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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이냐 '알렉산더'냐…안철수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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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 魯(노)나라에 미생(尾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약속 지키는 것을 목숨처럼 중요하게 생각해 반드시 지키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느날 미생은 애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하고 제시간에 약속 장소로 나갔으나 웬일인지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계속 기다리고 있던 중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져 개울물이 갑자기 불어났다.

그러나 미생은 '이 다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으니 이 자리를 떠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그 자리에서 교각을 끌어안은 채 버티다 급류에 휘말려 떠내려가고 말았다.

우직하게 약속만을 굳게 지킨 신의의 인물이라는 평이 있는 반면, 너무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어리석은’ 인물로도 평가받는다.

장자(莊子)는 <도척편>에서 공자가 유명한 도둑 도척을 개심시키려 미생(尾生)의 이야기를 들려준 일화를 소개했다.

미생 이야기를 다 들은 도척은 "이런 인간은 책형(磔刑)당한 개나 물에 떠내려가는 돼지, 아니면 쪽박을 들고 빌어먹는 거지와 다를 바 없다"며 "사소한 명분에 끌려 진짜 소중한 목숨을 소홀히 하는 자이며 진정한 도리를 모르는 놈"이라고 통렬히 비난했다.

사기(史記) 소진전(蘇秦傳)에도 나오는 이 말은 '약속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의미 있지만 명분에 치우쳐 일을 그르치지 말라'는 얘기로 현세를 사는 우리에게도 울림 있게 인용된다.

작금의 정치권에서 가장 화두가 된 '약속'을 꼽으라면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문제일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김한길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회동을 제안하며 폐지 문제를 논의하려고 했지만, 청와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7일 박준우 정무수석을 안철수 공동대표에게 보내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등에 관한 영수회담 제안에 대해 거부 의사를 공식 통보했다.

안·김 두 대표는 "정무수석이 와서 말했으니 이걸 공식 통보로 생각하고 향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오늘 논의해서 내일부터 대응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제 두 사람은 비장의 카드를 꺼내야 할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다. 과연 돌파할 카드, 출구전략은 있는 것일까.

“답답하다”는 김한길 대표의 말에서 보듯, 명분도 얻고 실리도 챙길 수 있는 뾰족한 출구전략은 없어 보인다.

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들 사이에선 기초선거를 보이콧하자는 의견에서부터 선거를 지더라도 무공천을 밀고 가자는 안 등을 내놓고 있다.

말이 선거 보이콧이지, 이미 법으로 정해진 6.4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그런 결정을 내린다면 무책임의 극치이자 그 누구로부터도 칭찬을 받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명분을 지키기 위해 ‘미생’이 되겠다는 각오가 한결 나은 결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은 총을 들고 지방선거에 나서지만 우리(새정치연합)는 소총도 들지 않고 선거를 당당하게 치러 패했다‘고 떠들어본들, 야권을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정청래 의원은 7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만약 이렇게 기초 무공천으로 가서 지방선거에 대패하고 나면 그때는 아마 저는 가만히 있어도 다른 의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다”고 경고했다.

최악의 경우엔 ‘신기루’ 정치인 안철수라는 비아냥거림에 시달려야 한다. 정치권의 <미생지신>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그나마 나은 선택은 무엇일까. 답은 명확하다. '회군'(回軍)을 해야 한다. 구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공천파들의 주장을 수용해 기초선거 정당공천을 해야 한다.

‘명분’을 잃을지언정 일부 지역에서의 선거 승리라는 ‘실리’를 조금이라도 챙길 수 있는 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의원은 "보수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을 사안이지만 정정당당하게 돌파하고 그 화살을 새누리당과 청와대로 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의 40%는 야당의 고충을 이해할 것이고, 당 지도부의 결단을 기다리는 3000명의 기초선거 출마 예상자들은 환호할 것"이란 얘기다.

새누리당의 한 핵심 의원도 "야당이 기초선거 정당공천을 하지 않으면 박살난다"며 "욕을 좀 먹더라도 공천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회군, 즉 출구 방식이다. 우상호, 정청래 의원 등은 전(全) 당원투표제와 국민여론으로 결정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여야가 기초선거 정당공천 문제를 협의할 기구를 출범시켜 무공천 문제를 결정하는 것도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법한 출구의 한 방식이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이 문제를 협의하고자 7일 오전 양당 원내대표와 원내수석부대표 간의 4자회동을 가졌으나 한발짝도 진전시키지 못했다.

무공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여당이 물꼬를 열어주는 회동이었던만큼, 4자회동이 성과를 내기 위해선 안철수 대표의 결단이 필요하다.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가 결론을 내리면 출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연결고리로 삼아 두 야당을 합쳐 신당 창당의 횃불을 올렸건만, 그 고리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될 줄이야 안철수 대표는 몰랐을 것이다.

고르디우스 매듭을 끊은 사람은 누구인가. 동방원정에 나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었다. 알렉산더는 아무리 생각해도 매듭을 풀 수 없다고 판단되자, 단칼에 잘라버렸다. 그 후 고르디우스 매듭에 얽힌 전설처럼 '위대한 정복자'가 되었다.

아무리 복잡하고 어렵게 얽혀서 풀기 힘든 문제가 있더라도, 그 해답은 어쩌면 생각보다 단순하고 간단하게 풀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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