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 관측 이래 최장·최악의 중국발 미세먼지가 여전히 기승을 부린 27일 뿌옇고 탁한 하늘 아래 서울 시내 거리는 한산하기만 했다.
어쩔 수 없이 길을 나서야 하는 시민들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입과 코를 막고서 걸음을 재촉했다.
이날 명동 거리에서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뿌연 하늘을 신기해하며 황사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상점 직원들도 마스크를 쓴 채였다.
일부 시민들은 마스크 대신 목에 두른 목도리나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린 채 종종걸음을 쳤다.
약속 상대를 기다리는 시민들은 미세먼지를 조금이라도 더 피하려고 춥지 않은 날씨에도 밖에 나와있기보다는 건물 안에 들어가 몸을 숨겼다.
상점 직원들은 진열장에 쌓인 먼지를 닦거나 매장 앞에 물을 뿌리는 등 손님에게 갈 수 있는 미세먼지 피해를 줄이고자 바삐 움직였다.
매장 앞에서 물청소하던 의류매장 직원은 "먼지 청소 때문에 원래 문 여는 시간보다 더 일찍 출근했다"며 "오후에는 시간이 없어 지금 다 치워야 하는데 곧바로 다시 먼지가 쌓이니 미칠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대학로에 즐비한 길거리 노점들은 손님 발길이 뚝 끊겼고, 대신 미세먼지의 영향을 조금이라도 덜 받는 실내 식당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
서울 시내 병원들에는 미세먼지 때문에 기관지나 호흡기 이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줄을 이었다.
광진구 구의동의 한 이비인후과에는 오전 10시 비교적 이른 시각임에도 기관지염과 기침, 재채기 등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특히 미세먼지에다 최근 기승을 부린 독감까지 겹쳐 상태가 나빠진 환자들이 늘었다고 병원 측은 전했다.
약국에서는 황사 마스크, 구강청결제 등 미세먼지 대비용품들의 판매량이 급격히 늘었다.
구의동의 한 약국 관계자는 "이전에는 방한용 마스크 외에는 거의 마스크 수요가 없었지만 요즘은 황사 마스크가 하루 20장씩 팔린다"며 "미세먼지가 4월까지 계속된다고 해서 물량을 많이 들여놨다"고 말했다.
강남구 도곡동의 한 병원 원장은 "미세먼지 때문에 환자 수가 평소보다 20∼30% 늘었다"며 "황사 마스크로는 먼지를 막기에 역부족이므로 미세먼지용 마스크를 따로 사용하는 편이 좋다"고 조언했다.
시민들은 일주일째 몰아닥친 미세먼지가 '재난 수준'이라며 불편을 호소했다.
택시기사 이찬규(59)씨는 "원래 기관지가 안 좋은데다 미세먼지 때문에 목이 따끔거리고 머리까지 아프다"며 "평소 산에 가는 걸 좋아하는데 요즘은 바깥 활동을 자제하고 사우나에 가서 운동하는 것으로 대신한다"고 말했다.
박종서(25)씨는 "라식수술을 한지 얼마 안 됐는데 미세먼지 때문에 눈이 간지럽고 이물감이 심하게 느껴져 회복이 더딜까 봐 불안하다"고 했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이날 수도권의 미세먼지 농도(PM10)는 '나쁨'(일평균 121∼200㎍/㎥) 수준을 보일 것으로 예측됐다.
미세먼지 예보 등급은 '좋음'·'보통'·'약간나쁨'·'나쁨'·'매우나쁨' 등 5단계로 구분된다. '약간나쁨'(81∼120㎍/㎥) 등급 이상일 때 노약자, 어린이는 실외활동을 되도록 자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