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나는 양파를 좋아하는데 양파가 나를 싫어해(I love onion, but onion doesn''t like me)." 위스콘신주 그린베이출신의 대니얼이라는 미국인 친구는 양파만 먹으면 온 얼굴이 빨개지면서 눈물을 흘린다.
햄버거 같은 음식에 많이 들어가는 생양파를 먹지 못하는 미국인이 있다는 것이 아주 신기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런 대니얼도 비가 많은 위싱턴주산 양파는 먹을 수 있다고 한다. "Onion from Washington state is not that strong and even sweat(거기 양파는 그리 맵지도 않고 달지)"라고 말한다.
즉 태어나면서부터 양파를 입에 대지도 못하는 것은 아니고 양파맛은 좋아하지만 그 특유의 매콤한 향 때문에 먹지 못하는 것뿐이다.
이런 경우 무생물주어는 아주 유용한 역할을 한다. 나는 뭔가를 하고 싶은데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이런 표현을 쓴다.
다른 문장을 보자. "I like a baseball game, but baseball doesn''t like me." 이 문장은 한 야구광이 한 말이다.
야구는 좋아하지만 운동하고는 거리가 멀어 야구를 직접 할 수 없는 경우이다. 나는 하고 싶은데 야구가 나를 못하게 만든다는 것은 핑계 중 아주 좋은 핑계일 것이다.
그런데 주어가 사람이 아닌 사물이 와서 꼭 이처럼 비겁한 핑계만 대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천년고도 경주를 소개하는 표현을 보면 ''So many graves built during Shilla dynasty in Kyungju still keep drawing archeologists'' attentions''이라고 하는데 신라시대에 지어진 고분이 경주에 있어 고고학자들이 주의를 기울인다는 내용이 아니라 무덤 자체가 고고학자들의 주의를 끈다는 식의 말투이다.
전쟁터에서 포위된 군대가 항복을 해 포로가 되면 국제법의 보호를 받는다. "Sur render gives us more chances(항복하면 살 기회가 더 많다)"라고 말하면 된다.
한국인이라면 ''If they surrender''라고 조건문을 붙이겠지만 조건문으로 주어를 만들자.
요즘 간혹 협박장이 날아온다. 흑인들을 두둔한다는 불평이 담긴 편지가 많은데 내게 "Your Korean passport cannot protect you(한국국적이라고 무사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내 여권이 나를 보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Even though you have a Korean passport''라는 한국식 영어문장의 keyword인 목적어 한국여권으로 주어를 삼자.
무생물 주어는 이처럼 부정적으로 쓰이면 핑계를, 긍정문장의 주어가 되면 공치사를 듣는 것이다.
※필자는 영어, 독일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한국 토박이로, ''교과서를 덮으면 외국어가 춤춘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