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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카페]

서울의 성북동은 숨은 매력이 있는 동네다. 1930년대 문화의 향기가 많이 남아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조선총독부가 보기 싫어서 북향으로 집을 짓고 만년을 살았다는 심우장의 마루에 앉으면 마음의 시계가 70년 전으로 돌아간다.

심우장 올라가는 달동네 골목길도 나름대로 정취가 있다. 심우장 맞은편에는 소설가 이태준이 살았던 수연산방이 있다. 차를 한 잔 마시며 집주인이 수필집 ''무서록''에서 자주 언급한 집과 정원을 찬찬히 둘러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어서''를 쓴 혜곡 최순우 선생이 살던 한옥도 한국내셔날트러스트가 구입하여 잘 보존해 놓았다. 마포에서 새우젓 장사로 큰돈을 벌었던 이재준의 별장한옥은 이웃 교회가 사들여 깔끔하게 가꾸어 놓았다.

이 한옥들은 모두 서울이 4대문 밖으로 팽창하던 1930년대에 지어졌다.

이런 명소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괜찮은 음식점들도 여럿 들어섰다. 마음에 드는 맛집을 찾아 점심을 먹고 한때 의친왕 이강공과 아들 이건씨가 살았던 성락원을 둘러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다음으로 우리 문화재의 보물창고인 간송미술관은 전시회가 있을 때만 공개하는 것이 좀 아쉽다. 간송은 우리 문화재 수집가였던 전형필 선생의 아호인데 일제시대에 간송을 좌장으로 민족미술애호가 모임에는 최순우가 늘 참석했었다고 전해진다.

성북동에는 근원 김용준과 수화 김환기가 살았던 노시산방(老枾山房)도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노시산방이란 옥호는 이태준이 지어준 것이다.

근원은 일제 말기에 생활이 곤궁해지자 이 집을 수화에게 팔고 의정부 쪽으로 이사를 갔다. 수화는 이 집의 옥호를 수향산방(樹鄕山房)이라고 바꾸었다. 자신의 호 수화와 부인의 호 향안의 첫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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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김환기도 이 집을 팔게 되었는데 산 값보다 훨씬 비싸게 판 것을 두고두고 미안하게 생각하여 돈도 쓰라고 주고 아끼던 골동품도 갖다 주기도 했다고 근원이 육장후기란 글에서 밝히고 있다. 아름다운 우정이다.

성북동은 또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린 시인 김광섭의 시 ''성북동 비둘기''의 현장이다. 지금은 시에 나오는 채석장 터에는 주택이 가득 들어서 있다.

성북동 명소들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이 만큼이라도 남아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이 만큼밖에 안 남았나 하는 아쉬움도 느끼게 된다.

신우재(언론인) shinwj@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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