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서울 여의도동 KBS 신관 공개홀 출연자 입구 주변에는 이른 시간부터 카메라를 든 이들이 줄을 맞춰 사진 찍을 준비를 한다. 일명 '대포여신'으로 불리는 팬들이다. 이들은 KBS 2TV '뮤직뱅크'에 출연하러 온 가수들을 찍어 '출근길'이란 이름으로 본인이 운영하는 홈페이지나 SNS에 사진을 업로드한다.장비는 수 백 만원을 호가한다. '대포'라는 이름도 거대한 카메라 렌즈에서 따왔다.
대포여신은 아이돌 팬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엄격히 따지자면 초상권 침해라 할 수 있지만, 소속사에서 냉정하게 법의 잣대를 들이밀지 않는 것도 대포여신들이 미치는 순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 우리 가수의 가장 멋진 모습만 잡아 주겠어!대포여신들은 공개된 장소 뿐 아니라 일반 팬들이 접근하기 힘든 장소까지 사진을 찍으며 현장을 전한다. 공항, 촬영장, 공연장 등 아이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
대포여신들은 팬들의 촬영이 금지된 곳도 뚫곤한다. 대표적인 예가 MBC '아이돌육상선수권대회'다. '아이돌육상선수권대회' 측에서는 팬들의 사진 촬영을 금지했지만 이곳에서 촬영된 사진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상식이나 공개방송 사진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애정이 담긴 사진에 보정까지 더해진 만큼 양질의 이미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심지어 각 멤버들의 신체적인 결함까지 체크해 가장 잘 나오는 각도로만 촬영하기도 한다.
엑소의 팬이라고 밝힌 직장인 박 모씨는 "공개방송 등을 매번 갈 수 없는 입장에서 퇴근길에 멤버들의 사진을 보면 삶이 치유되는 것 같다"며 "사진을 보면서 '오늘 이런 스케줄을 했구나'하고 알기도 한다"고 말했다.
◈ 경쟁도 치열, 속보가 생명
팬덤이 커질수록 대포여신들의 경쟁도 치열해진다. 남들이 찍지 못하는 곳을 찍거나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멋진 사진을 올리는 사람이 팬들의 관심을 선점한다.
때문에 몇몇 대포여신들은 자신이 촬영한 것 중 잘나온 사진은 카메라 LCD를 휴대폰으로 찍어 티저 형식으로 먼저 올리기도 한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찍기 때문에 각도가 비슷하거나 같은 포즈가 찍히면 팬덤 내에서도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 비슷한 사진은 철저히 배제한다는 보이지 않는 룰도 있다.
최근 갓세븐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는 김 모씨는 "이곳도 경쟁이 살벌하다"며 "어서 빨리 더 좋은 렌즈를 사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때문에 대포여신들 중에는 렌즈나 카메라를 렌트해서 촬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좋은 기기로 무장한 이들은 스타가 무대에 오르는 10여 분간 연속해서 사진을 촬영한다. 한 곡을 부르는 동안 수 천 장의 사진을 찍기도 한다. 이후 가장 잘나온 사진에 보정 작업까지 거친 후에야 사진을 공개한다.
◈ 대포여신들의 활약, "우리도 놀라워"대포여신들의 활동에 소속사 관계자들도 "놀랍다"는 반응이다.
한 아이돌 소속사 관계자는 "최근 참고용으로 대포여신이 제작한 아이돌의 포토북을 구매하게 됐다"며 "우리들도 들어가기 힘든 드라이 리허설 사진까지 있었다"고 놀라움을 드러냈다.
이어 "종이 질이나 구성, 디자인 등이 전문가들 저리가라였다"며 "팬들의 실력이 놀라울 정도"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팬들이 사진을 찍고, 영상을 촬영하고, 팬시제품을 제작하는 것을 알고 있다"며 "팬들이 순수하게 하는 것들이고, 이를 통해 팬덤이 더 공고해지는 효과가 있는 만큼 크게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일각에서는 "사기를 당했다"는 피해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MD상품을 만들겠다고 입금받은 뒤 연락을 끊고 잠적해 버리는 것.
최근 엑소 팬덤을 시끄럽게 달군 대포여신 사기 사건도 포토북 제작에서 비롯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