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
40년 만에 모국 땅을 밟은 세계적인 작곡가 고(故) 윤이상 선생(1917-1995)의 부인 이수자(80)여사가 11일 오후 삼청동 삼청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지난 67년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으로 한국을 떠난 지 40년만에 모국 방문을 한 이수자 여사는 10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꿈에 그리던 땅을 밟게 돼 감격스럽다. 기쁘고 긍지를 느낀다"고 소감을 밝힌 데 이어 11일에는 " 이 일을 추진하기 위한 노력한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며 "40년간 간직했던 한 푸는 자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여사는 "윤이상 선생은 차이코프스키나 베토벤처럼 인정받지 못하고 조국에서 평생동안 아픔만 당했다"며 "민족의 아들이자 조국의 아들로 임무 다한 사람으로, 조국의 기상이며 자랑이자 긍지를 느낀다"고 덧붙였다.
이 여사는 ''동백림 사건'' 이후 윤이상 선생처럼 베를린 자택과 북한이 제공한 평양 근교의 집을 오가며 살아왔으며, 지난해 4월 ''''금강산 윤이상음악회''''에 참석해 한국 기자단에게''''죽기 전에 고향 땅 가서 남편 한 푸는 게 소원''''이라는 절절한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번 방한은 지난 5월 이재정 통일부장관이 이 여사에게 과거 불행한 사건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고, 선생과 유족들이 겪은 그간의 고초에 대한 위로와 함께 ''''2007 윤이상 페스티벌''''에 다녀가길 요청하는 초청의 편지를 보내 성사됐다.
이 여사는 다음달 3일까지 국내에 머물며 ''2007 윤이상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열리는 윤이상음악상 시상식 등 행사에 참석하고 부산과 윤이상 선생의 고향인 통영 등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수자 여사 일문일답> 이수자>-한국에서의 정착 생각은 없는지.
외국생활 기간 길어 외국 생활에 적응한 것 같다. 외국에 정이 들어 오히려 아직 고국이 낯설다. (한국에) 방문을 많이 해 정 붙여야 할 것 같다.
-한국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남편의 고향 통영을 방문하고 선산에 찾아가 조상들에게 인사드리고 싶다. 고향 방문 일을 협조해준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도 하고, 제주도 여행도 하고 싶다.
-한국 일정 끝나면 어디로 돌아가는가. 일단 평양으로 돌아가 10월20일 열리는 윤이상 음악회와 토론회에 참석할 것이다. 윤이상 음악제는 평양에서 해마다 열리는 행사다.
-남편과 함께 했던 일에 대한 추억.같이 고향에 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과 남편이 소원 성취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해 가슴 아파 이번 방문길에 비행기 안에서 많이 울었다. 고향 방문 꿈만 같고, 남편 생각에 너무 가슴 아프다. 이런 회견도 남편 때문에 하는 것이지 나 때문이지 아니지 않는가. 나는 바깥활동을 하지 않은 주부라 말을 잘 못한다.
-음악제를 매년 평양에서 하는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추진할 계획은.음악은 개인이 아니라 단체가 해야 하는 작업이다. 내가 하고 싶다고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국가에서 이런 행사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추진할 것이다. 이는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우이자 불행한 예술가에 대한 명예회복이다.
-윤이상 선생의 뼈라도 고향에 묻을 생각은.남편은 고향에 묻히길 희망했지만 유해도 돌아올 수 없었다. 단순하게 추진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청와대 방문 때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가능하다면 윤이상 선생 작품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민족의 정기를 널리 알리고 더 나아갈 수 있는 일에 대해 부탁하고 싶다 .
-이수자 여사의 고향 방문에 대해 평양에서의 반응은.북한에는 윤이상관현악단이 23년째 해마다 축제를 열고 있다. 서울에서 공연하길 바라고 있지만 한국에서 윤이상 선생에 대해 정치적인 명예회복도 안됐는데 어떻게 공연할 수 있겠나. 모두들 기뻐하고 대단히 환영하는 분위기다. 충분히 보고 마음을 폴고 돌아오라는 말을 전해들었다.
-정치적.음악적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남편의 작품은 150곡에 달한다. 정신 철학이 담긴 고도의 예술작품을 가꿔 민족 정기의 꽃을 피워야 할 것이다. 우리민족의 문화유산으로 남겨 불행한 예술가에 대한 명예회복과 영광을 찾아야 할 것이다.
-11월 국내에서 열리는 윤이상 선생 추모제에 참석할 것인지.참석하고 싶은데 평양에서 열리는 윤이상음악제 참석으로 함께하지 못해 애석하게 생각한다.
-윤이상 작품 중 김일성 주석에게 헌정된 작품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나의 땅, 나의 민족''''이라는 음악은 (남편이) 죽고 살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할 때 쓴 작품이다. 서울에서 연주 못하는 상황이어서 평양에서 연주했고, 그 당시 김일성 주석이 와서 본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내가 남편이 아닌 이상 확실하게 아는 건 없다.
※ 이수자 여사 방문 추진 경위
○ 1967년 ''''동백림사건'''' 이후 윤이상 선생의 한국방문은 여러 차례 시도되었지만 돌아오지 못하고 1995년 11월 3일 독일 베를린에서 영면함.
○ 1998년 3월 ''윤이상명예회복 및 유족귀환 추진위원회''(공동대표 황병기이화여대 교수, 법타스님) 발족함.
○ 1999년 5월 윤이상명예회복추진위 및 국제윤이상협회 공동 명의로 김대중 대통령께 청원서 올림.
○ 2004년 12월 윤이상 명예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황석영, 원택스님) 재발족함.
○ 2005년 3월 18일 윤이상평화재단(박재규 이사장, 현정은, 원택, 이강일 부이사장 등)이 설립됨.
○ 2006년 1월 26일 국정원과거사진실위원회는 ''''동백림사건''''은 당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간첩단''''으로 확대 포장한 것으로 발표하며 ''''정부는 관련자들에게 포괄적으로 사과해야 함''''이라고 의견을 제시함.
○ 2006년 4월 25일 윤이상평화재단은 <고 윤이상 선생명예회복 청원서>를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에 제출함.
○ 2006년 7월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명의의 공문 회신을 통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로 이첩시켰음을 통보받음.
○ 2006년 8월 윤이상 부인 이수자 여사(독일 거주), 노무현 대통령께 청원서 편지로 남편의 명예회복 조치 및 기념사업, 귀국 도움을 요청함.
○ 2007년 5월 ''윤이상 탄생 90주년''을 맞이하여 평양 윤이상관현악단의 방한공연을 추진하면서 관현악단과 함께 이수자 여사를 초청하는 통일부장관 등 많은 분들의 노력에 의해 40년만의 고국방문이 이루어지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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