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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규의 영어와 맞짱뜨기]명예훼손과 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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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미국사람들이 나보고 영어 잘 한다는데 뭐가 불만이야?" 잘 아는 한국인이 영어로 말할 때 실수하는 부분을 꼬집자 불만을 터뜨린다.

이 사람에게 "미국사람이 당신한테 뭐라고 하면서 영어 잘 한다고 하는데?"라고 묻자 "You speak English quite well"이라고 응수한다.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이 사람이 말한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당신 영어 꽤 하는군"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이 부분에서 한국인들이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간 받은 입시교육의 단점이 드러나는데 우리는 ''very''와 ''quite''가 같은 뜻이라고 배웠지만 사실 ''quite''에는 이제 아장아장 걷는 아기에게 "잘한다"라고 격려하는, 약간은 남을 아래로 쳐다보는 뉘앙스가 감춰져 있다.

사실 우리말에도 이와 같이 작은 차이지만 그 말을 내뱉는 순간 감당할 책임이나 무게가 다른 것은 얼마든지 있다.

영어로 번역하기 까다로운 말 가운데 하나가 ''명예훼손''과 ''비방''이다.

명예훼손은 다른 사람에 대해 사실도 아닌 소문이나 거짓증언을 유포해 다른 사람의 명예에 치명타를 입힌 것이고 비방은 사실 있었던 일이기는 하지만 이를 함부로 소문내 상대방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리는 행위이다.

우리말로는 이처럼 분명하게 구분돼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비방이라는 말보다는 좀 법정용어처럼 들리는 명예훼손을 더 잘 기억하는 모양이다.

경찰서에서 싸울 때 "당신 명예훼손으로 고소할거야"라는 고성이 오가니 말이다.

이 두 단어는 영어로는 모두 ''defamation''이다. 소문낸 내용이 사실인지 거짓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이런 소문에 희생된 사람의 인권이 중요하다는 논리인데 우리나라 실정에는 조금 문제가 많은 해석인 것 같다.

또 ''defamation''과 함께 위증(perjury)이라는 말을 다 써야 영어권사람들은 이해를 한다.

때에 따라서는 변호사 천국인 미국인들도 한국인을 ''quite''를 써 놀릴 것이 아니라 ''명예훼손''과 ''비방''을 써 간단히 말하는 한국인의 언어습관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영어, 독일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한국 토박이로, ''교과서를 덮으면 외국어가 춤춘다''의저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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