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상은
가수 이상은(37)의 존재는 우리 가요계에서 참 고맙다. 그는 비슷비슷한 발라드와 댄스뮤직이 홍수를 이루는 가요계에서 몇 안 되는 ''어덜트 컨템포러리(Adult Contemporary)'' 뮤지션으로 팬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주기 때문이다. 이상은은 유행 대신 자신의 음악적 소신을 따르며 독특한 음악 세계를 구축해 왔다.
이상은이 13집 ''더 써드 플레이스(The 3rd Place)''를 내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 앨범은 2006년 4월부터 2007년 7월까지 1년 3개월여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한일공동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그를 아티스트로 다시 태어나게 한 6집 ''공무도하가''의 일본인 프로듀서 이즈미 와다가 그와 4년만에 재회해 음악적 완성도를 높인 앨범이다.
타이틀곡인 ''삶은 여행''은 이상은 특유의 미니멀한 음색과 사색을 부르는 가사가 특징적이다. 여행같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강해져야 한다는 자기 암시가 이상은 자신의 얘기인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듣는 이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나는 나인 나'' ''제3의 공간'' ''좁은 문'' 등 곡도 현실과 이상이 뒤섞인 듯 몽환적이다.
"''유행가스럽지 않은'' 음반이에요. 타깃 연령대도 어리지 않고요. 깔끔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뭔가 일반 가요들과는 다르면서도 친숙한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었죠. 가사에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좋은 시집은 10~20년이 지나도 다시 읽을 수 있잖아요. 언젠 다시 꺼내 들어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가사를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가사 안에 또다른 세계가 있다고 느끼게 만들고 싶었죠."
음반 작업은 일본 오키나와에서 했다. 음반 제목 ''더 써드 플레이스(The 3rd Place)''는 가상의 장소를 지칭한 것이지만 굳이 실존하는 공간을 꼽으라면 오키나와다.
"일본은 ''슬로우 라이프''가 키워드에요. 여유와 재충전 없이 달리는 것은 힘들죠. 문화 역시 고갈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느린 삶의 미학을 가장 잘 보여준 곳이 저에겐 오키나와였어요."
"5년 동안 외로웠지만 좋아해주는 팬들 늘어…더 많은 팬들 호응할 거라 믿어"
처음에는 그의 음악을 난해하게 받아들였던 팬들도 이제 익숙함을 많이 느낀다. 그래서 그런지 반응도 점점 좋아진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한국 음악계에 대해선 아쉬움이 많다.
"그냥 음악적 색깔이 조금 다른 것 뿐인데 좀 외로워요. 이 장르의 음악을 해서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아직까지 나밖에 없는 것 같네요. 그런데 처음 이런 음악을 했을 때보다 지금 상황이 많이 좋아졌으니까, 3~5년이 지나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사실 그에게 새로운 음악 장르를 시도한 지난 5년은 외로움과 인내의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단 한 명이라도 음악을 인정해 주면 더 오기가 생겼다.
"길이 보이는데 안 할 수 없잖아요. 안 하는게 오히려 괴로우니까 한 걸음 한 걸음 여기까지 걸어오게 됐죠. 문화적인 다양성이 보장되는 나라가 선진국이잖아요. 우리나라도 점차 이런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추세라서 위로를 받아요."
얼마 전에는 공연도 했다. 공연 역시 성황리에 끝났다. 감수성이 예민한 20~30대가 주로 그의 팬이다. 데뷔 시절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직까지 팬의 자리에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이상은은 섭섭하지 않다. 지금의 음악이 그에게 훨씬 소중하기 때문이다.
가수 이상은
"문화에도 덤핑이 있어요. 획일화된 상품만 팔다보면 수출길이 막힐 거에요. 내실로 승부해야죠"
이상은은 요즘 새로운 도전을 제안받고 한껏 들떠 있다. 독일에서 그의 음악을 들어본 음악인들이 독일에서의 공연이나 레이블 발매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각 나라에 인디 영화를 수출하듯이 제 음악을 여러 나라에 수출하고 싶어요. 그런데 독일 쪽에서 연락이 와서 너무 기분이 좋네요. 어렸을 때 꿈이 세계 시장 진출이었는데 그 꿈에 다가간 것 같아서 행복합니다."
기획사가 만든 상품같은 ''스타''가 아닌, 음악만으로 인정을 받아 해외에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이상은의 기쁨은 더했다.
"문화 상품에도 덤핑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간 기획사가 찍어낸 스타들만 해외에 팔다보니 슬슬 한류에 싫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잖아요. 이제 기획 스타의 한류 시대가 지났으니까 진정한 문화를 파는 한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 역시 작품을 파는 한류를 이끌고 싶어요. 제 음악은 동양적이면서도 한국적이니까 승산이 있을 것이라 믿어요."
10대 위주의 가벼운 음악들이 주류로 자리잡은 음악적 터전에서도 외롭지만 꿋꿋하게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한 이상은.그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새삼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