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아픔에 깊이 공명하고 보듬을 줄 아는 사람은 그 아픔의 깊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법이다. 그 앎은 민감하게 타고난 감수성에서 올 수도, 살면서 겪어 온 남다른 경험에서 기인할 수도 있겠다.
영화 ‘만신’을 통해 그려진 큰무당 김금화(82)의 삶이 그러하다.
극 중반 김금화가 경기 파주시에 있는 적군묘(한국전쟁 직후 전국에 산재한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 1000여 구를 모아 만든 공동묘지)에서 전쟁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2012년 벌인 씻김굿을 담은 시퀀스는 평생 타인의 아픔에 공명해 온 그녀의 삶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름도 없이 ‘북한군’으로만 표기된 묘비로 빼곡히 채워진 수백 개의 무덤 앞에 선 그녀는 “조그만 상자에다 머리만 묻은 놈, 팔 다리만 묻은 놈…”이라고 말을 잇던 중 울컥해 눈물을 보인다.
이렇듯 카메라는 웃음과 눈물, 익살과 풍자를 버무려내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뜻을 모아서 한데 어우러지게 만드는 김금화의 굿판을 바짝 따라다니는 데 특별히 공을 들인다.
이 영화는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평생을 이방인처럼 살아 온 한 여인의 삶을 들여다보는데, 이를 통해 굿이 지닌 사회·문화적 가치를 드러내고 아픔으로 점철된 한국 근현대사를 짚어보는 의미 있는 작업을 벌인다.
일제강점기, 열네 살의 금화(김새론)는 일본군 위안부 소집을 피해 시집을 간다. ‘다음에는 아들이 넘석한다(넘본다)’는 뜻에서 어린 시절 이름도 없이 넘세로 불리던 그녀의 시집살이가 평탄할 리 없다.
시댁에서 매 맞고 굶주리던 금화는 결국 3년 만에 친정으로 도망치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 신병을 앓으며 유년 시절을 보낸다.
영화 '만신'의 한 장면
해방 뒤 이념 갈등이 극으로 치닫던 1948년, 열일곱의 금화(류현경)는 “세상 사람들 몸의 병, 마음의 병 고쳐 주는 큰무당이 되겠다”며 신내림을 받는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북에서도 남에서도 ‘사람들을 들쑤시고 다닌다’며 스파이로 몰리던 그녀는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며 힘겨운 삶을 이어간다.
1970년대, 중년의 금화(문소리)는 만신(무당을 높여 부르는 말)으로 이름을 알리지만, 새마을운동의 미신타파 움직임으로 탄압과 멸시를 받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을 피해 굿을 하던 중 창문 넘어 도망친 금화는, 산속에서 해학적인 굿판을 벌이며 획일화를 강요하는 엄혹한 현실을 이겨내려 한다.
이 영화의 만듦새는 굴곡 많은 한 무당의 삶을 단순 연대기 식으로 보여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흥미를 더한다.
극중 김금화를 연기한 배우들이 실제 김금화가 벌이는 굿판을 바라보는가 하면, 김금화가 자신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모습이 카메라 앵글에 잡히기도 한다.
각각의 금화가 시공을 초월해 함께 어우러지는 이러한 판타지 요소는 하늘에 해와 달이 동시에 뜨고, 솥 안에 벌떼가 들끓고, 무당의 갓이 새처럼 하늘을 누비고, 어린 금화가 낫 위에 올라 솥뚜껑을 자바라처럼 마주치고, 무속신을 나타낸 그림이 애니메이션이 돼 움직이는 장면 등과 함께 신비롭고도 그로테스크한 무속의 세계를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한다.
영화 '만신'의 한 장면
이러한 장치는 한국전쟁, 5·18 광주민주화항쟁,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붕괴 등의 잔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장면과 마주치면서 모순 가득한 현대 한국 사회를 드러내기도 한다.
극 말미 김금화는 풍어를 비는 배연신굿을 실제로 벌이는데, 남녀노소는 물론 외국인들이 한데 어우러져 웃으며 춤추는 광경은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풀고 대동의 길로 나아가려는 인간의 긍정적인 욕망을 보여 주는 듯하다.
이 시퀀스는 김금화의 말대로 “굿은 잔치”라는 것을 오롯이 드러낸다.
특히 이 모두를 아우르는, 제작진과 배우들, 실제 인물들이 모두 등장하는 ‘쇠걸립(무당이 쓰는 도구를 만들고자 마을을 돌며 쓸모없는 쇠를 모으는 일)’ 엔딩신은 공동체의 안녕에 관한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104분 상영, 3월6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