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화''''가정폭력을 재산싸움으로 보도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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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04-2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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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남편의 상습 폭행·부정으로 이혼소송낸 김미화씨

 


인터뷰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김미화씨 휴대전화가 울렸다. 한 스포츠신문의 기자였다. 김씨는 전화를 건 기자에게 각각 초등학교 6학년과 4학년인 두 자녀가 미국에 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친정 어머니가 남편을 피해 두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것은 맞지만, 미국에 머물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러다 곧 "그건 가르쳐줄 수 없다"고 약간 언성을 높였다. 아마도 기자가 ''그럼 아이들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물은 모양이다. 김씨는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어머니에게 또다시 폭행을 휘두를 것을 염려하며 절대 가르쳐줄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최근 남편의 상습적이고 무차별적인 폭행으로 이혼 소송을 낸 김씨는 최근 "20년 동안 신문에 나올 기사가 한번에 다 나온다"며 그만 좀 써 달라는 호소로 입을 열었다.

-이혼소송을 낸 이후 모든 스포츠지가 김미화씨에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년 동안 나올 기사가 한 번에 다 나오는 것 같다. 제발 그만 좀 써 달라. 기자와 연예인은 공생 관계라서 사실이 아닌 기사가 나거나 함부로 추측해서 쓴 기사라도 싫은 소리를 할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이 기사를 다루는 기자들은 기자 자신의 여동생이나 누나가 이런 똑같은 일을 당했다고 가정하고 사건을 봐 달라.

지금까지의 보도들을 보면 가정내 상습 폭행과 외도라는 본질을 짚기보다는 김미화 부부의 재산싸움으로 몰아가고 있다. 솔직히 이혼소송 낸 것을 누가 떠벌리고 싶어하겠는가. 기자가 법원을 통해 알아내 찾아왔길래 굳이 거짓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솔직히 말한 것 뿐인데, 이렇게 일이 커져버렸다."

김씨는 지난 19일 서울가정법원에 상습 폭행 및 배우자 부정 행위로 남편 김모씨에 대해 이혼 소송을 제기했고, 이를 일간스포츠가 22일자(발행은 21일)에 처음으로 보도하면서 알려졌다. 그러나 일간스포츠는 당시 친정 어머니가 두 자녀를 데리고 여동생이 거주하고 있는 미국 서부 지역으로 출국했다고 보도했다.

김씨는 일간스포츠가 이같은 사실을 보도하자 21일 오후 KBS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부분의 스포츠신문들은 이 사실을 1면 톱으로 게재하면서 이후 김씨 인터뷰는 물론 남편 인터뷰를 비롯해 네티즌 반응, 연예계 반응, 이경실씨의 사례 등을 덧붙이며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문제는 김씨와 관련된 수많은 기사 속에서 한국의 가정 폭력 실태는 어떤지, 예방책은 무엇인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보도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언론 보도를 어떻게 생각하나.

"기자회견 이후 언론들이 하루하루 우리 부부의 일을 중계하듯이 보도한다. 18년 동안 남편의 상습적인 폭행에 시달려왔고, 심지어 친정 어머니와 여동생까지 남편에게 폭행을 당했다. 이혼을 결심하기까지 아이들 문제부터 시작해 ''이혼녀''에 대한 사회적 편견까지, 엄마로서 딸로서 연기자로서 그리고 여자로서 나 자신이 얼마나 수없이 곱씹고 고민했겠는가. 그러나 지금까지의 보도들을 보면 기자들은 이러한 나의 고민을 전혀 고려해주지 않는 것 같다.

어쩔수 없이 이혼을 결심했는데, 언론들이 내 기사를 너무 많이 쓰다보니 사람들이 ''이혼이 뭐 자랑이라고 저렇게 나서나''라고 생각할까봐 두렵다."

-타워팰리스가 이혼의 이유였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정말 어이없는 기사다. 그 기사를 쓴 기자에게 항의했고, 기사를 다시 써 달라고 했다. 타워팰리스는 결혼하고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가져본 재산이다. 결혼하고 두 차례 집을 샀지만 모두 남편 명의였다. 일하지 않는 남편에게 콤플렉스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별 이견을 달지 않았다. 타워팰리스로 오면서도 남편이 자신의 명의로 하려고 했지만 이번만은 공동명의로 하자고 했고, 이 때문에 남편과 다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이혼하려는 것이 아니다. 일부 언론은 우리 부부의 일을 재산싸움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렇게 해서 신문 몇 부 더 팔아서 얼마나 남나. 문제의 본질은 여성이 당하는 가정 폭력이다. 내가 당한 폭력과 내 친정 가족에 대한 폭행, 그리고 남편의 외도가 본질인데 언론은 엉뚱하게 재산싸움으로 비화시킨다."

-남편한테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해왔다고 했는데.

"남편은 기분이 좋으면 나와 우리 가족에게 굉장히 잘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거나 조금이라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있으면 누가 있든, 어떤 장소든 가리지 않고 욕하고 소리지르고 때린다. 신혼 초부터 폭행을 당했고, 지난 토요일 집을 나올 때도 맞았다. 친정 어머니와 여동생도 남편에게 폭행당해 친정 식구들은 우리집에 오지 않는다. 이혼을 결심하고 지금까지 너무 힘들었다. 요즈음에는 매일매일 울면서 밤을 보낸다. 불면증이 있는데, 설핏 잠이 들었다가도 남자 목소리만 드리면 놀라서 깬다. 남편이 평소와는 달리 지금까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더욱 불안하고 무섭다."

▲ 이혼소송을 제기한 개그우먼 김미화씨가 21일 여의도 KBS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혼을 결심했을 때 다른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

"몇 달 전 두 아이들을 앉혀놓고 엄마가 이혼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초등학교 6학년인 큰 애가 ''요즘엔 그런 거 흉 아니니까 엄마가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했다. 친정 어머니는 ''내가 죽을 때 너 때문에 눈을 못 감을 것 같았는데…''라며 내 결정을 지지해줬다."

-남편은 김미화씨가 아이들에게 소홀했다며 양육권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는데.

"아이들을 친정에서 우리집에 데려온 게 이제 1년이다. 친정 어머니가 아버지와 함께 우리 두 아이들을 탯줄이 떨어지면서부터 지난해까지 10여년간 길러주셨다. 아이들 때문에 학교 근처로 이사까지 하면서. 남편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 어쩌다 한번 집에 데려와 재울라 치면 우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잠을 못잔다고 화를 냈던 사람이다.

아이들을 데려온 후 남편은 일주일에 한 차례만 밥을 해서 아이들에게 저녁을 주고는 나가서 새벽에나 들어온다. 일주일이나 된 누런 밥을 누가 먹겠다. 오죽하면 아이들이 외할머니 집에 간다고 하면 ''맛있는 음식 많이 먹을 수 있겠다''며 좋아서 껑충껑충 뛴다.

어느날은 밤에 집에 돌아온 나를 보고 막내가 좋아서 팔짝팔짝 뛰는데 뱃속에서 물소리가 나더라. 고픈 배를 물로 채운 거다. 아이들 저녁을 챙겨주지 못해 일하는 아줌마를 불렀지만, 한 두달만에 그만두게 했다. 남편은 결벽증같은 것이 있어 부엌에 찌개나 국물이 튀거나 고춧가루같은 것이 떨어지면 신경질을 내고 살림을 부순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는 집에서 요리를 해 본 적이 없다."

아이들 얘기를 하면서 그는 눈물을 보였다. "어린 것들이 너무 불쌍하다"면서 말을 잇지 못 했다. 그러면서도 곧 "이혼 문제가 소송으로 간 이상 오래 걸릴 것이라는 건 알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밝힐 것은 밝히고 반드시 이혼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편은 스포츠지와의 인터뷰에서 이혼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싸울 때마다 이혼하자며 나를 때린 게 남편이다. 직접 이혼서류를 작성해 나에게도 쓰라며 들이밀기도 했다. 부부싸움을 할 때면 나 몰래 친정집으로 전화를 걸어 싸우고 맞는 소리를 가족들이 모두 듣게 했다. 이런 상황까지 만든 남편이 너무 원망스럽다."

-기자들의 취재경쟁으로 힘들었는지.

"사실대로만 써 주면 고맙겠다. 그리고 사건의 본질을 짚어줬으면 좋겠다. 어떤 기자는 ''이혼 소장을 낼 때 다른 사람들처럼 성격차이라고 하지 왜 굳이 상습폭행과 배우자 부정이라고 썼느냐''고 질문하더라. 누군가는 ''18년이나 맞고 살았는데, 애는 어떻게 생겼냐''고도 묻더라. 심지어 ''이경실씨는 야구 방망이로 맞았는데, 김미화씨는 무엇으로 맞았느냐''고까지 물었다. 너무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는 질문들이다. 본질을 봐 달라. 가정폭력이 가십으로 처리될 일인가."

-이혼 결심을 굳히게 된 계기가 있나.

"아무래도 아버지 돌아가신 것과 유산을 겪으면서인 것 같다. 한 줌 재로 남은 아버지를 보면서 세상이 너무 허망하고, 이렇게 살고 있는 내 자신이 인생이 너무너무 불쌍해졌다.

얼마 전 유산했을 때도 남편은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수술도 혼자 가서 했다. 병원에 가기 전 남편에게 전화했지만 오지 않았다. 수술을 마치고 마취도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운전을 해 친정집으로 가는데, 너무 서러웠고 가슴에 큰 못이 박히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만약 아이들이 이혼하지 말라고 했으면 결심하지 못했을 것이다. 큰애가 ''요즘에는 이혼같은 건 흠도 아니야''라고 말해줘 용기를 얻었다. 이혼이라는 것은 여자에게 더 어려운 것 같다. 협의이혼하고 싶었지만 남편과 대화가 되지 않아 그럴 수 없었다."

-스포츠지에 실린 남편 인터뷰 내용이 김미화씨의 주장과 모두 다른데.

"남편이 하는 말을 그대로 중계하지 말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누구 말이 맞는지 금방 알 것이다. 단적인 예로 남편은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2∼3차례 찾아왔다고 하는데, 아버지가 입원한 기간이 5개월이다. 5개월 동안 2∼3번, 그것도 아이들 예방접종 맞히는 날 겸사겸사 찾아와 내 카드로 병원비 계산하고 돌아간 사람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즈음 ''운명하실 것 같다''고 전화했는데도 몇 번이나 오지 않다가, 내 친구 전화를 받고 와서 여관방만 잡아주고 갔다.

남자가 하는 일 없이 집에서만 있다보면 스트레스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스트레스를 술도 안 마신 멀쩡한 상태에서 욕하고 때리는 것으로 풀어서야 되겠는가. 남편은 자기 성질에 안 맞으면 여러 사람이 있든 부모나 형제가 있는 자리든 성질대로 행동하고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대화를 하려고 해도 화부터 내 말이 안 된다.

기자회견 전날(20일)에도 MBC 라디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진행하는데 남편이 5분 간격으로 회사에 전화를 걸어왔다. 뉴스가 나가는 시간에 전화를 했더니 ''방송사에 찾아가서 행패를 부리겠다''고 했다. 남편의 무기는 늘 이것이다. 싸울 때마다 연기자인 나에게 방송 활동을 못 하도록 망신을 주겠다고 한다. 한다면 하는 성격의 사람이라 솔직히 겁난다."

-18년이란 긴 세월을 어떻게 견뎠나.

"일이 없었으면 아마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집에서 있었던 답답함을 밖에 나와 일을 하면서 풀었다. 내 문제로 지금 맡고 있는 프로그램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지금은 내 아픔 때문에 경황이 없지만 그동안 해 온 여러 뜻깊은 일들을 앞으로도 열심히 할 것이다. 이혼을 결심하고 애들을 내 호적에 올리려고 알아보니 입양이 아니면 올릴 수가 없더라. 호주제는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수많은 여성들이 이런 제도 때문에 이혼을 망설이고,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편과 곧 만난다는 보도도 있는데.

"토요일 집을 나온 이후 전화 통화 한 번 한 적이 없다. 왜 그런 잘못된 보도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남편이 진심으로 잘못을 사과한다고 해도 결정을 번복할 마음도 전혀 없다. 폭력은 습관이다. 절대 고쳐지지 않는다."

인터뷰가 끝나고 김씨는 "많은 여성들에게 힘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찻집 주인이 다가왔다. 찻집 주인은 김씨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23일자 한국일보였다. 주인은 <김미화씨 힘내세요="">라고 제목이 달린 ''독자의 소리''를 손가락으로 짚어보이며 "힘내세요"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미디어오늘 안경숙 기자 ksan@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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