자'의 정체를 파헤치는 데 힘을 쏟는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에서 참혹한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수많은 인간 군상을 비추며 "당신은 어떠한 사람에 해당되냐"고 묻는다는 것이다. 이로써 영화 일대일은 우리의 자성을 촉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드러낸다.
'용의자'로 표현되는 민주를 죽인 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들이 벌인 끔찍한 범죄에 대해 "내 평생 밥줄인 조직을 위한 일이었다"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라는 식의 변명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윗분'으로 올라갈수록 그 변명은 어딘가 구체성을 잃고 뭉뚱그려진다. "조직에 충성하는 게 나라를 위하는 것 아니냐" "모두 다 잘 살자고 한 거다"라는 식인데, 그 정점에 선 인물로 가면 변명의 추상성도 극에 달한다.
이들을 단죄하려는 비밀 조직 그림자의 구성원들은 흔히 말하는 사회적 약자들이다. 손님에게 하대 당하기 일쑤인 카페 종업원인 그림자1(이이경), 사장에게 인격 모독을 받는 자동차 정비사인 그림자2(조동인), 일자리를 못 구해 방황하는 미국 명문대 졸업생인 그림자3(테오), 애인의 폭력을 참고 사는 여자인 그림자4(안지혜), 아내의 입원비 때문에 사채를 끌어 쓴 실업자인 그림자5(조재룡), 친구에게 사기를 당하고 길거리로 내몰린 영세 자영업자인 그림자6(김중기)이 그 면면이다.
영화 '일대일'의 한 장면
이들은 민주를 죽인 자들에게 자백을 받을 때 군인(철모에 '멸공' 머리띠를 두른 군복, 70·80년대 단색 군복, 미군복을 입고 세 차례 등장), 조직 폭력배, 경찰, 국정원의 정장 복장을 하고 있다.
이는 한국 현대사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 온 조직들을 상징하는 옷을 입음으로써 역할 놀이를 벌인다는 성격이 짙다. 현실에서 나약한 존재들이 복장 하나로 자신감을 얻어 단죄에 나선다는 설정을 통해 권력의 유치한 생리를 까발리는 셈이다.
이 영화에서는 극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인물이 둘 있다.
먼저 그림자 조직의 첫 목표가 된 뒤 그림자의 정체를 파헤치는 용의자1(김영민)을 들 수 있다. 배우 김영민은 용의자1 외에도 물질만능의 노예가 된 카페 손님, 동생 공부시킨 것을 투자로 여기는 형, 애인에게 폭력을 일삼는 남자, 사채업자 등 그림자 구성원들 각자의 분노를 들끓게 만드는 인물로 1인 8역을 했다.
이를 통해 영화는 우리 사회 속 가해자들의 모습이 어딘가 닮아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나머지 인물이 그림자 조직의 대장인 그림자7(마동석)이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자들을 단죄하려 드는데, 이 모습을 대하는 그림자 구성원들은 "내가 생각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 "너무 하는 것 아니냐"며 하나둘 그의 곁을 떠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