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으로 불리는 영국의 수학자・철학자・사상가인 버트런드 러셀의 자서전 '인생은 뜨겁게'가 출간됐다.
원래 러셀 자서전은 영국의 조지앨런 언윈 출판사에서 3권으로 출간되었지만, 국내에서는 1914년부터 1944년까지의 삶을 기록한 두 번째 권만 1967년에 '사랑이 있는 기나긴 대화', '기나긴 사랑의 오솔길'이라는 제목으로, 1970년에는 '사랑과 용기의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시간을 한참 건너뛰어 2003년이 되어서야 <러셀 자서전>이 오롯이 번역되어 <상>, <하> 두 권으로 출간되었다.
하지만 각 장마다 실려 있는 상당한 양의 서간문이 읽는 흐름을 방해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래서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서간문을 덜어내어 한 권으로 재편집한 <인생은 뜨겁게>가 나오게 된 것이다.
◈ 20세기 대표 지성의 귀환러셀은 1964년과 1971년 두 차례에 걸쳐 마하트마 간디, 존 F. 케네디, 마틴루터 킹, 알버트 슈바이처 등과 함께 '미국 대학생이 뽑은 10대 영웅'에 이름을 올렸다.
"평화주의, 비폭력, 피압박층에 대한 도움, 열패자에 대한 관심 등을 주창"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세계의 지성,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노암 촘스키 역시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러셀을 꼽으며 1971년 러셀 사망 1주기를 맞아 러셀의 모교인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추모 강연을 하기도 했다.
러셀에 대한 흠모와 관심은 국내에서도 이에 못지않았다.
출판인 주상희 씨의 연구에 따르면, 러셀은 해방이후 1990년까지 국내에서 출간된 철학관련 도서 분야에서 가장 많은 책(103종)을 낸 저자였다.
러셀의 명성과 영향력은 철학 분야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한국 법학계에서 형법의 대가로 첫손을 꼽혔던 서울대 김형두 교수는 고교시절 식민지 소년으로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우연히 접한 버트런드 러셀의 책이 낙천적 성격을 가져오게 했다고 회고했다.
통섭의 전도사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도 어린시절 러셀의 빛나는 지성과 유려한 글에 이끌려 러셀처럼 글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삶을 꿈꾸었노라고 고백했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서울대 이상묵 교수도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인사로 버트런드 러셀을 꼽았다.
◈ 청춘의 인생 교과서를 쓰다러셀의 무엇이, 식민지의 소년에서부터 세계적인 명망가에 이르기까지 시공간을 뛰어넘어 그토록 강렬하게 사로잡았을까?
누구는 러셀이 수학과 철학 분야에서 이룬 위대한 업적을 이야기하고, 누구는 아흔 살이 넘어서까지 행동하는 평화주의자로서 보여준 인류애에 감동했다고 하고, 누구는 명쾌하고 위트가 넘치는 글 솜씨에 이끌렸다고 한다.
영국의 노동당 대표와 '트리뷴'지 편집장을 역임한 마이클 풋은 러셀을 "자신의 일생 덕분에 남들에게 말할 수 있는 특별한 권리를 가졌던 사람"이었다고 회고하면서, 러셀의 지적 정직성과 더불어 평이한 언어로 글을 쓰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기에 특히 젊은층에게 큰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인생은 뜨겁게>는 이러한 러셀의 진면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러셀의 일생을 거쳐간 수많은 폭풍우와 일화들이 눈앞에 보듯 선명하게 회고되고 있는 이 자서전은, 명쾌하고 정직한 문체로 참으로 비범한 사람의 비범한 인생을 그린 20세기의 가장 감동적인 자화상이자 20세기 지성사를 꿰뚫는 자서전이다.
첫 저서인 <독일 사회민주주의>(1896)부터 1967년에 출간된 <베트남에서의 전쟁 범죄>에 이르기까지 수학과 철학, 사회학, 교육, 종교, 정치, 과학 분야의 저서들이 나오게 된 배경과 맥락, 아인슈타인, T. S. 엘리엇, 디킨슨, 케인스, 화이트헤드, 조지프 콘래드, 비트겐슈타인 등 20세기의 거인들과의 교류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또한 전쟁으로 치닫는 불행한 현대사의 한가운데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했던 러셀의 삶을 통해 세계대전, 볼셰비키 혁명, 핵 철폐운동, 케네디 암살, 베트남 전쟁 등의 근원들을 탐색할 수 있게 된다.
버트런드 러셀 저/ 사회평론 간/ 596쪽 /1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