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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 아나운서가 추천하는 올해의 영화

신지혜 아나운서(노컷뉴스 이명진 기자)

 

내년 2월2일이면 CBS음악FM '신지혜의 영화음악'(93.9MHz)을 진행한지 꼭 16년째다.

과거 사회초년병이던 애청자가 어느 듯 가장이 돼 아이와 함께 청취자 시사회에 참석하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질 정도로 특별한 시간이었다.

CBS에서는 이미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았고, 충무로에서는 '영화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이른바 '신영음'에 "내 청춘과 건강을 바쳤다"고 웃으면서 말하는 신지혜 아나운서다.

중학교 2학년 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석양의 무법자'를 보고 영화에 매료됐고 수천편의 영화를 봤지만 뇌리에 깊이 각인된 '블레이드 러너'가 내 인생의 영화라고 밝히는 신 아나운서가 2013년을 마무리하며 올해의 영화 3편을 꼽았다.

'더 헌트'와 '셰임' 그리고 송강호가 주연한 '변호인'이다.

신 아나운서는 최근 노컷뉴스와 만나 "기억 속에 강렬한 흔적을 남긴 작품이자 공통적으로 가치와 변화 용기에 대한 영화"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와 엄태화의 '잉투기',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 리처드 커티스의 '어바웃 타임'등을 특별하게 언급했다.
 
더 헌트 "강렬한 첫인상, 그리고 한 남자의 용기"

'햄릿과 레고의 나라' 덴마크에서 일어난 영화운동인 '도그마95선언'의 주역, 토마스 빈터베르그가 연출했다.

오랜 친구의 어린 딸을 성추행했다고 누명을 쓴 한 남자의 이야기로 공동체 사회의 어두운 이면과 인간의 잔인한 본성까지 세밀하게 파헤친 무서운 수작으로 회자됐다.

2012년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내년 3월2일 열리는 제86회 아카데미시상식 외국어영화상 1차 후보에 올랐다.

"처음에는 강렬한 이야기에 너무 묵직했고 두 번째는 힘 있는 감독의 연출에 놀랐으며 무비꼴라주의 시네마톡을 하면서는 용기란 단어가 내가 확 들어온 영화다.

한 소녀의 상상과 망상과 상처 등이 결부돼 자신도 거짓말을 하면서도 믿고, 어른들은 자신들의 상상을 덧씌워 모든 게 점점 커지는데, 나라면 어땠을까? 그 공간을 떠나고 말지, 친구가 나를 이렇게 모르나, 배신감과 서운함 울분 분노가 얼마나 컸을까.

더 헌트와 셰임, 변호인 포스터

 

마을 사람들의 완전한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결백과 진실을 폭력으로 대항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그 모습에서 정말 큰 용기를 봤다.

인간의 축적된 어두운 에너지가 잘못 터져 누군가를 마녀 사냥하는 영화면서 한 남자의 용기에 대한 영화로서 곱씹어볼게 많다.
 
셰임 "이토록 쓸쓸한 남자의 나신과 뉴욕뉴욕은 없었다"

'대탈주' '빠삐용' '타워링'등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할리우드 톱스타 스티븐 맥퀸, 그 배우와 동명이인인 주목할 감독 스티븐 맥퀸이 연출했다.

셰임은 성공한 뉴요커 브랜든이 섹스 중독에 사로잡혀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던 중 씨씨라는 여인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성에 대한 집착과 갈등을 담았다. 2011년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지극히 쓸쓸하고 공허하고 허무하나 기품이 느껴지는 영화. 냉소적이지만 너무 차갑지 않고 그 쓸쓸함을 우아하게 표현했다.

사운드트랙도 계속 들었다. 주인공 마이클 파스빈더도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극중 여동생 캐리 멀리건이 부르는 뉴욕뉴욕은 정말...지금껏 이렇게 외롭고 쓸쓸한 뉴욕뉴욕은 없었다.

인구에 회자됐던 파스빈더의 나신은 남자(man)가 아닌 인간(human-being)의 나신으로서 어떻게 오직 쓸쓸함만 느껴질 수 있는지...현대인의 불통, 그 속에서 나란 개체에 대한 물음, 삭막한 도시의 삶을 너무나 잘 표현했다.

반항아 스티븐 맥퀸과 동명인 후대의 감독이 나오는 바람에 추억 속 배우도 떠올려본 계기가 됐다."
 
변호인 "한 사람 혹은 한 사람‘들’의 가치와 변화에 대한 이야기"

송강호가 주연한 '변호인'은 돈을 좇던 한 변호사가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는 여정을 그렸다.

"가치와 변화 두 단어로 표현하고 싶다. 계몽영화도 전기영화도 아니고, 너의 가치는 무엇이냐, 너의 행동양식은 무엇인지 질문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더 헌트에 이어 또 다시 용기란 단어를 떠올렸다.

송우석이란 인물은 자신만의 가치 기준을 가지고 산 사람이기에 그 가치에 반하는 사건을 목도하고 스스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다고 본다. 민주주의란 대의를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의 기준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굉장한 고민 끝에 용기를 낸 사람이 아닌가.

극 후반 양심선언에 나선 군의관도 나오는데, 또 하나의 용기를 내게 만드는 영화라는 점에서 영화의 결이나 완성도를 떠나서 정말 뭉클한 마음으로 봤다.

셰임의 주인공은 어떻게 보면 자신의 가치가 정리돼있지 않거나 흔들려서 그런 게 아닐까."

"'어바웃 타임' '그래비티' '신세계' '잉투기'도 빼놓을 수 없죠"

신세계와 그래비티와 어바웃타임 포스터

 

신 아나운서는 도덕, 배려, 사랑 등 삶의 덕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어바웃 타임'도 주목했다. 로맨틱 코미디를 즐겨 보는 편이 아닌데도 이 영화를 보고 "리처드 커티스 감독을 존경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열광했다.

"그 사람이 보여주는 가치관이 정말 좋아서다. 삶의 가치,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 너무 먼 이상이 아니라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현실의 이상이라는 점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행복했다."

극중 결혼식 장면은 역대 최고였다.

"이토록 아름다운 결혼식 장면이 있었던가. 아름다운 삶의 덕목들이 녹아있기 때문에 지금껏 본 최고의 결혼식이었다."

'그래비티'는 개인적 경험이 더해져 더욱 짜릿했다.

"어렸을 때부터 백과사전에서 우주사진을 즐겨 봤는데 보면서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아름답지만 무서웠다. 우주에 대한 막역한 공포와 경이로움을 이번 영화를 보면서 제대로 느꼈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감독의 스토리텔링 방식에 박수를 보낸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구구절절 설명 없이 행간으로 읽히는 영화로서 이해가 아니라 심정으로 습득된다는 점이 너무나 놀라웠다."

이밖에 '문라인즈 킹덤'은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켄 로치의 '엔젤스 셰어:천사를 위한 위스키'는 그의 모든 영화가 그렇듯 비루한 현실과 달리 재미있고 유쾌해서 기분이 환해졌다.

'비포 미드나잇'에 대해서는 만들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법했다고 했다.

"혹자는 이제 진짜 내 얘기 같아서 좋다고 하는데, 전 아직 덜 성숙돼서 그런지 그 영화 특유의 아련함과 여운이 사라져서 오히려 서글펐다. 에단 호크의 꿈을 좆는 눈빛이 너무 현실이 돼버려서 아쉬웠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생각도 깊고 이야기를 풀어나는 능력도 뛰어난, '늑대소년' 조성희를 이을 엄태화 감독의 '잉투기'를 꼭 언급하고 싶다.

너무나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영화면서 배우 황정민과 박성웅을 재발견한, 탄탄한 스토리텔러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 그리고 음악과 예술이 일으킨 놀라운 변화를 담아낸 '안녕?! 오케스트라'도 빼놓을 수 없는 올해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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