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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쿨러닝! 강광배 "봅슬레이보다 청룡열차가 더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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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루지봅슬레이 국가대표 강광배 선수

강광배

 

한국 썰매종목의 개척자인 강광배 이야기는 자메이카의 봅슬레이 선수들을 다룬 영화 쿨러닝을 연상시킨다

우리나라에는 마땅한 연습장이 없어서 혼자서 유럽 각국을 떠돌며 연습한 그가 과연 빙상에만 치우쳤던 한국 동계 올림픽 영역을 확장시켜줄지 CBS 라디오 ''공지영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에서 그의 인생계획을 들어본다.

************* 이하 방송 내용 *************

▶ 진행 : 공지영 (CBS 아주 특별한 인터뷰)
▶ 출연 : 봅슬레이 강광배 선수


- 먼저 경기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세 종목이 있는데요. 루지는 누워 타는 종목으로 남녀 2인승 경기, 남자 2인승 경기가 있습니다. 스켈레톤은 루지와는 반대로 엎드려 타는 종목으로 스릴있구요. 봅슬레이는 2인승, 4인승이 있으며 팀 경기입니다. 이 세 종목을 썰매 종목이라고 합니다.

- 경기가 위험하진 않은가요?

청룡열차의 5배 정도의 스릴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에요. 경기장 길이는 국제연맹 공식 규정으로 1200~1500m인데, 스피드는 경기장마다 다 달라요. 전 세계에 총 14개의 경기장이 있는데요. 시속 120~150km 사이의 스피드를 내는 종목입니다.

- 대단한 스피드네요.

그게 스포츠의 매력인 것 같아요. 박진감 넘치고, 소위 말하는 ''피'' 같은 게 보여야만 스포츠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하하.

- 놀이공원은 안 가시겠네요?

놀이공원도 가요. 근데 청룡열차가 더 무섭더라구요. 내가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기분이 다르더라구요.

- 운동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고등학교, 대학교 때 스키 선수였는데요. 24살에 무릎 십자인대를 다쳤어요. 100% 파열이라 스키 선수 생활을 하기엔 절망적이었죠.

- 당시 굉장히 힘드셨겠네요.

절망적이었지만 6개월 동안 재활치료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해 겨울에 무주 리조트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루지 강습회가 열렸어요. 당시 우리나라에서 동계 올림픽을 개최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거든요. 근데 우리나라는 동계 올림픽에서 메달 따는 종목이 쇼트트랙 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많은 종목에 선수들을 육성해야겠다는 취지에서 루지 강습회를 연 거에요.

저도 그 때 루지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어요. 그래서 어떤 강습회인지 알아보니까 루지는 스키와는 달리 무릎을 많이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종목이라는 거에요. 그렇게 해서 전화위복이 됐죠. 스키로는 국가대표 선수가 못 됐는데... 이 종목이 나를 위해 온 종목이구나 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죠.

강습회에서 열심히 해서 1등을 했어요. 그 때가 95년이었는데, 당시 코치가 ''98년 나가노 올림픽을 목표로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근데 사실 3년이란 기간 동안 운동해서 올림픽에 나간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죠. 게다가 국내엔 경기장이 없잖아요.

- 경기장 짓는데만 1000억 원 정도가 든다면서요?

네. 이번 토리노 올림픽 때 경기장이 1000억 원 이상 들었다고 하더군요. 올림픽이 유치되지 않는 이상 그렇게 많은 예산을 들여 경기장을 짓는 건 사실 저로서도 바라지 않구요.

- 98년 나가노 올림픽에서 한국 최초로 본선 진출 하셨죠?

루지 연맹에 45개 회원국이 있는데 당시 33명의 선수가 출전했고, 저는 31등을 했습니다. 하하.

- 2002년과 2006년에 종목을 스켈레톤으로 바꾼 이유는 뭔가요?

98년 이후 코치분께 유학 상담을 했어요. 국내엔 훈련 장소가 없어서,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았는데요. 올림픽을 2번 개최했던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를 추천하시더라구요. 그리고 운동도 운동이지만 당시엔 박찬호 선수, 박세리 선수 때문에 스포츠 마케팅이라는 게 유행어처럼 나올 시기였어요. 그래서 스포츠 마케팅도 공부하고 운동도 해야 겠다는 생각에 유학을 가서 스켈레톤으로 바꿨어요.

종목을 바꾼 이유는 나가노 올림픽 이후 국가대표가 못 됐고, 또 어린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리고 유학 갈 때는 루지도 같이 배우려고 생각했는데 유학간 지 한달 만에 또 무릎을 다친 거에요. 근데 한번 다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덤덤하더라구요. 또 다쳤구나, 이번엔 몇 개월 가겠구나. 하하.

근데 저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인스브루크는 동계 올림픽을 두 번 할 정도로 동계 스포츠가 발전한 곳이고, 그만큼 스키를 타는 인구가 많다는 뜻이거든요. 그렇게 스키 타는 인구가 많으면 부상자도 많을 것 아니겠어요? 인스부르크 대학 병원이 그런 전문 병원이었던 거에요. 당시 담당 의사께서 "세계 최고의 전문 의료진과 장비가 있는 병원"이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정말 빨리 회복됐어요. 수술 받고 3개월 만에.

- 스켈레톤은 무릎을 덜 쓰나요?

아니요. 스켈레톤은 달리기를 잘 해야 해요. 루지는 스타트 할 때 손바닥으로 얼음을 치면서 가는 거지만, 스켈레톤은 썰매를 양손으로 잡고 30~40m를 전력질주해서 썰매 위에 올라타야 해요.

다치고 나서 운동에 대해 절망적이었어요. 제가 유학 가서 한 달 만에 다친 거라 언어도 잘 안 통하고, 가족에게 알리기도 좀 그랬는데, 인스부르크에 계신 한인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힘을 얻어서 회복도 빨리 됐는데요. 공부에만 전념해야겠다, 회복은 됐지만 운동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또다시 지도교수님의 영향으로 스켈레톤으로 종목을 바꾸게 됐습니다.

- 근데 이번엔 또 봅슬레이 선수가 되셨죠?

2003년에 강원도청에서 봅슬레이-스켈레톤 팀을 창단했어요. 그 때 저도 두 종목을 같이 했었죠. 그래서 "이번 올림픽 끝나고는 봅슬레이에만 전념하겠다"고 인터뷰를 한 걸 기자분께서 ''스켈레톤은 안 하고 봅슬레이로 전향한다''고 써서 그런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요.

2010년 동계 올림픽을 목표로 본다면, 잘해봐야 올림픽을 나갈 수 있는 선수는 한 명밖에 없을 겁니다. 국가대표라고 다 나가는 게 아니라 세계 랭킹 29위 안에 들어야 하거든요.

- 2010년 동계 올림픽은 어디서 열리나요?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립니다.

- 최초로 썰매를 탔던 기억은 언제인가요?

아주 어렸을 때죠. 제가 시골에 살았으니까 걸어다녔을 때부터 탔죠.

- 그때 썰매 재료는 뭐였나요?

비료 푸대가 제일 좋았죠! 그리고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나무 썰매.

- 존경하는 스포츠 선수가 있나요?

특별히 존경하는 분이라기보다는요. 올림픽엔 여러 종목이 있잖아요. 거기서 메달을 따는 선수들은 다 존경할 만하다고 생각해요. 각 종목마다 특성이 있는데, 그 분야에서 메달을 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 최고의 스키장을 꼽는다면?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유학할 때 알프스 산맥의 악산리쭘이라는 스키장이 있어요. 그 정상에 올라갔을 때 주위의 아름다운 능선.

- 잊을 수 없는 전지훈련은?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첫 번째 전지훈련이에요. 노르웨이의 릴레함메르였는데요. 그 때 스켈레톤을 처음 타러 국제연맹 스켈레톤 스쿨에 갔는데, 안전장비도 없었고, 뭘 준비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서울 상경하듯 무작정 갔죠. 함스부르크에서 배 타고 들어가서 물어물어 찾아서 열흘 정도 있었어요. 환경적으로는 굉장히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힘들다기보다는 당시 혼자 가서 부딪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유학할 땐 외로웠어요. 그리고 그 때 스키 강사 아르바이트를 했거든요. 이 종목이 한 번 탈 때 3만원 정도 내고 타야 해요. 1분 이내인데, 돈이 많이 들어가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풍족한 집안이 아니라.

- 이번에 스켈레톤 썰매를 기증하셨죠?

제가 아르바이트 해서 샀던 썰매를 기증했어요.

- 썰매 가격이 얼마 정도 하나요?

가격차가 있는데요. 비싼 건 1억 원 이상 되는 것도 있지만, 제가 기증한 건 1인승이라서 좀 싼 편이에요. 500만원 정도.

- 왜 기증하셨나요?

이번 토리노 올림픽 출전 후에 IOC 박물관으로부터 기증 제의를 받았어요. 저에겐 영광이라 감사한 마음으로 기증했습니다.

- 나만의 정신적 집중법이나 좌절했을 때 일어나는 방법이 있다면?

집중이 안될 땐 무작정 등산을 합니다. 뒷동산이든 앞산이든 정상에 올라가면 싹 잊혀지는 것 같아요.

절망감은 현재까진 없었던 것 같아요. 즐기면서 했어요. 날씨만 봐도 그렇잖아요, 황사가 왔다가도 다음날 맑아지고. 그렇게 힘들고 절망적일 때가 있지만 좋은 날도 있는 거죠.

- 이번에 국제 올림픽 위원회 선수위원 선거에도 출마하셨죠?

IOC 위원이라고 하는데요. IOC 위원 중 여러 분야가 있어요. 현재 115명의 IOC 위원 중 선수 출신 IOC 위원이 15명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제가 잘난 것도 없는데 대한체육회에서 영광스럽게 추천해주셨어요. 그래서 2006년에 공식후보가 됐었죠.

- 본인의 포부도 있었죠?

그렇죠. 세계 스포츠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IOC 위원이잖아요. 제가 IOC 위원이 된다면 열악한 환경의 동계 스포츠 국가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아시아나 아프리카 지역의 국가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많은 국가들이 동계 올림픽에 참여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 비인기 스포츠 종목이란 게 가끔 속상하진 않나요?

전 비인기 종목이란 건 없다고 생각해요. 쇼트트랙이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됐을 때 쇼트트랙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거기서 메달을 땄기 때문에 국민들 관심이 쏠리는 것처럼 이것도 저와 후배들의 역할인 것 같아요. 이 종목이 비인기 종목으로 남느냐, 가능성 있는 종목으로 남느냐 하는 건 저희들에게 달렸어요. 그리고 선수란 열심히 해서 메달 따는 게 목표잖아요. 2010년에 이 종목에서도 메달을 딴다면 쇼트트랙 이상의 인기를 모을 수 있을 거에요.

- 강원도에서 결성된 봅슬레이-스켈레톤 팀은 어디서 훈련하나요?

국내엔 훈련할 수 있는 장소나 장비가 없습니다. 저희 장비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 있는데요, 가지고 들어와도 국내에서 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짐밖에 안되죠. 게다가 봅슬레이 2인승은 170kg이라 한 사람 항공료보다 운반비가 더 들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인스부르크를 유럽 본부로 둬서 창고에 장비를 넣어놨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국가대표인데도 불구하고 그 종목에 맞는 훈련이 아니라 달리기 같은 보조훈련만 해야 한다는 거죠.

- 선수들의 연습 여건도 좋아져야 할 텐데요.

국내에 선수가 별로 없고, 또 시설 만드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데요. 저도 선수 생활을 하고 있지만, 경기장을 만드는 건 저부터도 반대에요. 사후 관리 면에서나 경기장 운영 면에서나. 그렇지만 일단 스타트 연습만이라도 할 수 있는 연습장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어요.

- 연습장은 못 짓더라도 선수들이 인스부르크에서 체류하면서 연습할 수 있는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렇죠. 많은 훈련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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