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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말뚝 교수의 고구려 원정기, 고구려 연구회 서길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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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동북공정은 끝났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침탈은 계속될 것이다"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 ''''태왕사신기''''…. 고구려 역사 인물들이 우리네 안방을 뜨겁게 달구면서 무관심하던 역사에 조금이나마 눈을 뜨게 되었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통해 본 내용을 곧이 곧대로 믿어도 될까?

고구려 연구회의 서길수 교수는 사극이 역사를 꽤 많이 왜곡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대다수 국민이 우리 역사에 무관심하다고 안타까워한다. 중국은 고구려사를 빼앗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이젠 우리도,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고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길수 교수는 사실 경제학자이지만고구려 연구에 있어서는 어느 역사학자 못지않다. 그는 1994년, 연구소를 만들고 호주머니를 털어 고구려 역사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10년 넘는 세월 동안, 중국 각지를 다니며 자료를 모으고, 국제학술대회를 열고, 논문을 발표했다.

중국에서 객사할 뻔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고구려 역사에 대한 책임감을 져버릴 수 없다는 서길수 교수를 CBS 손 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에서 만나보았다.

◇ 드라마 주몽의 15가지 오류 ''''얻은 것은 재미, 잃은 것은 역사''''

고구려1

 

▶ 요즘 드라마에서 갑자기 고구려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을 비롯해서 ''''광개토대왕''''도 나온다고 해요.

=중국의 동북공정이 시작되면서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한국인에게 고구려에 대한 인식을 심어준 것입니다. 고구려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그보다 기쁜 일이 없죠. 아쉬운 것은 담당PD와 작가들이 찾아와서 이야기를 하면 역사와 허구의 한계가 불분명한 거예요.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제가 주몽을 분석한 결과 총 81회가 나갔는데 1회당 작가원고가 100-130매예요. 총 8,000매 이상의 원고인데 책 열권 정도 되는 굉장한 분량입니다. 하지만 역사책에 나오는 주몽의 이야기는 두 세 페이지도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두 세 페이지 많게는 열 페이지 정도는 손을 대지 말라는 겁니다. 나머지 부분은 창작을 하되 나머지 열 페이지는 왜곡은 하지 말자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 열 페이지조차도 왜곡을 하고 있다는 건데, 설명을 좀 부탁할게요.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역사공부를 드라마를 통해서 많이 하거든요. 우선 ''''주몽'''' 드라마에서 15가지 오류를 발견하셨다고 들었어요.

=먼저 주인공 이름인 ''''주몽''''은 ''''추모''''가 맞습니다. 광개토대왕릉비에도 분명히 ''''추모''''로 되어 있어요. 중국은 주변 국가들에 대해 밑으로 내려깎는 아주 못된 버릇이 있어서 사서에 한자로 옮기면서 의도적으로 난쟁이 ''''주''''에 무지몽매 하다는 ''''몽''''을 써서 ''''어리석은 난쟁이''''이라는 뜻의 ''''주몽''''을 사용한 것입니다.

''''해모수''''와 ''''금와''''가 절친한 친구로 나오는데 둘은 절대로 친구사이가 될 수가 없습니다. 삼국사기에는 금와왕의 아버지인 해부루와 해모수는 원수로 나옵니다. 해부루가 자식을 기원하다가 ''''노란 개구리 같이 생긴 아이''''를 양자로 들여 ''''금와''''라고 이름 지었는데 아버지의 원수인 해모수와 친구가 될 수는 없지요. 더 황당한 것은 삼국유사에서는 ''''해모수 아들 해부루, 해부루 아들 금와''''라고 나오는데 할아버지와 친구가 된다는 건 말이 안 되지요. 아무리 꾸며낸 이야기지만 이런 것들은 역사하고 틀려서는 안 되죠.

그리고 ''''추모''''와 ''''소서노''''는 부여에서 만날 수가 없습니다. 역사에서는 추모가 졸본에 와서 나라를 세운 것이 정설인데 소서노와는 건국 후에 만났다는 기록이 아주 작은 글씨로 써 있을 뿐입니다. ''고구려본기''나 ''''백제본기''''를 봐도 소서노·추모·대소가 삼각관계를 이룰 수가 없는 거죠.

드라마에서는 ''''송양''''이 나쁜 사람으로 나오는데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고구려 건국 후에 나라를 합치면서 큰 힘이 되는 인물이 송양이고, 나중에 추모의 아들 ''''유리''''가 왕이 되었을 때 송양의 딸과 결혼을 하기 때문에 추모와 송양은 사돈 간입니다.

또, 오이, 마리, 협보가 나오고 협보를 동성연애자로 만들면서 아주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 협보는 고구려 건국의 일등공신이자 최고의 충신입니다. 그런 협보를 사실과 다르게 표현한 것은 마치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을 전혀 다른 인물로 그린 것과 마찬가지예요. 만약에 넣고 싶었다면 가공의 인물을 설정해서 했었어야죠.

그리고 역사적으로 시대적으로 완전히 뒤집어 버린 것이 많아요. 드라마에서는 고구려 건국 전에 금와가 유화부인을 죽인 것으로 나와 있는데 역사에서는 고구려 건국 후 14년 뒤에 유화부인이 죽었다고 나와 있어요. 장례를 황제부인의 예로 대해서 고구려에서 사신을 보내 답례를 하는 것이 많지 않은 기록에 남아있죠. 이것은 마치 ''''육영수 여사가 5.16 전에 죽었다는 것이나 명성황후가 고종 때가 아닌 철종 때 돌아가셨다.''''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고대사는 맘대로 해도 된다는 작가에 대해서는 경고를 할 필요가 있어요. 극적인 재미를 위해 고구려와 부여를 극한 대립으로 묘사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제가 논문을 내고 조선일보에 아주 재미있는 기사가 났는데 ''''얻은 것은 재미 잃은 것은 역사'''' 이런 제목의 기사였어요. 중고등학생들도 많이 봤는데 ''''현토''''는 ''''현도''''로 읽어야 하는데 만약 시험에 학생들이 ''''현토''''라고 쓰면 틀리게 되는 것이죠. 심각합니다.

▶ 세트나 소품들도 굉장히 지적받을 것이 많을 것 같아요.

=자료가 별로 없지만 추모의 모든 세트들이 500년이나 1,000년 후의 거의 조선시대 것이 많았어요. 네티즌도 지적했듯이 술안주로 나온 호박무침이나 군사들에게 나눠준 감자는 다 조선시대에 들어온 것입니다. 건물도 기록에는 목책을 해서 만들었다고 나오는데 동그란 문이라든가 건물양식들이 700년 뒤나 고려시대 이후의 것들이었어요. 고증은 생각지도 않고 만들었기 때문에 조선왕조의 세트에 갑자기 자동차가 들어선 거나 마찬가지죠. (웃음)

◇ 동북공정은 끝났지만 역사침탈은 끝나지 않았다

▶ 얼마 전에 연개소문에서 당태종이 애꾸가 됐다고 중국에서 난리가 났다고 들었어요. 중국은 지금 굉장히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왜 갑자기 더 심해진 건가요?

=우리에게는 ''''어느 날 갑자기''''라도 중국에게는 갑자기가 아닙니다. 중국은 이미 지난 80년부터 시작해서 25년 동안 용의주도하게 준비했고, 연구했고, 현장에서 활용했었던 부분입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동북공정이라는 한시적인 프로젝트일 뿐입니다.

저는 역사왜곡이라는 말 대신 역사침탈이라고 합니다. 역사왜곡은 일본사람들이 정신대에 끌려간 것을 ''''부모가 팔았다, 돈 벌러 왔다''''고 표현하는 것인데 왔다는 사실은 인정하되 사실을 비튼 것이니까 왜곡이잖아요. 하지만 우리 역사 오천 년 중에서 천 년을 빼놓고 나머지는 다 중국의 역사라고 한 것은 비튼 게 아니라 훔쳐간 겁니다. 이것은 역사침탈이죠. 왜냐하면 중국 사람들은 행위에 맞지 않는 단어를 쓰면 때려봤자 솜방망이나 마찬가지라서 정확하게 표현을 해줘야 합니다.

동북공정은 2002년 2월에 시작해서 2007년 1월에 끝났습니다. 다 끝났는데 지금도 동북공정, 동북공정하고 있어요. 하지만 동북공정은 끝났어도 역사침탈은 계속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반드시 중국의 역사침탈로 바꿔주셔야 합니다. 중국으로서는 이 문제가 상당히 심각합니다. 생존의 문제예요.

▶ 왜 그렇지요?

=중국은 소수민족이고 55개의 민족인데 소수민족이 8.41%인 2억 4백만이에요. 15억에서 2억 4백만은 많은 것이 아니지만 이 소수민족이 차지하는 땅은 중국 국토의 60%나 되요. 소수민족을 끌어안지 않고 만약 러시아처럼 분열이 되면 중국은 존재가 불가능해 지는 거죠. 이제는 사회주의가 아닌 다민족통일국가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서 80년부터 용의주도하게 연구해서 어느 나라에도 없는 ''''국경이론''''과 ''''민족이론''''을 만든 거예요.

그중에 하나로 고구려가 들어가 있는 것이지 갑자기 한국 사람들이 백두산 가서 고구려는 우리 땅이라고 주장해서 만든 게 아닙니다. 엄청난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중에 5년간 돈을 주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역사침탈 중에 그야말로 한시적인 프로젝트예요. 그런데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한국에서 중국이 상상 못할 정도로 거세게 저항했어요. 그래서 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중국으로서는 경제도 발전시켜야 하고 올림픽도 해야 해서 외교부에서 두 번이나 이례적으로 왔었고 2004년부터 동북공정은 사실상 수그러들었어요.

우리나라 외교부도 마찬가지일 텐데 역사침탈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2004년부터 인구 1억의 길림성, 요령성, 흑룡강 성에서 동북공정보다 이삼십 배 더 되는 연구를 해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동북공정이라는 껍데기에 매달리고 있을 때 엄청난 진행을 시키고 있었던 거예요. 지금은 문제를 삼아도 이미 진행된 것을 가지고 문제를 삼기 때문에 역사침탈의 전반적인 상황을 보고 이야기해야 하는 때입니다.
고구려2

 


▶ 중국에 많이 가시는데 가시면 주로 어떤 일을 하세요?

=86년에 국제기구임원으로 처음 가보고 90년부터 가서 보니 고구려의 문화가 대단해요. 제가 원래 민족운동을 하면서 일본에서 밖아 놓은 쇠말뚝을 뽑으러 10년간 다녔어요. 그래서 제 별명이 ''''쇠말뚝 교수''''로 유명했었는데 이것은 일본사람들이 우리에게 심어놓은 열등감을 뽑자는 것이었어요.

사례를 모아서 ''''풍수침략사연구''''라는 논문을 썼는데 130군데 정도를 찾고 상징적으로 뽑았어요. 열등의식 중에 제일 큰 게 식민지 사관과 사대주의 사상이에요. 우리가 세계로 나가는데 있어 제일 방해가 되는 것이 열등의식이죠. 열등의식을 가진 사람은 당당하지 못하고 정정당당하면 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뒤통수치는 비겁함이 있어요. 그것은 국가도 마찬가지예요. 국가나 개인이나 당당하지 못하면 비겁하게 되는 것이죠.

어떻게 하면 열등의식을 버릴 수 있겠는가를 생각했을 때 일본을 가슴에서 뽑는 것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가 사대주의인데, 우리는 ''''사이즈 콤플렉스''''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작다는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사상이 굉장히 깊게 남아있어요.

그런데 중국에 가서 보니까 고구려의 사이즈가 엄청나게 큰 거예요. 우선 광개토대왕릉비만 봐도 6미터 39센티예요. 세계에서 비석이 제일 많은 게 중국인데 그중에서 제일 큰 것이 광개토대왕릉비입니다. 이거면 열등의식을 한 번에 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앞으로 학문의 마지막 부분을 이것을 위해 바치겠다 결심하고 90년부터 17년째 유적을 찾아다니기 시작한 겁니다. 지금까지 산성만 130개 이상을 찾았어요. 적어도 130개 이상의 산을 오른 거죠.

◇ 쇠말뚝 교수의 고구려 원정기

▶ 어디까지 뻗어 있어요?

=흑룡강 성 있는 데까지 하고, 요령성 서쪽 ''''요하''''있는데 까지 고구려성이 있는 곳은 다 고구려 땅이죠.

▶ 그때는 광개토대왕비를 마음대로 볼 수 있었어요?

=광개토대왕비가 1927년에 2층으로 집을 지었다가 1983년에 단층으로 크게 지으면서 비만 막았는데 2003년에 방탄유리로 바꿨어요. 막는 에피소드가 굉장히 재미있어요. 최고로 높은 사람이 와서 ''''이 광개토대왕비는 고구려가 중국의 역사라는 흔들릴 수 없는 증거다 그런데 잘못하면 유랑민족들이 폭파를 시킬 수도 있다 그러니 잘 막아라.'''' 그때부터 5명의 군인이 총 들고 5마리의 개와 함께 지켰어요.

방탄유리를 하면 온도가 2도 올라가서 안 좋다고 하기에 도대체 유랑민족이 어떤 민족인지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어이없게도 조선민족이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그것이 중국의 역사냐고 물어봤더니 더 어처구니없는 답이 나왔어요. 한문으로 쓰여 있지 않느냐는 거예요. 그럼 ''''영어로 된 것은 다 영국 것...'''' 그것이 그 사람들의 역사의식이에요.

그런데 광개토대왕릉비에 절대 고구려가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는 증거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읽어보지도 않고 그렇게 나오는 거예요. 중국은 늘 그런 식으로 나오지만 25년 동안 자기네 역사를 갑자기 만들었기 때문에 빈틈이 굉장히 많아요.

▶ 그것을 우리가 지적을 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어떤 것이 있습니까?

=거기에 보면 추모왕이 나옵니다. 414년에 추모왕이 기틀을 마련했는데 북부여에서 나왔고 ''''천재지자''''라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써있어요. 그럼 어떻게 지방정권이 감히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쓸 수 있어요.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이것이 중국의 지방정권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죠.

▶ 그러면 중국 사람이 주장하는 것은 고구려 사람이 중국 사람이라는 거예요?

=세 가지입니다. 첫째 고구려는 중국 땅에 세워졌다. 둘째 고구려는 지금 우리나라 전라도나 경상도처럼 지방정권이다. 왜냐하면 벼슬을 내렸고 조공을 바쳤다고요. 셋째 고구려가 멸망하고 나서 거기서 사는 고구려 사람은 다 중국 사람이 되었다. 아주 그럴듯합니다. 책도 두 권이 있는데 잘못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믿습니다. 어떤 것이 틀렸는지 앞에 써주지 않으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속기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세 가지에 대한 반박논리를 거의 다 세워놨어요.

▶ 정말 심각하네요.

=예를 들어서 중국에 고구려가 많이 남아 있다가 아니라 진짜 고구려가 다 중국역사면 우리가 주몽이나 연개소문 드라마를 즐기고 있다는 것은 웃기고 있는 것이고 평양에 연개소문이나 을지문덕이 중국인물이 되어버리기 것이기 때문에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 중국에서 보면 우리 고구려 연구회의 서 교수님 같은 분은 굉장히 요주의 인물일 것 같아요. 드나드실 때 불편한 점은 없으셨어요?

=저는 아주 안전하죠. 보디가드들이 따라붙습니다. 제가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유명하지 않아도 중국에서는 VIP는 아니지만 늘 공안에서 체크하고 까만 지프차가 따라다녀요.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잡아넣을 수는 없고 겁을 주는 것이죠. 식당에 들어가면 인도에 차를 세워놓고 기다려서 저를 운전해주는 운전사가 겁나서 운전을 못 하겠대요. 제가 국가의 돈을 받아서 활동하는 줄 알고 스파이 정도로 오해를 한 거예요.

그러다 고구려연구재단이 생기면서 오해가 풀렸지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왕따를 많이 당했어요. 연구를 많이 해 놓았는데 역사연구단체에서 연구를 따려고 연구된 것이 없다고 해서 저만 부각되고 자기들이 자리를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요. 다 합쳐도 모자란 판에요.동북공정은 고구려뿐만이 아니라 고조선부터 간도까지 다 했기 때문에 사실은 고구려연구재단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 우리도 중국사 해체 프로젝트를

고구려3

 

▶ 정말 중국은 조직적이고 일사불란하게 준비를 해 왔는데 우리는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우선 정부에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야 해요. 제가 국회에서 핵폭탄보다 더 중요하다고 강의를 했어요. 이 문제는 계속되고 더 심하게 갈 것이기 때문에 학술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중국의 사회과학원이나 대만의 중앙연구원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국경문제라는 것이 없었어요. 38선만 있었죠. 어느 날 독도 문제가 생기니까 일본과 국경문제가 생기고, 동북공정이 생기니까 백두산이 중요하고 두만강과 압록강이 생각났죠. 이어도 문제가 생기니까 중국과 국경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전문가도 없고 연구되어 있는 것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을 국가에서 만들어야 하고 국사 교과서를 폐지했는데 이것 또한 살려야 합니다.

학자들도 심각한 것이 사대주의사상이라든가 식민지 사관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옛날 고조선이 왜 우리 것이며 어디까지인지 그 이론을 개발해야 해요. 중국은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가 BC2070 년에 세웠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경제개발 9차 5개년계획'''' 5년 동안에 200명을 동원해서 했어요.

▶ ''''중국은 한국사 해체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도 중국사를 해체해서 대응하자''''는 말씀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중국사는 굉장히 해체할 것이 많습니다. 우리는 일목요연하게 들어왔지만 중국은 지금 다민족통일국가를 하지 않으면 존재가 불가능해요. 우선 한족이라고 하는데 한족이 한나라 때부터 시작됐잖아요. 그러면 그 이전에 하․은․주나라인데 하나라와 은나라는 다른 민족이었어요. 그리고 5호 16국, 선비족인 북위를 비롯해 오나라는 오랑캐, 요나라는 거란족, 금나라는 여진족, 원나라는 몽골족이죠. 중국은 칭기즈 칸도 중국인이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우리가 동아시아역사를 진실 되게 다시 쓸 때 중국의 역사는 해체하게 되는 것입니다.

▶ 연구비도 잘 안 나올 것 같은데 계속 다니셔야 하고 자료조사와 논문도 쓰셔야 하는데 금전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세요?

=제가 경제학 박사잖아요. (웃음) 월급은 손을 안 대고 외부 강의료는 연구비에 다 씁니다. 80개국을 다니면서 민박으로 다 해결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경비가 훨씬 덜 들어요. 또, IMF 이후로는 직원 쓸 경비가 없어서 학교 교사인 집사람이 나와서 연구소 일을 도와주고 있어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전적으로 도와주면서 힘이 되고 있지요.

▶ 최근에는 어디를 다녀오셨어요?

=낙양을 다녀왔어요. 아직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남생의 묘를 발견했고, 중원문화가 고구려 문화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중국에 다른 문화라는 것을 증명하러 다녀왔어요. 제가 산성을 130개 다녔는데 청동기요새나 그런 것들이 우리나라로 해서 일본까지 연결이 되어 갔지만 중국으로는 나가지 않았어요. 중원은 전부 흙으로 쌓아있고 고구려는 전부 돌로 쌓았어요. 문화가 완전히 달라서 영향을 받을 수가 없었던 거죠. 우리는 산에 짓지만 중국은 들판에 한번 짓고 끝났거든요. 완전히 문화가 다른 거예요.

물론,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 완전히 없지는 않겠지만 중국도 연꽃무늬 같은 것은 페르시아에서 왔어요. 우리나라의 모든 것이 자기 나라에서 왔다고 하는데 그런 문화적인 차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낙양을 다녀왔습니다.

▶ 어디를 가실 예정이세요?

=조심스러워서 말하기가 좀 그런데 중국도 가지만 몽골 알타이도 다니면서 초원의 길을 연구 발굴하고 있어요. 중국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적극적으로 우리 문화의 근원을 밝히자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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