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 출범 첫해에 기초생활수급자 3만7000여명이 새로 탈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기초연금, 4대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등 각종 복지 정책을 내세운 박근혜 정부가 빈곤층 복지는 홀대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3년도 소득확인조사 최종 집계 결과 3만7388명의 기초생활수급자 지원이 중지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써 2012년 말 139만4000여명이던 기초생활수급자 수는 1년만에 135만7000명대로 대폭 줄었다. 이는 최근 10년 간 가장 낮은 수치다.
기초생활수급자는 2004년 142만4000명에서 2005년 151만3000명으로 올라 2010년까지 150만명대를 유지해왔다. 이후 '사통망'(사회복지통합관리망) 도입으로 자격심사가 엄격해지면서 해마다 급격하게 숫자가 줄었으며, 최근 3년간 수만명씩 탈락하는 급감세가 이어졌다.
■ 부양의무자 소득 증가로 탈락 더 많아
눈에 띄는 것은 탈락자 중에서도 부양의무자의 소득 증가때문에 탈락한 사람이 2만여명으로 본인의 소득 증가로 탈락한 1만7000여명보다 많았다는 것이다.
부양의무자 제도가 폐지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부양의무자로 인한 탈락자가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다. 이처럼 정권 첫 해부터 수급자 수가 대폭 줄어든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더큰 문제는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절대빈곤층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수급자 수는 감소하는 모순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2013년 가구 금융 복지 조사'에 따르면 최저생계비도 벌지 못하는 절대 빈곤 가구가 179만5000가구에 달했다. 기초생활수급자를 가구로 환산하면 81만가구 정도 되는 것을 감안했을 때, 60%에 달하는 98만가구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 예산 5000억 삭감, 내년도 빈곤층 복지 빨간불
기초생활수급자의 급감은 당장 내년부터 시행되는 '맞춤형 개별급여'제도와 관련이 있다. 내년 하반기부터 최저생계비제도가 폐지되고 '맞춤형 개별급여'로 전환됨에 따라 정부가 사전작업 차원에서 대상자를 감축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맞춤형 개별급여로 전환되면 생계, 주거, 의료, 교육 급여를 각각 따로 심사해 받게 되는데 정부는 혜택을 받는 대상자가 대폭 늘어난다고 홍보해왔다. 하지만 예산은 그만큼 늘어나지 않았다.
기재부 예산 심의 과정에서 복지부가 요구한 원안보다 5000억원가량 삭감된 것이다. 기재부는 심의 당시 "올해 기초생활수급자가 줄어들 것이다"라며 예산을 낮게 편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맞춤형 개별급여로 전환되기 전에 최대한 수급자수를 줄여놔야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는 압박이 작용하면서 올해 심사가 더욱 엄격하게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연일 복지 재정 누수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점도 보다 엄격해진 심사 분위기에 한몫하고 있다.
참여연대 김남희 사회복지팀장은 "정확한 조사를 통해 부정수급자를 가려내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것이 전산망을 통한 기계적인 심사와 빈곤층 쥐어짜기로 이어지고 있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것이 사회적 약자인 빈곤층이다. 오건호 내가꿈꾸는복지국가위원장은 "증세없는 복지로 예산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보니 엉뚱한 곳에서 쥐어짜고 있다"며 "사회복지의 기본은 빈곤층 구제임을 망각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한편 임근찬 복지부 복지정부과장은 기초생활수급자 축소에 대해 "원래는 9만여명이 삭감 대상자였지만 2만여명은 본인이 소명했고, 3만2000여명은 특례 적용으로 구제됐으며, 나머지 3만7000여명이 탈락한 것"이라며 "급여 중단자들에 대해서도 민간 지원과 연계해 피해를 최소화할 방침이다"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