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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캠프 사고 고(故)이병학 군 아버지 이후식 씨

2013년 7월 18일 늦은 저녁.
병학이 아버지 이후식 씨는 청천병력과 같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해병대 캠프 훈련 도중 아들이 친구들과 대열을 이탈해 사라졌다”는 전화였다.
그럴 리가 없는 아들인데, 부랴부랴 현장으로 향했다. 친구들과 그냥 훈련이 싫어 놀러 간 것이길 바랬다. 하지만 병학이는 다음날 저녁에 싸늘한 시신이 돼서 품에 돌아왔다.
2013년 12월 10일 논산 병학이네 집.
다섯 달 전 병학이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집에는 여전히 병학이가 살고 있다.
TV 앞에 병학이는 여전히 아빠, 엄마를 보며 웃고 있고 병학이가 사고를 당하기 다섯 달 전 온 가족이 함께 다녀왔던 해외여행 사진도 여전히 그대로다. [편집자 주]


 



지난 7월, 꿈 많던 고등학생 5명의 생명을 앗아간 태안 안면도 해병대 캠프 사고.

5개월 남짓한 시간이 다 돼 가지만, 아빠, 엄마는 여전히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

병학이네 집에서 만난 아버지 이후식 씨는 병학이가 세상을 떠난 이후 제정신을 갖고 살아본 적이 없다.

이 씨는 지난 다섯 달이 안 되는 기간에 자동차 기름값으로만 500만 원을 넘게 썼다.

아들의 죽음이 원통해서, 억울해서 아이들이 잊혀지는게 두려워서 사고 전후를 파헤치다 보니 다니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는 동안 서류만 한 뭉치가 쌓였다.

이 씨의 부인, 병학 군 어머니의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다.

사고 이후 지금까지 병원치료를 받는 날이 부쩍 늘었다.

잠을 자지 못할 정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아들 얘기가 나올 때면 눈물부터 앞을 가린다.

이 씨를 만난 날은 고(故) 이준형 군의 부모와 고 김동환 군의 부모도 자리를 함께했다.

함께 세상을 떠난 준형 군의 어머니는 아직도 준형이의 방을 치우지 않고 있다.

아들이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아직도 머릿속에 아른거려서다.

처음 학교에서 해병대 캠프를 간다고 했을 때 가기 싫다고 했던 준형이었다.

그런 아들을 다독여 캠프에 보냈던 것이 아직까지 가슴에 사무친다.

준형이가 그렇게 세상을 떠나기 전 캠프에 필요해 고무신을 산다며 기숙사로 돈을 보내달라던 전화통화가 아들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어머니는 아직도 그때 아들의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동환이 어머니는 사고가 있기 바로 직전에 캠프 측에서 학교에 제출하기 위해 찍어놓은 동환이의 훈련 사진을 휴대전화에 담아 놓고 있다.

동환이의 생전 마지막 모습. 사진 속 동환이는 훈련이 힘겨운 듯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다.

어머니는 아들의 찌푸린 얼굴로 마지막 길을 간 것 같아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5개월 동안 아이들의 아빠, 엄마는 세상 어느 누구보다 아픈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들이 물속에서 고통스러워할 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고 그렇게 보낸 것이 가장 큰 아픔으로 다가오지만, 아이들이 세상을 떠난 뒤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현실이 더 가슴 아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을 보낸 아빠, 엄마들은 지금 청와대 앞에서 돌아가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캠프 교관들의 재판도 쫓아다녀 봤고 아들의 사고와 관련된 각 부처와 기관을 돌아다니며 호소도 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거기서 거기.

아이들의 사고 책임은 물론 제대로 된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설상가상으로 아이들의 사고 책임을 지고 파면을 당했던 학교 교장은 얼마 전 소청심사까지 제기했다.

유족들에게 책임자 처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아이들의 명예 회복과 사고의 재발방지 대책이다.

특히 법원이 이번 사고를 공사장에서 적용되는 법(산업안전보건법) 판례로 해석해 캠프의 실체 운영 주체인 유스호스텔에 업무정지 2개월 처분을 내리고 대표에게 무혐의 처분 내린 것은 죽어서까지 아이들의 인권을 유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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