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엿새가 지난 21일 오후 전남 진도군 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지친 모습으로 누워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아~".
짧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한 중년 여성이 급하게 뛰쳐나갔다. 일순간 수백 명의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 서늘한 긴장감이 돌았다.
세월호 침몰 엿새째인 21일. 지지부진한 수색 상황 속에서 적막이 흐르던 진도체육관은 밤 9시가 가까워오자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스물세 구의 시신이 무더기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기다림에 지쳐 누워있던 가족들도 시신 인양 보고서가 새로 올라올때마다 갑자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단상에 있는 대형 전광판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앞 사람이 시야를 가릴 때면 "안보여"라며 거칠게 소리치기도 했다.
체육관 한 쪽 구석에 마련된 DNA 상담 천막에 점점 많은 가족들 얼굴이 신원 확인을 위해 모여들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가족의 이름을 대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에는 두려움과 공포 마저 묻어 있었다.
오른쪽 아래 금니 세개, 파마머리, 보라색 등산복, 분홍색 디지털 카메라...
묘사된 시신의 인상착의는 평범하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복장만으로 상황을 짐작케 했다.
오랜만의 제주 나들이에 산뜻한 등산복 차림으로 배에 올랐을 파마머리의 중년 여성부터 여행의 순간을 담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디지털 카메라를 손에 쥐고 있었던 학생까지.
실종됐던 세 명의 외국인 중 조선족 한 명도 연두색 바람막이 점퍼를 입은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전광판을 뚫어지게 보던 한 중년 남성은 이내 고개를 떨구며 머리를 감쌌다. 그리고 현실을 부정하고 자책하는 듯 이마를 몇 차례 때리기도 했다.
"오늘 밤에 많이 나올거야" 가족들에게 미리 마음을 다잡으라 당부하는 가장도 있었다.
밤이 깊어가는 만큼 끔찍한 현실을 직면해야 하는 실종자 가족들의 고통도 더 깊어지고 있다.
전광판에 내 아이가, 내 가족의 이름이 불릴까봐 두려움과 동시에 영영 불리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
그 복잡한 심경은 가족들의 꽉 다문 입과 절망에 찬 눈빛 속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