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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스앤뉴스'' 박태견 대표 "삼성과 현대의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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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스앤뉴스''의 박태견 대표는 9개의 일간지와 시사지,라디오를 다니며 창간 때부터 맹활약을 해온 우리 시대의 언론인이다. 그가 말하는 우리나라 재벌과 언론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그가 언론인이 된 이유까지... CBS 라디오 ''공지영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에서 박태견 대표의 특별한 인생행로를 들어본다.

*********************** 이하 방송 내용 ***********************

▶ 진행 : 공지영 (CBS 아주 특별한 인터뷰)
▶ 출연 : ''뷰스앤뉴스'' 박태견 대표


- 학교 다닐 땐 뭘 잘 하셨나요?

평범했던 것 같아요. 책을 많이 봤구요. 특히 중학교 때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본 게 기억나네요. 저희 때는 과외가 없어서 수업 끝나면 독서실에서 공부를 했는데요. 그 때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한두 권 보다가 확 빠져들었어요.

- 모범생과 문제아 중 어느쪽에 가까우셨나요?

모범생 쪽에 가까웠죠.

- 문제아에 대해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계시다던데요?

모범생들은 사회에 나와서도 평범하게 사는 반면 문제아들은 나름대로 자기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 것 같아요. 남을 돕는 일에 있어서도 예전의 순수함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고요. 그리고 사회에는 표준화된 모범생들이 많아서 표준적인 업무 처리 능력은 많은데요. 이제는 어떤 분야든 그렇게 표준적인 업무 처리 가지고는 되질 않거든요. 기업이나 제품도 그렇고, 언론사도 마찬가지죠. 남들과 똑같이 쓰는 기사보다는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는 기사, 남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을 확 끄집어내는 능력이 필요하죠. 그런 면에서 본다면 21세기에는 오히려 문제아 취급을 받던 친구들이 더욱 필요한 인간형인 것 같습니다.

- 그렇지만 문제아라고 해도 기본은 되어있는 상태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죠. 아예 처음부터 어긋나있는 걸 말하는 건 아니죠. 문제아란 나름대로 집중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남들 하는 데로 겉멋 들어 다니는 친구들은 문제아가 아니에요. 한 부분에 너무 집착하고, 쉽게 말해 ''넌 지금 공부해야 할 때인데 왜 그런 데 관심이 많느냐, 남들처럼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생활해라'' 이런 것을 거부하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그 친구들이 소비적인 데에만 빠진다면 도태되는 인간형이 되는 거죠. 경쟁을 피하고 도망다니고. 진짜 문제아는 어떤 한 분야에 굉장히 몰두하는 인간형이에요.

- ''문제적 인간''이라는 쪽인가요?

그렇죠. 그게 맞는 개념인 것 같아요. 제가 최근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어요. 지금 수익률이 굉장히 높은 성공한 두 명의 펀드매니저가 있어요. 그 분들이 투자한 기업이 100군데 정도 되는데, 이 분들은 절대로 남이 쓴 보고서를 바탕으로 투자 기준을 잡지 않는대요. 상장된 기업 중 500군데를 몇 년에 걸쳐서 자기들이 직접 방문했대요. 직접 공장에 가서 사장과 종업원들을 만나고, 공장 주변 사람들에게 평도 들어보고. 이렇게 발로 뛰어 발굴해서 100군데 투자를 했는데, 투자해놓고 나중에 자료 정리를 하면서 자기들도 깜짝 놀랐다고 하더라구요. 100군데 중 70군데의 CEO들이 대졸자가 아니라 중졸 내지는 고졸이었다는 거에요. 이 분들이 일을 할 때 집중력이 강하고, 끼도 있고, 추진력도 크고. 단지 대학을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학연이나 네트워크에 약하다는 거죠. 하지만 이젠 이미 돈은 넘쳐나는 시대잖아요. 금융산업이 발전하면서 사람에게 투자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런 돈과 네트워크만 잘 연결해주면 그 사람들은 굉장히 빨리 성공한다는 거죠. 소위 문제아들의 시대가 분명 오는 것 같아요. 단지 여태까지는 네트워킹이 잘 안 됐던 것 같아요. 네트워크만 제대로 이어진다면 기존의 교육방식이나 가치관에도 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 본인도 문제적 인간이라고 생각하세요?

대학 때부터 시대적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1978년에 입학해서 데모하다가 제적이 됐어요. 82년 전두환 정권 때 제가 집회및시위에관한법 위반 1호였어요. 그래서 몇 달 복역하고 나오니까 사회가 엄격한 분위기였어요. 쉽게 말해 취직하더라도 그 회사 사장이 ''저 친구가 사고를 치면 내가 연대책임을 지겠다''는 각서를 써야만 취직이 될 정도였어요. 그래서 취직도 어려웠는데, 시인 신경림 선생의 추천으로 한 출판사에 들어가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물론 거기서도 사장이 각서를 썼죠. 그 출판사에는 동아투위 때 짤린 선배들이 몇 분 계셨어요. 박종만 선생이나 이종욱 선생 등. 특히 박종만 선생의 경우는 동아투위 때 두 번 옥고를 치룰 정도로 헌신적인 분인데요. 그런 분들과 생활하면서 언론이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죠.

- 그 이후의 행보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80년대 초에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선배를 따라서 월간 마당에 가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87년에 일일신문이 창간해서 거기서 1년 정도 일했고, 그 후 국민일보가 창간할 때 멤버들이 갔었고, 87년 민주화 시대가 되면서 함세웅 신부 같은 분들이 평화방송을 만들어보자고 해서 그쪽으로 갔죠. 그 때 해직 기자들이 제일 많이 모였던 것 같아요. 근데 90년대 3당 합당이 이뤄지면서 우리 사회가 급속히 보수화로 돌아갔어요. 그래서 새로운 경영진과 충돌이 생겨서 전쟁을 한바탕 치르고 집단 해고됐어요. 그 후 문화일보를 창간했고, 거기서 10년 있었어요. 그후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을 창간했고, 5년 후에 뷰스앤뉴스를 만들었죠. 매체는 티비만 빼고 골고루 다 해봤죠. 그러면서 무엇이 잘못되면 어떻게 왜곡되고 망하는가도 많이 봤어요. 언론이란 게 처음 약속한 대로만 나가면 성공할 텐데, 일정시간이 지나면 언론이 스스로 권력이 되어가는 버릇이 있어요. 인지도가 높아지고 주변에 영향력을 행사하다보면 자기가 스스로 권력화 되는 거에요. 언론은 가능하면 어려운 분들을 대변해줘야 하거든요. 힘있고 잘 사는 분들은 꼭 언론이 대변해주지 않아도 여러 가지 시스템이 있어요. 근데 그걸 대부분 까먹어요. 점점 언론에 힘이 생길수록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과 네트워크가 발전하게 되거든요. 그러다보면 언론이 해야 할 기본 목적을 점점 상실하고, 스스로 권력이라고 착각하고, 자기와 친한 권력을 감싸려고 들죠. 그래서 많은 언론들은 우리 사회에서 ''저 언론은 무슨 편이다, 어떤 정파다''라는 정파성 시비에서 못 벗어나는 것 같아요.

- 언론이 권력화되면서 나타나는 에피소드 같은 것 있나요?

창간 초기엔 사장과 직원들이 거의 24시간 같이 지내죠. 큰 신문사 중 어떤 곳은 사장의 어머니께서 고사 때마다 떡도 쪄오고, 돼지도 삶아오곤 했는데, 어느 시점이 지나면서부터 그런 건 사라지고 사장 근처에 여러 형태의 벽이 쌓이죠. 극한 경우엔 신문사 사장과 간부들이 도시락을 시켜서 회의를 할 때 회장이 초밥을 하나 먹으면 다들 먹지만 사장이 젓가락을 놓으면 아무도 젓가락을 들지 못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정도로까지 스스로 분위기 속에서 통제가 되는 거에요. 그런 상황 속에서 언론인들이 ''황제골프, 황제테니스 치지 마라, 황제경영 하지 마라''는 건 자기모순적 상황에 빠지는 거죠. 자기들은 그렇게 황제 생활에 종속되어 있으면서. 이런 문화가 만들어지는 데 대한 가장 큰 책임은 조직 상층부에 있다고 봐요.

요즘 재벌경영이 많은 문제가 되는데요. 모 총수가 임원들과 골프를 치다가 한 임원이 홀인원을 치자 그 다음날 그 임원을 해고했대요.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하고 있고, 그런 피해자들이 투서를 많이 집어넣고 있어요. 한국이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지만, 내부 시스템은 사회에 걸맞지 않는 것 같아요. 재벌총수가 구속되는 등 지금 우리 사회가 많은 진통을 겪고 있는데요. 반드시 한번 겪어야 하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황제적 분위기는 강합니다. 모 그룹의 경우 회장 주재 회의를 할 때는 절대 회장과 눈을 맞춰서는 안 된다고 사전에 통제합니다. 보고를 할 때도 회장과 눈을 맞추는 건 결례이므로 가능하면 눈을 아래로 하라는 게 아직까지도 회의 전에 통제되고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그런 게 한국 사회의 원동력이었을 수도 있어요. 그런 신화적 분위기가 한국 사회의 단계를 성장시키는 큰 원동력이 될 수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 정도의 규모에서 본다면 그런 것이 한국 경제를 더이상 발전하지 못 하게 하는 치명적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죠.

- 원래 국문과을 전공하셨죠?

그 땐 국문과 나와봤자 직장 얻는 데 도움도 안 되고, 고생할 거라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하지만 학문으로서의 국문학이라기보다는 당시 유신상황과 많이 맞물렸던 것 같아요. 글이 다 묶여있는 시대였기 때문에 당시엔 소설 등을 통해서만.

- 유일한 저항 수단이었죠.

그런 측면이 강했죠. 그런 게 과를 선택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당시엔 제가 기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기자가 되려는 생각을 가진 건 사회에 나와서 좋은 선배들을 만나면서부터였죠. 그 선배들과 관련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많은데요. 옥고를 두 번 치른 박종만 선생 같은 분은 집에 쌀이 떨어져서 고민하다가 남아있는 팥을 삶아 냄비 하나 들고 남대문 시장에 가서 좌상을 했대요. 팥죽을 끓여서 판 거에요. 서울대 법대를 나온 엘리트인데도 그렇게 어렵게 생활하셨어요. 그런 분들이 80년대 군부 시절 때 데모하던 학생들도 많이 도와주셨죠. 당시엔 데모하는 학생들에게 돈을 지원하다 걸리면 큰일이 나거든요. 그 위험을 무릅쓰고 박봉을 잘라서 도우신 거죠. 그런 분들에게 그 후에 여러 기회가 있었어요. 큰 조직의 장을 맡으라거나. 하지만 박종만 선생은 "과거의 운동 경력을 완장으로 차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많은 사람들이 과거 자기가 옥고를 몇 번 치렀다는 걸 내세우는데요, 이 분은 그런 걸 굉장히 경멸하세요. 우리 사회가 완장문화에 대한 거부 반응이 크잖아요. 어떻게 보면 조롱의 대상이 되는데, 그렇지 않게 사신 분들이 제 주변에 계셨고, 그 분들이 감화를 끼쳐주신 것 같아요.

- 어떤 보도를 꼭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으신가요?

87년 울산에 취재 간 일이 있어요. 울산에서 노조가 만들어지기 전, 그러니까 서울에서 6월항쟁 끝나고 7월에 갔는데요. 바로 그 당시에 몇몇 분들이 노조를 만들어야겠다는 고민을 하더라구요. 그리고나서 몇 달 후 울산에서 우리나라 노동계에 있어서의 큰 일이 일어났죠. 7,8월 대투쟁. 저는 그 전에 가서 그 분들이 고민하는 모습들을 봤어요. 현대중공업 노조를 만든 권영목씨 같은 분과 시장바닥에서 같이 소주를 마시면서 고민하는 모습을 봤어요.

- 당시 노조가 내세운 조건 중 두발 자유화도 있었죠? 전 굉장히 충격 받았어요.

네. 그 당시 언론들이 제 역할을 못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너무 심하다고 하면 ''폭도화되고 있다, 경제가 쓰러지고 있다''는 둥. 그런데 87년부터 90년까지는 대호황이었거든요. 그런데도 끊임없이 경제가 쓰러진다는 거에요. 지금도 비슷한 얘기를 듣게 되죠. 김우중 회장을 취재갔을 때의 일인데요. 당시 시위하던 노동자 한 명이 죽었어요. 공장이 100일 동안 멈추면서 파업을 했는데, 김우중 회장은 그걸 정부와 협상 카드로 쓰는 거에요. 지금 이렇게 돼서 회사가 부도나게 생겼으니 몇천 억을 융자해달라. 그래서 끝내는 정부에서 몇천억을 얻어냈어요. 그 전날까지는 김우중 회장이 밤 12시에 기자들을 비상소집을 해서는 "여러분들처럼 좋은 대학 나온 분들과 대학도 못 나온 저 사람들이 똑같은 월급을 달라고 하는데 어떡해야 하겠습니까?" 라는 식의 얘기를 하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정부 지원금이 몇천억이 나오니까 그 다음날 장례식장에 가서 노동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면서 내 잘못이라며 어머님을 껴안고 1억을 주고... 정말 이런 모습은 한국 언론이 짚어줘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했어요.분명 지금 우리나라 언론은 예전보다 많이 발전했고, 다양한 매체가 다양한 목소리를 쏟아내고, 숨겨진 면들이 많이 드러나고 있어요. 하지만 분명 우리나라 언론이 그렇지 않았던 시대가 몇십 년 있었어요. 새로운 매체들이 자꾸 만들어지는 건 기존의 힘있는 매체들이 그런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처음 언론사에 들어갔을 때의 얘기 좀 해주세요.

새벽마다 경찰서를 돌고, 정치부는 정치인들 집을 돌아야 했어요. 멘트 한 마디 얻으려고, 또 이 사람이 밤 사이에 누구랑 술 먹었는지도 확인하고. 김종필씨 담당일 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김종필씨 집에 아침 7시 전에 가야 하고, 김영삼씨 담당일 때도 마찬가지고요.

- 당시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90년대 3당 합당 하고 나서, 김영삼씨 김종필씨 박태준씨가 한 층이 방 3개를 얻어놓고 동거 생활을 할 때에요. 차기를 누가 차지하는가에 대한 싸움으로 기자들을 상대로 상대방을 공격하기도 했는데요. 당시 김종필씨가 자민련 총재였는데, 그 분이 평소엔 점잖게 말씀하시잖아요. 말도 천천히 하시고, 한자도 섞어서 얘기하시죠. 김영삼씨와 사이가 좋을 때는 "어른의 그림자를 밟아서는 안 된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깎듯이 얘기를 하셨죠. 그러다가 권력투쟁이 붙었어요. 내각제를 하기로 했다가 김영삼씨가 파기해버리니까 그 때는 김종필씨가 동물이 되더라구요. 기자들 앞에서 육두문자를 거침없이 쓰면서 "저 XX는 명을 단축하는구나, 저 새끼는 어떻게 될 거다"는 식으로. 진짜 김종필씨답지 않게 공격적으로 바뀌고, 말도 빨라지고, 육두문자 쓰는 걸 보면서 이게 권력세계라는 걸 느꼈어요. 겉으로 드러나는 건 하나의 이미지고, 그 이미지만 쫓아가다가는 오보를 내기 쉬운 구조라는 걸 그 권력투쟁 와중에 많이 봤죠. 이런 부분들이 여전히 많이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정치에선 이미지에 의해 많이 좌우돼요. 특히 몇 년 사이에 이미지로 콘트롤 하기가 쉬워졌어요. 티비 뿐 아니라 인터넷 매체도 한 쪽으로 쏠림 현상이 나타나면 무섭게 인민재판 하듯이 하는데요. 그런 걸 막으려면 언론이 평상시에 한 정치인에 대해 차갑게 비판적 거리를 가지고 접근해줘야 합니다.

-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나요?

그 후로 박철언씨와 김영삼씨 싸움이 있었죠. 박철언씨는 황태자였고, 김영삼씨는 미래의 권력이었는데, 그 때 아주 치열했죠. 당시 김영삼씨가 행사 때문에 경남 쪽에 가는데 버스 안에서 뉴스를 통해 박철언씨가 김영삼씨 비판하는 얘기를 들은 거에요. 그 순간 버스 안에 있던 기자들 앞에서 탈당 얘기를 하는 거에요. 전쟁을 선언한 거죠. 특유의 공격성이 나온 거에요.

- 정치부 기자를 거쳐 경제부 기자를 하셨는데요. 우리나라 대표 기업인 삼성과 현대의 차이점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두 그룹의 차이는 오랫동안 화제였어요. 예전에는 은행감독원이 있었는데, 거기서 오래 근무한 베테랑 국장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삼성은 얄밉대요. 삼성은 보고서를 내면 처음부터 끝까지 오자 하나 없고, 트집을 잡을 곳 없이 완벽하게 해온대요. 법률에 딱 맞게, 위에 클립까지 딱 끼고, 색깔까지 넣어서 완벽하게. 감독원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얄미운 거에요. 뭔가 헛점을 찾아내야 하는데. 그에 반해 현대 쪽은 안 그렇대요. 그냥 아는 친구가 찾아와서 ''형님, 나갑시다'' 그런대요. 그 다음에 ''어떻게 써야 하는 겁니까? 형님 좀 가르쳐주세요. 우리가 알아야 제대로 할 거 아니에요'' 이러면서 물어본다는 거에요. 그 친구들이 쓸 줄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도대체 원하는 게 뭐냐는 거죠. 삼성은 아주 완벽한 조직이고, 꼼꼼하고, 헛점이 잘 안 드러나고, 큰 실수를 안 한대요. 반면 현대는 우직스럽고, 정이 많이 가고, 때로는 남들이 생각지 못한 일도 해내지만 그렇기 때문에 한번 무너지고 분열이 생기면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엉성함이 드러난대요. 저도 그런 비유에 공감하고, 그런 비슷한 경험을 많이 했어요.

- 2세, 3세로 내려오면 양세가 달라지지 않나요?

60년대부터 재벌 문제는 있었어요. 그 때도 우리 사회의 치열한 화두였어요. 그 때는 "재벌 3세가 되면 많이 바뀌지 않겠느냐, 그리고 재벌 체제가 3세까지 갈 수 있겠느냐"는 얘기가 많았어요. 근데 지금 주요 그룹들이 3세가 물려받는 상황이에요. 예전 창업자들이 "3세만 되면 어려운 때 다 지나서 사회에 기부도 많이 하고, 준법하면서 세금 제대로 내는 시스템이 될 것"이라고 얘기했는데, 지금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을 보면서 과연 그렇게 되는가 회의를 갖게 되죠. 재벌 스스로의 큰 각성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 인터넷 신문 ''뷰스앤뉴스''는 어떤 언론을 지향하나요?

저는 ''힘 있는 언론''이란 표현은 별로 안 좋아해요. 우리 사회에서 힘이라는 건 대부분 권력을 의미해요. 전 힘 없는 분들을 위한 언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남들이 보기엔 물질적으로나 외형적으로는 초라한 언론일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런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언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언론이 한국에서 몇 개 만들어져서 1~2년이 아닌 10~20년 넘게 항심을 지킨다는 평가를 받길 바라고요. 그런 언론들이 발전하는 데 제가 작은 초석을 다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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