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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규의 싱싱영어] 최상급만 알면 ''사랑 고백'' 낭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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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아름다운 아가씨인 폴란드를 짝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자유노조 지도자로 일할 당시 아냐도 날 사랑하고 타냐도 나를 그리워하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가정이 있다 보니 이들의 사랑을 외면했다.

하지만 그때 아가씨들이 나에게 적극적으로 구애를 했으면 어쩌면 사랑에 빠졌을지 모른다. 이제 독일도 폴란드를 짝사랑만 하지 말고 당당히 고백하기 바란다. 우리는 기다린다. 독일의 청혼을 말이다''''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총리가 독일을 국빈 방문했을 당시 독일 연방하원에서 한 연설 가운데 하나이다. 자유노조 출신으로 주로 즉흥연설을 즐기고 노동자들이 좋아할 알아듣기 쉬운 비유법을 잘 사용한 바웬사이지만 남의 나라 국회에서 행한 연설치고는 너무 노골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누군가를 사랑해서 ''''난 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라고만 말해도 고백이 먹혀든다고 여기는 분이 있다면 나는 단연코 연애경험이 전무하신 분이라고 충고하고 싶다. ''''세상에서 너를 제일 사랑한다는데 뭐가 더 필요해?''''라며 불평하시는 분이 있다면 한번 상대방의 입장이 돼 보자.

단지 ''''너를 사랑해''''라고 한다면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 배운 최상급 표현을 쓰면 그만이지만 사랑을 고백받는 사람이라면 보다 구체적인 말을 기대한다.

여러분이 사랑의 고수라면 ''''널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해'''' 정도는 말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식으로 비교급은 상대와 나를 비교할 때, 최상급으로 good-better-best, much-more-most 만을 안다면 사랑고백은 물건너 간다. 적어도 비교급으로 최상급을 만들 수 있어야 하고 평서문으로도 최상급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남자의 사랑을 갈구하는 여자, 여자의 사랑을 원하는 남자라면 적어도 자기를 사랑한다는 이 사람이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리지 않는지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사랑은 사람의 시야를 좁게 만드는 열병이고 질투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무턱대고 비교대상으로 삼으면 오히려 오해를 살 수 있다.

만일 이런 상대에게 ''''I love you more than I can say''''라고 말하면 더 이상 비교급이 아니라 최상급이다. 나 자신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한다는 것이니 최고로 세련된 말이 아닐까?

비교급에 부정문을 붙여 ''''I never ask for more than your love(세상에 갈구하는 것은 너의 사랑보다 더 한 것이 없어)''''라고 말하면 진짜 사랑하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가?

비교급은 둘을 두고 어느 것이 낫다는 의미가 아니라 너의 사랑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비교급의 비교대상은 부정적인 말이 오게 나름이다. 또, 최상급을 쓰더라도 웬만한 최상급으로는 오히려 싸구려 사랑을 갈구하는 천한 남자같은 느낌을 준다.

적어도 ''''You mean everything to me(너는 나의 모든 것)''''이라고 말해줘야 상대가 흡족해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표현에 약한 다른 이유는 바로 이런 비교급 최상급의 관계를 단지 너무 수평선상에서만 보고 기계식으로 외우기 때문인데, 시간개념을 잘 활용하면 도움이 된다.

시간은 단지 시간이 흘러 몇시를 가리키는지가 아니라 일의 순서도 정한다. 가장 먼저 할 일, 가장 나중에 할 일, 가장 먼저 일어난 일, 가장 늦게 벌어진 일 등 순서를 정하는데 이 순서를 정하는 개념을 도입해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서양언어다.

''''This is the last thing your father would do''''라고 하면 ''''너희 아버지가 했을 가장 나중의 일''''이라고 하면 잘못 된 표현이다.

최악의 사태에 할 일이라면 웬만하면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니 ''''너희 아버지라면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이것을 ''''Your father would never do it''''이라면 정말 어색하다.

한국사람들은 시간개념을 물질의 질이나 상태를 묘사하는데 아직 익숙하지 않다. 최신영화라는 표현을 우리말이나 기타 다른 나라 말에서는 ''''new''''를 강조해 ''''the newest film''''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영어는 ''''the latest film''''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영화라기 보다는 가장 늦게 개봉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극장가에서 등장하는 영화 가운데는 옛날에 만들어졌지만 국내 팬들에게 소개가 되지 않은 영화라면 최신작이다.

이 ''''the latest''''라는 말도 사실은 비교급이지 최상급은 아니다. 앞서 만들어진 영화가 있어야 ''''the latest''''라는 말이 나오지 앞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영화라면 ''''the first''''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누군가에게 나는 너를 언제든 도와줄 최고의 친구라고 할 때도 ''''the best friend''''라고 하는 것보다는 ''''I am the first man who will help you if you are in trouble''''이라면 얼마나 멋진 문장이 되나? ''''네가 곤경에 처해있으면 제일 먼저 달려와 도와 줄 사람은 나''''라는 말이다.

※ 이서규 통신원은 영어, 독일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한국 토박이로, <교과서를 덮으면 외국어가 춤춘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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