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도 장르가 될 수 있을까.
'막장'은 터널공사에서 굴착을 진행하고 있는 최선단의 장소를 뜻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나락으로 떨어진 상황', 혹은 막나가는 전개의 드라마를 뜻하는 단어로 더 많이 사용된다. 기억상실, 시집살이, 시한부 인생 등 진부한 소재를 거듭 사용하거나, 생각지도 못한 개연성 없는 전개가 이어질 때 시청자들은 '막장'이라고 부른다.
일단 막장이라고 꼬리표가 붙으면 각종 논란과 비판을 피할 수 없다. MBC 일일드라마 '오로라공주'는 방영 초 주요 배역들을 온갖 황당한 이유로 하차시키는가 하면 "암세포도 생명이다"는 황당무계한 대사로 논란을 빚었다.
문영남 작가가 집필하는 KBS 2TV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 역시 어이없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혼을 하려던 부부가 갑자기 납치되는가 하면, 며느리 오디션을 통해 며느리를 뽑겠다는 시아버지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막장 드라마는 시청률에서 만큼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오로라공주'는 연일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20%를 돌파했고 '왕가네 식구들' 역시 30% 초반의 시청률로 주간시청률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앞서 막장으로 불렸던 MBC '금나와라 뚝딱', '백년의 유산', SBS '야왕', '결혼의 여신' 등도 내용 면에서는 논란을 빚었지만, 시청률만큼은 동시간대 1위였다. 상황이 이쯤 되니 "막장도 하나의 흥행 장르로 봐야 한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 "막장도 장르다"
장르의 요건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해당 장르를 인식했을 때 떠올리는 공통분모가 있어야 한다. 막장을 장르로 봐야한다는 이들은 막장이 이런 요건을 충족한다고 보고 있다.
특히 고부갈등, 기억상실, 교통사고 등은 막장하면 단번에 떠올리는 소재로 꼽힌다. 오죽하면 KBS 2TV '개그콘서트-시청률의 제왕'같은 이를 풍자하는 개그까지 나올 정도다.
대중문화 칼럼리스트 하재근 씨는 막장 드라마를 "사라져야할 나쁜 장르"라고 봤다.
하 씨는 "막장 드라마는 구성의 치밀함과 작품성 없이 자극을 위한 극단적인 설정만 나열돼 있다"며 "막장 드라마만 계속 만들어질 경우 드라마 수준이 낮아진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막장이란 장르는 불량식품과 같다"며 "몸에 해로운 것만 가미된 불량식품을 계속 찾는 것은 시청자들에게도 해로운 일이다"고 우려를 표현했다.
◈ "막장은 그저 막장일 뿐"
반면 막장 드라마를 장르로 볼 수 없다는 입장도 팽배하다. 기대감이 없다면 장르가 아니라는 것.
대중문화 평론가 정덕현 씨는 "장르는 오랫동안 반복되면서 완성된 틀이 있고, 이 틀은 완결성이 있기 마련이다"며 "막장드라마는 완성도와는 상관없는 개념일 뿐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막장드라마는 긍정적인 기대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며 "보고 있으면 짜증나고 화가 나서 계속 보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막장드라마의 작품성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