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짐짝이 됐다" 96명 장애학생 어디로 가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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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수학교 학부모와 교사들, 이사장 폐쇄 통보에 "천막수업이라도 할 것"

 

"유진(가명)이 허리가 딱딱하니? 움직이면 아파?"

지난 15일 오전 찾은 서울 성북구 명수학교의 아담한 교실 안. 바닥에 요가매트 8개를 깔고 누운 아이들이 잔잔한 음악 속에서 선생님에게 요가를 배웠다.

이 아이들은 발달장애를 가졌다. 팔다리가 부자유스럽거나 가끔 척추가 뻣뻣해지기도 해서, 운동 수업을 할 때면 각 반 선생님과 보조교사가 아이들을 도와준다.

또다른 교실에서는 윷놀이를 가르치거나 그림을 그리고 미니 크리켓을 하는 등, 한 반에 8명 정도 정원으로 다양한 특수교육이 이뤄지고 있었다.

명수학교에서는 초등학교 입학할 나이부터 이 학교를 다닌 발달장애학생 96명이 특수교육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 학교가 하루아침에 폐쇄 위기에 놓였다.

이사장이 경영난을 이유로 "더이상 운영할 수 없다"며 16일자로 폐쇄 선언을 한 것.

이에 장애인의 날을 불과 나흘 앞두고 96명의 발달장애 학생들이 교실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학부모들은 허탈감과 당혹감에 15일 아침 일찍 학교에 달려와 대책회의를 열었지만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다.

◈ "오늘이 마지막 수업?" 질문에 교사들 "절대 그럴일 없다"

명수학교에 12년째 다니고 있는 이 모(19) 양. 이 양은 발달장애 1급(레트 증후군)이다.

이 양의 어머니 최은희(48) 씨는 아이가 학교를 못다니게 되면 당장 어디로 보내야 할지 한숨만 나온다.

혼자 걷거나 화장실을 갈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지만, 오래 전부터 이 양을 전담해온 교사들은 이 양의 상태를 잘 알고 익숙하게 돌본다.

이렇게 10년 넘게 같이 지낸 교사와 친구들과 헤어져 여기저기 다른 학교로 전학가야 할까봐 가장 걱정이다.

"우리 아이들은 물건이예요. 짐짝. 이 학교가 폐쇄되면 다른 학교에 턱하니 갖다 놓는..."

명수학교 학생들은 주로 성북구 인근에 살고 있어 애초에 명수학교를 배정 받았다. 이곳이 폐쇄되면 갈 학교가 없다. 특수학교가 구마다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학교들도 이미 학생들이 넘쳐나는 상황이라 명수학교 학생들을 위한 자리가 없어서다.

다운증후군 아들 박 모(20) 씨를 명수학교에 보내고 있는 주옥순(56) 씨는 "96명 아이들 전부 임시로 체육관에라도 몰아 넣겠다는 것이냐"면서 학교 폐쇄를 눈앞에 둔 막막함을 토로했다.

주 씨는 "지난 주말에 아들에게 '너 사흘만 학교 더 가면 못다니는데 어떡하냐'고 했지만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도 못한다"면서 "아이들에게 이곳은 유일하게 집 밖의 행복한 공간인데...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16일 학교가 정말 문을 걸어잠근다면, 사실상 15일이 학생들의 마지막 수업이자 교사 등을 포함한 60여 명의 교직원들의 마지막 근무일인 셈.

하지만 교사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수업을 진행하며, '절대 마지막 수업이 아니다'라고 짧게 강조했다.

 

◈ "학교 문 잠긴다면 천막 수업도 불사하겠다"

15일 학교에는 어떻게든 학교 폐쇄를 막아보려는 학부모들이 모여들었다. 오전부터 40여 명의 학부모들이 이사장실에서 대책회의를 했다.

"당장 내일 학부모들이 조를 짜서 통학버스에 같이 타고 학교에 오자"는 등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눈앞에 닥친 폐쇄 조치를 막을 수는 없는 상황.

교장과 이사장의 입장도 팽팽히 맞섰다.

교장은 "학교를 계속 운영할 직권이 교장에게 있다"면서 "학교에 쇠사슬을 친다면 밤새 학교에 남아서 교장 손으로 쇠사슬을 끊겠다"고 폐쇄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반면 이사장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월 임대료 2,000만 원씩 낼 돈이 없는데 더이상 어떻게 운영을 하겠느냐"는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1968년 지어진 명수학교는 전국 유일의 개인 소유 학교로, 현재 설립자 사망 이후 6명의 자녀들이 학교 부지의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이 부지에 지난 2010년 장남이자 이사장인 최 모 씨가 개인 명의로 학교 건물을 신축하면서 나머지 형제들과의 다툼이 벌어졌다. 형제들이 최 씨에 대해 부지 사용료 청구소송을 내자 지난 3월 법원은 형제들에게 임대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사장 최 씨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학교장도 최 씨의 누나다.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형제간의 재산 싸움 때문에 애먼 자녀들이 피해를 보는 셈이다.

학교 폐쇄를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자, 이날 이사장실에 모인 학부모들의 낯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한 학부모는 "결국 돈 때문에 아이들이 있거나 없거나 문을 닫겠다는 것 아니냐"면서 이사장을 질타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교육청은 "폐쇄만은 막겠다"고 이날 입장을 밝혔다.

교육청 한 관계자는 "아무리 개인 소유 학교라고 해도 학교인 이상 교육감 승인 없이 마음대로 폐쇄할 수 없다"면서 "현재까지 이사장 개인의 일방적인 통보일 뿐 실현될 수 없다"고 논란을 일축했다.

이어 "폐쇄를 막기 위한 모든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면서 "학교를 공립화하거나 이를 사들일 독지가를 물색하는 등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하는 중이지만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법원 판결이 나온 뒤 사태가 악화돼, 학부모들이 불안해 하는 것을 이해한다"면서 "특히 특수학생들을 위한 학교인만큼 96명의 학생 중 한 명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학부모들은 16일부터 학교 문이 닫히는 등 아이들 수업에 차질이 생긴다면, 학교 앞 공원에 천막을 설치하고 '천막수업'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이다. 대다수 교사들도 동참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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