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라시 보도스틸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예부터 전해오는 이 속담은 정보화, 인터넷 시대와 맞물려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정보가 권력인 시대, 누가 더 많이, 빨리 고급정보를 얻는지가 국가나 기업의 경쟁력이 됐다. 애초 고급정보로 통했던 증권가 사설정보가 탄생된 배경에도 이러한 시대적 요구가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고급정보가 '찌라시'로 변모하는 데는 다양한 원인이 작용했으리라. 정보를 가진 자의 자기과시부터 집단이나 개인적 이익을 위한 정보의 악용 그리고 사설정보 시장이 가동되면서 발생한 예상치 못한 부작용 등을 예상할 수 있다. 여기에 IT기술의 발달은 이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데 날개를 달아줬다.
기자 등 특정 직업에 종사하지 않아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손쉽게 찌라시를 볼 수 있게 된 지금의 상황이 그걸 반증한다. 실제로 영화 개봉을 앞두고 홍보사가 네티즌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3.2%가 찌라시를 받아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20일 개봉하는 '찌라시:위험한 소문'(이하 찌라시, 감독 김광식)은 출처도 근거도 실체도 없지만 언젠가부터 우리사회를 뒤흔든 이슈의 한가운데 존재하는 위험한 소문 증권가 찌라시를 다룬 최초의 영화다.
자살한 여배우의 헛소문을 파헤치는 한 매니저의 끈질긴 분투를 통해 찌라시가 제작되고 유통되는 방식부터 복잡하게 얽혀있는 우리사회의 관계도를 그려냈다.
매니저 우곤(김강우)은 첫눈에 알아본 신인배우 미진(고원희)의 성공을 위해 힘든 일도 마다 않고 쉼 없이 달려왔다. 이제 막 빛을 보려는 찰나, 한 유명 정치인이 미진의 스폰서라는 소문이 돈다.
우곤은 소문을 막으려고 애쓰나 힘에 붙이고, 미진은 결국 자살한 채로 발견된다. 둘은 밑바닥부터 동지애를 쌓아온 관계였기 때문에 우곤은 미친 사람처럼 헛소문의 실체를 파헤친다.
영화는 우곤의 여정을 통해 찌라시의 실체에 접근한다. 처음에는 기업을 상대로 고급정보를 유통하는 찌라시 유통업자 박사장(정진영)을 만난다. 박사장은 과거 대기업의 비리를 폭로했다 의문의 사고를 당한 기자 출신이다.
찌라시 보도스틸
그는 박사장을 협박해 원하는 정보를 얻으나 갑자기 한 대기업의 해결사로 통하는 사설경비업체 사장 차성주(박성웅)에게 물리적 폭력이 동반된 경고를 받는다.
박사장은 차성주가 움직인다는 사실에 주시하고, 우곤을 도와 진실 추적을 돕는다. 신분을 위장해 정보회의에도 참가하게 된 우곤은 조금씩 진실의 실체에 닿아가나 그곳에 다가갈수록 정재계 거물과 엮이게 된다.
찌라시는 실제로 찌라시의 유통과정이 궁금한 관객들의 눈높이에서 이 부분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면서 여배우의 자살로 드러난 사건의 진실을 알아가는 재미를 동시에 안겨준다.
세상에 이렇게 열성적인 매니저가 있을까 싶기도 하면서도 우곤을 비롯해 박사장 무리 등 권력을 못가진 자들이 연대해 권력의 실체를 파헤치는 과정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기도 한다.
증권가 찌라시에는 비단 연예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친 정보가 수집된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연예인의 뒷소문이다.
이는 연예인이 대중에게 친숙한 존재라서 더 관심을 갖고 기억되는 이유도 있겠으나 사회적 지위에서 정재계 인사보다 더 만만한 대상이라는 점도 작용할 것이다.
이른바 '물타기'라고 동시기 사회적 논란을 희석하기 위해 연예인 스캔들이 활용되는 사례가 그렇다.
찌라시는 힘 있는 자가 사회를 움직인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어떻게 보면 새로울 게 없는 우리사회 현실이나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영화적으로 제법 흥미롭다.
근거 없는 소문은 없으나 표면적 사실만으로는 진실을 알 수 없다는 점, 정보를 악용한 자가 똑같은 방식으로 복수를 당하게 된다는 점 그리고 우곤의 스캔들도 나중에 정보맨들의 정보회의에서 회자된다는 점 등 이야기 구조도 잘 짜여졌다.
아무리 소문이 터무니없다해도 너무 쉽게 목숨을 끊은 것은 아닌지,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는 게 가능한지, 고급정보와 찌라시의 차이점 등 무엇보다 민감한 소재인데도 문제가 될 만한 사항에 대한 치열한 고민으로 적절한 답변과 결론을 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15세 관람가, 121분, 20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