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17일 부산 남구 A초등학교 운동장. 방학이지만 뛰어노는 학생을 찾을 수 없다. 축구골대나 철봉 등 학생들이 사용할 만한 체육시설도 안보였다.
이 학교는 지난 학기 축구 금지령을 내렸고, 축구공을 들고 등교하는 학생들도 단속했다.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는 게 학교 측의 설명이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축구골대가 사라지고 있다. 텅 빈 운동장은 학생들의 체육활동을 등한시하는 초등교육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부산지역 초등학생 1인당 운동장 면적이 7.1㎡로 전국 최하위권인데다 구·군별로 13배나 차이가 나는 등 뛰어놀 공간이 부족한 것보다 훨씬 큰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7일 본지가 부산 293개 초등학교 중 61곳을 표본조사한 결과, 33곳(54%)의 운동장에 축구골대가 없었다. 농구골대가 없는 학교도 26군데(43%)나 됐고, 철봉이 없는 곳도 많았다.
이 같은 현상은 신설 학교일수록 심해 2000년 이후 개교한 13개 학교 중 9곳(69%)이 축구골대를 설치하지 않았다. 또 1980년대 이전 개교한 학교 가운데 상당수도 유지·보수비용을 이유로 축구골대를 철거한 사실이 확인됐다.
초등학교들이 축구골대를 없앤 명목상 이유는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방과 후 체육활동 교사들은 "진짜 이유는 학습능률 저하에 대한 지나친 걱정 때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북구 B초등학교 교장은 "우리는 영어 시범학교이기 때문에 축구한다고 학생들이 빠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축구 붐이 일어날까봐 겁난다"며 방과 후 체육활동을 꺼리는 학교도 있다.
제7차 교육과정의 ''초등학교 체육장(운동장) 설비 기준''은 축구장과 농구장을 골대 등의 시설을 포함해 의무적으로 갖추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준은 일선 초등학교에서는 무시되고 있다.
이는 교육부가 초·중·고교 스포츠클럽 활성화를 위해 5년간 1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부산시교육청이 건강바우처제도 운영은 물론 방과후 체육활동을 강화하는 등 교육당국의 방침에도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부산시교육청 관계자는 "갈수록 초등학생들의 비만이나 척추측만증 등 체력 문제가 부각되고 있는데도 일선 초등학교에서는 교육부나 교육청의 지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털어놨다.
초등학교에 축구골대가 줄어드는 데는 중·고교와 달리 사실상 전담교사가 없는 것도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초등학교 체육시간이면 일부 학생들만 간단한 피구나 스트레칭을 하고, 나머지는 그늘에 앉아 쉬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부산교육대 모 교수는 "초등학생에게는 대근육 운동 등 땀을 많이 흘리는 활동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사회성도 길러진다"며 "교육대의 체육교육 역시 전공자가 따로 없고 수업도 1~3학기에 그치는 등 문제점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