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시정조치를 내리거나 소송을 활용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조정제도다. 수백억원에 달하는 사회적 비용을 치르지 않고도 대화와 타협으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어서다. 분쟁조정만 잘 해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다. 김순종(58)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을 만났다.
"분쟁을 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법률상담이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이하 조정원)의 법률서비스는 무료인 데다 신속하고 공정하다. 앞으로 조정원은 대형 로펌의 법률서비스와 경쟁하기 위해 경쟁력을 키울 것이다." 김순종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은 올해 조정원의 활동초점을 우수한 인재 확보에 두겠다고 밝혔다. 한국공정거래위원회의 산하기구인 조정원은 공정거래와 분쟁조정 업무를 맡고 있다. 불공정거래를 소송 같은 법적제도가 아닌 조정제도로 해결하는 것이다.
조정원은 올해로 설립 6주년을 맞았다. 2008년 2월 문을 연 후 지금까지 괄목할 수준의 업무성과를 보였다. 눈길을 끄는 것은 분쟁조정성립률이다. 2012년까지만 해도 70%대에 머물던 분쟁조정성립률이 지난해 상반기 92%로 껑충 뛰었다. 분쟁조정 처리기간도 대폭 줄었다. 2011년 55일이었던 1건 조정처리기간이 2012년 40일로 단축됐다.
김순종 원장은 "조정원이 분쟁조정으로 거둔 경제적 성과는 작지 않다"며 "대화와 타협을 통한 조정이 소송보다 더 많은 것을 남긴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조정원은 지난해 3분기 누적 462억원의 경제적 성과를 기록했다. 이는 분쟁조정이 성립되면서 구제된 피해액 321억원과 분쟁조정으로 절약한 소송비용 141억원을 합한 것이다. 전년 동기(315억원) 대비 47% 증가했다. 분쟁조정만 잘 해도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셈이다. 김 원장은 "피해구제를 받은 소상공인과 사업자를 중심으로 조정제도의 장점이 널리 알려지고 있다"며 "조정제도는 사회적 비용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사업자의 피해를 구제한다"고 평가했다.
✚ 경제민주화 시대다. 어느 때보다 조정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조정원의 역할은 불공정거래 행위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을 구제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속하고 공정하게 분쟁조정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지금까지 각종 불공정거래 행위로 을乙에 해당하는 중소사업자의 피해가 속출했다. 이 때문인지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불공정거래 관행을 퇴출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차츰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 본다."
✚ 조정원의 분쟁조정 분야는 공정ㆍ가맹ㆍ하도급ㆍ유통ㆍ약관이다. 분야마다 특성이 어떻게 다른가.
"모두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기본적으로 유형이나 특성이 같다. 다만 미지급대금이나 부당감액 등 대금지급명령이 하도급법상에서 강제로 명시돼 있다. 5개의 분야 중 하도급분쟁조정의 성립률이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 불공정거래로 인한 분쟁이 조정원의 시스템으로 해결 가능하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조정이 소송보다 훨씬 유익하다."
"불공정거래 퇴출, 공감대는 형성됐다"
✚ 해외는 어떤가.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인가.
"미국은 독점금지법을 위반했을 때 피해자가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잘 구비돼 있다. 3배 배상제도ㆍ징벌적 손해배상제도ㆍ집단소송제도 등이다. 그런데 소상공인이 손해배상소송제도를 이용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 그 대안으로 미국은 당사자 간의 합의를 통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분쟁해결 시스템'을 만들었다. 불공정거래의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법적제도보다 화해를 전제로 한 조정제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도 집단소송제(담합 및 재판매가격유지행위)와 3배 손해배상제(하도급법상 기술유용 등)를 논의하고 있다. 확대된다면 조정을 통해 더 많은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 지난해 상반기 조정원은 92%의 분쟁조정성립률을 기록했다. 신생 공공기관치고는 놀라운 성과다.
"그동안 축적된 노하우와 조정인력의 전문성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조정성립률 92%가 의미하는 것은 두가지다. 조정원을 찾는 국민의 발걸음이 늘고 있다는 것이고, 조정원이 설립 취지에 맞게 불공정거래로 인한 분쟁의 해결기관으로서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거다."
✚ 경제민주화 때문인지 불공정거래 관련 이슈가 유독 관심을 끌고 있다. 이로 인해 분쟁조정이 달라진 게 있는가.
"최근 5년 사이에 분쟁이 크게 증가했다. 2008년 520건이었던 분쟁조정 접수가 2012년 1508건으로 늘었다. 4년 사이에 190% 증가한 것이다. 중요한 점은 분쟁내용이 복잡해졌다는 거다. 조정원은 불공정거래 행위로 인해 구제가 필요한 분쟁을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실제 피해유형은 불공정거래행위뿐만 아니라 민ㆍ형사상 쟁점이 복합된 경우가 많다. 때문에 사실관계를 조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사안이 복잡해지면서 분쟁조정협의회 의결이 필요한 분쟁도 나타나고 있다."
✚ 조정원의 경쟁력은 신속한 피해구제다. 이를 좌우하는 것이 무료 법률상담이다. 결국 우수한 인재 확보가 관건이다.
"현재 조정원에는 변호사 8명, 박사급 인력 2명이 있다. 전체 직원은 54명이다. 불공정거래가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지만 조정원의 분쟁조정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무료 법률상담이긴 하지만 대형 로펌의 법조서비스와 경쟁하려면 조정원도 실력을 갖춰야 한다. 그 실력은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우수한 법조인과 조정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 조정원이 추구하는 인재상은 무엇인가.
"변호사 자격증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법적인 지식과 안목이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지식이 부족하면 들어와서 배우며 실력을 차곡차곡 쌓으면 된다. 분쟁조정은 상거래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범위가 한정적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말을 충분히 경청하는 마음이다."
✚ 직원들을 다독이며 함께 가야 하는 게 CEO의 운명이다. 어떤 방법으로 직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렸는가.
"독특한 사기앙양법은 없다. 나는 직원과의 소통을 중시한다. 열심히 하는 직원은 앞에서 이끌어주고, 역량이 부족한 사람은 뒤에서 밀어준다."
✚ 20년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활동한 이력이 눈에 띈다. 20년 전과 비교했을 때 공정거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1995년 당시엔 공정거래 제도에 대한 인식이 아예 없었다. 당연히 불법도 인지하지 못했다. 불법도 관행으로 받아들여지던 시대였던 거다. 그로부터 20년 후, 사람들이 법을 인식하고, 준수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지만 한편에서는 교묘하게 공정거래를 악용하는 이들도 있다. 불공정거래 업무가 고도화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조정원 경영, 창업가의 마음으로"
✚ '신생 공공기관인 조정원을 경영하는 것은 창업하는 것과 같다'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의미심장한 메시지다.
"사장이 직접 뛰어야 회사가 돌아가는 법이다. 사장도 영업현장을 돌고, 세무조사를 직접 해봐야 한다. 그래야 회사를 경영할 수 있고, 현장의 어려움을 헤아릴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조정원이 겪는 고충이 중소기업이 겪는 고충과 매우 흡사하다는 거다. 그래서 소상공인의 얘기를 귀담아들을 수 있다."
✚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조정원을 이끌 것인가.
"회사를 창업할 때 시스템을 잘 만드는 게 중요하다.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신생 공공기관인 조정원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이제는 최상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대형 로펌과 경쟁하려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고 직원들의 근무여건을 개선해 만족도를 높일 것이다. 인력을 확보하면 시장분석실을 제대로 가동할 계획이다. 시장을 분석해야 소송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조정원의 미래는 밝다."
김건희 더스쿠프 기자 kkh4792@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